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자다 석자야

jh_leitmotif·2023년 11월 3일
3

주저리주저리

목록 보기
6/6
post-thumbnail

아무리 생각해도 내 발등엔 불이 떨어져서 이미 불타오르고 있다. 그런데 마취라도 된 건지, 좀처럼 체감이 안된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하라는데. 난 반대로 가슴이 한없이 차갑다. 너무 머리가 오버클럭됐나?

퇴사

취업했다고 소문낸 게 엊그제인데 어쩌다 퇴사를 했다.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이별은 신기하게도 금방 전직원들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전부 다 내가 퇴사를 한다는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고 했다.
내가 회사 생활을 못하진 않았나 보다, 하고 안심했다.

그만두면서 아쉬운 점을 나열해보자.

일단 이정도로 말이 잘 통하고, 분위기가 좋았던 사우분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나름 많은 프로덕트에 내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이 시원섭섭하다.

납기가 정해져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배포된 코드들을 보면서,
내가 나가더라도 이 코드는 뒤엎어 버리리라 목표했던 것들을 결국 놓쳤다.

무엇보다도 뭔가 기술적으로 딥하기 들어갈락 말락하는 기로에서, 머리 속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를 상용에 적용해보지 못한 게 제일 아쉽다.

여태껏 리팩토링을 한답시고 했던 걸보면 그냥 내가 보기에 이쁘게 한 것이 다다.

내가 해놓은 것이 팀원들에게 공감을 얻었을까? 혹은, 다른 개발자가 채용할 만큼 매력이 있었을까? 고민해본다.
그저 컨벤션을 지키고, 최대한 선언형태로 만들고, 코드를 압축해나갔을 뿐이지 않았을까?

주니어 개발자에서 조금 더 나아졌을 뿐인 사람들을 100명 갖다 놓으면, 나는 그 중 99명에 속하지 않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뭐하고 지내냐면..

놀랍도록 별 일이 없었다.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고, 마지막 팀 회식을 했고.

참, 요즘은 병원을 다녔다. 장롱 무사고 10년을 자랑하는 내 면허 인생을 바꿔보고자 운전 연수를 받으려고 했는데,

거의 3~4년은 된 고질적인 눈 문제 때문에 안될 것 같아서 대학병원 안과를 다니고 있다.

좀만 거리가 멀어지면은 사물이 이렇게 보인다고...

수납액이 정말 대단하다. 실비보험이 없었다면 난 진작에 기절했다.
생각보다 안과 진료가 길어져서 결국 쉬는 동안 운전 연수 받는 것은 힘들지 않으려나 싶다.

일상 생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기는 한데.... 운전하는 데에는 꼭 고쳐져야 되는 문제라 어쩔 도리가 없다.

재밌는 건 모니터를 멀리하니 시력 검사 결과가 좋아졌다.

나는 내 눈이 0.4 ~ 0.6의 시력인 줄 알았더니, 컨디션이 좋으면 양안 1.0이 나오는 것 같다.

아쉽게도 모니터를 조금이라도 보는 날이면 금방 그대로 돌아가는 걸로 봐선, 1.0으로 살기엔 글러먹은 것 같다.

그리고 부트캠프 10월 ~ 11월 한달 간 부트캠프 코칭을 하고 있어서 매주 사흘씩은 일을 하고 있다.

부트캠프 코칭

아직 개발자 젖살도 안빠진 놈이 누굴 가르치는 건지 모르겠다.

수강생 분들은 좋다고 내가 하는 말에 집중을 해주시는데, '사실 나도 응애에요~' 라고 하고 싶은 걸 목 뒤로 삼키며 세션을 해드리는 와중이다.

7~8월 달에 첫 코칭을 했고, 피드백이 좋아서 10~11월달에 또 의뢰를 받았다.

처음은 쉬웠다. 이론적으로만 React/Express를 배우신 분들끼리 팀을 짜서 제공된 boiler-plate에 컨트롤 C+V만 잘 하면 완성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몰라서' 나에게 질문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약간....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 같았달까?

