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인생에는 수만가지의 선택과 집중이 있다. 나의 삶에도 그러했다.
학교를 자퇴하고 또 학교를 가는 것도 나의 선택, 예술을 내 삶에 편입 시킨 것도 나의 선택.
각각의 무수한 선택이 옳고 그른 선택이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택 중에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가장 좋은 선택을 했을 뿐이다.
석사를 선택했을 때도 그랬다.
더 좋은 학위, 더 조은 조건을 원하면 얻을 수도 있었을테지만, 내게 석사의 제1선택 조건은 논문 하나였다.
누가 보면 말도 안되는 높은 곳을 목표했고, 목표하는 곳을 쓰게 해주겠다는 한 마디로 무턱대고 더 나쁜 다른 모든 조건을 선택했다.
솔직히 그 선택이 단 한번의 후회가 없는 오롯한 결과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다. 어떤 상황은 생각보다 암담했고, 사람은 쉽게 무례하고 약속은 허무하게 깨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지금 끝에 다다라서 말하는 것은 나는 내 목표까지 왔으니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원하는 것을 모두 배웠다. 배운 것을 더 잘하기 위해 배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므로.. 일단은 시작할 때 가졌던 모든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꾼 것으로 만족한다.
탑 학회에 논문은 이렇게 제출하는 것이구나, 리뷰는 이런 것이구나. 이게 필요하면 여기서 저게 필요하면 저기서 찾으면 되는 구나.
이 세계에 가진 믿음이 하나씩 부서질 때마다 열렬히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던 것은 내 책임감이었다. 꾸준히 하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이젠 뭐가 안되어도 상관 없다. 과정이 고통스러운 만큼 충분히 즐거웠다. 어떤 안되는 것을 붙잡고 물고 늘어졌을 때, 그리고 그걸 해결했을 때 얻은 그 카타르시스. 단순히 코딩에서 막혀서 해결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연구실에 앉아있다가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그럴 수 없어 옥상까지 달려갔던 날은 오랫동안 내 스스로의 자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가고 싶어 하던 기업의 면접도 봤다. 연구는 현재의 내 위치를 실시간으로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고통을 감내할만큼 사실 내 생각보다 더 이 세계를 좋아한 것이다. 나의 짧고도 긴 연구 생활을 떠올리면 그 동안에 겪은 것이 너무 많아서 가끔 시간이 물리적 법칙을 위배하고 흐르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 내가 더 자랑스럽다.
졸업이 즐겁다. 그간의 일들에 훈장을 거머쥔 기분이다.
앞으로 무얼 하면서 살아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개발이나 연구가 아니더라도 내 생애는 다채롭고 즐거운 일이 많고, 내가 원한다면 또 그것들을 기꺼이 해내기 위해 어려움을 감수할 것이다.
일단은 혼자서 여러 명분의 일들을 하느라 나를 돌보지 않은 벌을 달게 받기로 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그간에 받은 수많은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해야겠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 밟고 싶은 층이 연구인지 개발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