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르고 정리가 안될 수 있지만 날 것의 현 상태의 상황과 감정을 기록해봅니다. 저는 학부로 공학사와 미술학사를 복수전공했고, 현재 석사 과정 중 입니다.
이제 전업 연구자 생활을 한 지, 1년 반. 그 동안 일종의 삽질을 무수히 반복했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결과를 만드는 것 보다 related work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지금 연구가 어떤 기여를 가지는 지 현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과거의 것들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들을 한 번에 소화할 위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리하게 소화해내느라 아프면서 커왔던 것 같다. 처음에는 논문 한 편을 리뷰하기 위해서 1주일이 부족했는데, 이젠 하루 반나절도 안되서 파악이 끝난다. 다행이 삽질은 먹힌 것 같다. 내가 지난 1년동안 교수님도 시키지 않는 야근을 자처하면서 남아있던 것, 학교 통학시간과 체력을 아끼겠다고 서울로 이사한 것, 당장 쓰이지 않을 논문들을 읽고 수식을 이해하려고 기초 수학부터 공부하고 미친듯이 했던 삽질들이 헛되이지 않았음을 배운다.
나의 경우에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모르는 것을 물어볼 사수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길은 안보이고 시간은 가고, 더 좋은 랩 환경을 조금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전부터 그러했듯 길이 안보이면 길이 보일 때까지 밀어서 뚫는게 내 방식이다. 학부 시절에도 그런 마음으로 컴퓨터 전공 공대생이 겁도 없이 순수 미술을 복수전공했었다. 물감을 사본 적도, 붓을 전문적으로 쥔 적도 없는 내가, 아니 그전에 어렸을 때 그 흔한 미술학원도 다녀보지도 않은 내가 조형예술학과에 무작정 가서 회화도 하고, 한국화도 하고, 이론도 하고, 이래저래 다 했다. 그 때 뭔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지랄을 하나 이런 생각으로 했으면 못했을 것 같다. 선택했으면 그냥 해, 선택에 책임을 져, 그리고 마지막엔 좋은 선례가 되자는 마음으로 악깡 다 끌어와서 학부를 졸업했다. 만약에 내가 호기심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했었다면 처음 학부 연구생을 했을 때 그 랩에서 다이렉트로 끝냈거나, SKP같은 대학원 랩만 쳐다봤거나 그랬을거다. 그치만 나는 네임있는 랩에서 사회생활이나 보기 힘든 교수님보다 인간적인 교수님 아래서 크길 바랐고 나를 제대로 키워줄 수 있는 교수님을 바랐다. 좋은 분을 만난 것이 내 행운이다.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연구가 어떤 프로세스로 이뤄지는지, 이 도메인의 화두는 무엇인지, 연구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나름 대로의 체계를 잡아뒀다. 그래서 정말로 좋은 논문을 쓰고 싶다. 연구를 하는 나, 이 도메인의 연구자인 나, 연구자로의 나, ... 내 안에 순수하게 연구를 하고 싶은 내가 가득하다. 내 세상은 불안하고 불온전 하지만 내 연구를 사랑한다. 나는 내가 설정한 목표를 수행해나가는 내가 너무 좋고, 내가 너무 애틋하다. 그래서 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다. 그래서 올해의 석사 마지막 목표는 탑티어에 가는 것이다. 내 연구가 다른 연구자에게 더 이롭게 쓰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