안녕하세요, 한양노비입니다.
작년의 저는 "AI가 코드를 다 짜준다고? 그럼 나는 커피 마시면서 엔터만 치다가 칼퇴하는 거 아냐?" 이런 행복회로를 돌렸었습니다.
근데 요즘 제 하루를 돌아보면, 정작 타이핑하는 시간은 확 줄었습니다. for문을 손으로 친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요. 그런데 이상하게 퇴근은 더 늦어졌고, 머리는 더 아픕니다. 분명 일을 덜 하게 됐는데 ATP는 더 쓰는 느낌입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시간들이 어디로 옮겨갔는지, 4년차 노비의 관찰 기록입니다.
우리 회사 솔루션 ERP의 외주작업 부분을 웹으로 옮기고, 거기에 필요한 관리 기능을 붙이는 프로젝트입니다.
보기엔 단순해 보였습니다. 데이터 원천도 ERP라서, 화면 분석하고 데이터 흐름만 잘 파악하면 절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문제는 지금 회사 솔루션이 전형적인 ERP 화면이라는 거예요. 기능은 정말 너무 많습니다. 다 있는데 UX는 욕부터 나오는 화면입니다. 이걸 그대로 웹에 옮기면? 그냥 옛날 화면이 브라우저에서 열리는 것뿐이고 구현도 어렵고 웹화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주된 목표는 회사 솔루션을 따르되, 웹에서는 더 낫게 누가봐도 웹처럼 그리고 AI도입과 이 시점을 시작으로, 제 일이 예전과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ERP를 따르되 더 낫게라는 목표를 세우고 진행하다보니
누구도 "이 버튼은 여기, 이 흐름은 이렇게" 정해주지 않습니다. 어떤 화면은 회사 솔루션을 그대로 따라야 하고(데이터 흐름이 거기 묶여 있으니까요), 어떤 화면은 과감히 갈아엎어야 합니다(안 그러면 웹화한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 경계를 전부 제가 정하거나 어떤 방법으로 수정할지 제안해야합니다.
예전 같으면 기획서가 정해서 내려줄 일이죠. 이제는 기획서?는 없습니다. 제가 회사 솔루션 분석하고 "이건 따르고, 이건 바꾸자"를 결정합니다.
자, 뭘 만들지 정했습니다. 이제 AI한테 시키면 끝?
AI 도입하고 가장 크게 데인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처음엔 그냥 막 시켰습니다. 그럼 구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제가 원하던 그림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기 이렇게, 저기 저렇게" 하나하나 지적하며 고쳐달라고 합니다. 그럼 또 나옵니다. 또 아닙니다. 또 고치고…
이게 끝이 안 납니다. 수정 한 번에 시간이 너무 걸려요.
이유는 짐작이 갑니다. plan 핑퐁 한참 하고 구현까지 오면, 이미 컨텍스트가 흐려져 있는 상태에서 수정을 시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제가 원하는 퀄리티가 안 나옵니다.
그래서 무게중심을 앞으로 당겼습니다. 구현 전에, plan에서 끝장을 보는 것.
근데 여기서 의외의 일이 벌어집니다.
plan을 같이 다듬다 보면, AI가 오히려 저한테 질문을 던집니다. "이 경우엔 어떻게 처리할 거냐", "이 조건은 빠진 것 같은데", "이 흐름은 아직 안 정해졌다" — 제가 미처 생각 못 한 지점을 자꾸 끄집어내요.
이걸 받아치고 하나하나 답을 정하는 데 하루의 꽤 많은 시간을 씁니다. 이 시간이 결과물 퀄리티를 거의 다 결정하는구나 느꼈습니다.
예전엔 AI가 짠 코드를 직접 다 까봤습니다. 도입 초기엔 한 줄 한 줄 검수하느라 바빴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CLAUDE.md에 규칙을 박아두고, 백엔드·프론트엔드 서브에이전트를 따로 두면서부터 — 코딩 규칙 위반 같은 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이 얘기는 지난 글에서) 이제 한 줄씩 뜯어보는 큰 검수는 거의 필요 없어졌고, 마무리는 /review-code 스킬로 한 번 훑고 끝냅니다.
이제는 하루의 80% 이상을,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읽고 판단하는 데 쓰는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타이핑이 줄었는데도 바쁜 이유입니다. 생각해보면 일이 사라진 게 아니라, 더 비싸고 어려운 쪽으로 옮겨간 것 같습니다.
요즘 일하는 게 즐겁습니다. 제가 원하는 그림을 제시하고, AI랑 같이 고민하고, 프로토타입이 딸깍하면 나옵니다. 이 속도감과 주도권은 정말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고민도 있습니다. 저는 이제 코드를 거의 안 읽습니다.
이래도 되나? 지금이라도 디자인 패턴이니 아키텍처니 슬슬 공부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은 그냥 AI를 잘 쓰는 법을 익히는 단계로 봐도 되나? …근데 이 얘기는 너무 길어지니까, 다음 글에서 제대로 풀어보겠습니다.
일단 오늘도 순항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한양노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