덕분에 맘 편히 내가 프론트 지망생일 때 알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자료들을 준비해서 세션을 진행했다.

지금 하고 있는 코칭도 7~8월 달에 하신 분들 대상인데, 지금은 이분들이 2개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마지막 프로젝트에 돌입하셨다보니 수준도 높아지시고, 질문도 많아졌다.

질답을 해드리고, 세션을 진행하면 할 수록 느끼는 것은 내 코가 석자구나.... 라는 생각이다.

확실히 나는 검색하는 속도와 대충 이해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괜찮은 편이라 잘 모르는 것도 곧장 찾아내 이해하고, 답변을 해낸다.분명 이것은 내 장점이지만, 이제는 단점으로 작용하는 기분이다.

뭐가 됐든 금방 검색해서 대충 하면 된다고 무심결에 생각하는 건지, 오히려 공부를 깊게 안하나 싶다.

그렇다보니 일부러 이번 코칭 때는 따로 private 레포지토리를 파서 직접 코딩해놓은 것을 수강생분들께 제공해드리고, medium 플랫폼에서 봤던 React 주니어 개발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했던 칼럼을 번역해서 전달해주기도 했다.

관련 링크 : https://medium.com/@Evelyn.Taylor/%EF%B8%8F-5-react-usestate-mistakes-that-can-put-your-job-at-risk-avoid-these-pitfalls-95848f94eace

또, 써본 적 없는 디자인 패턴을 개인 토이 프로젝트로 삼아 사설 라이브러리로 배포해보면서 학습하고, 그 내용을 수강생분들께 소개하며 당장 써보진 못하더라도, 언젠가 기억하고 써봤으면 좋겠다고 제공해드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 경험이 제일 값졌다. 거의 사흘~나흘 걸려서 머리를 쥐어짜가면서 코딩하고, 깃허브 패키지로 배포할 때도 한참 걸렸는데, 다 했을 때 예전에 한창 개발 재밌다고 느꼈을 때의 감정을 잠깐 맛봤다.

그런 발버둥을 쳐보고서 느낀 게, 아 이제 검색으로 알아가기보다 원론적인 지식으로 영감을 얻어야할 때가 됐는가? 라는 생각까지 왔다.

공부방법의 역전

우리 집에는 책이 참 많다. 내 전공 공룡책들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의 전공 공룡책도 군데군데 섞여있다.

군대병(?!)에 걸려서 '내가 군대에서는 꼭 책을 많이 읽으리라!!' 라며 다짐하며 사놓고선, 첫 장도 안 핀 책도 보인다.

한창 대학생 때 개발에 심취해있을 무렵, 샀던 책들이 있다.

프로그래밍 패턴 :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33가지 방법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나는 프로그래머다
코딩의 기술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

그 무렵이 2017년인가... 그랬으니까. 그 때 뭔가 개발자 뽕에 취해서 샀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에는 내용이 하나도 이해가 안되서 몇 장읽다가 접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로 14~15년차를 바라보는 개발자 사촌형이 내 방에 들어와 이 책들을 보고선,

너 한 3년차 되서 읽어보면 이해되겠다 ㅋㅋ 이걸 벌써 샀네 ㅋㅋㅋ

라는 농담을 던졌는데, 이제서야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가 이해가 된다.

내 코드에 최대한 파동권이 보이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하며

나만 이해되는 것이 아닌, 다른 개발자가 빠르게 해석할 수 있는 코드를 만드려고 하고,

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개발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코드를 만드려고 하고,

재사용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것, 저런 것을 시도해가며 동료들에게 어떻게 공감을 얻어야 되는지와 같은 것들은

원초적으로 절차형 프로그래밍에서 객체지향형으로,
그리고 함수형으로 나아가며 프로그래밍 방법론을 고민해왔던 앞선 선배 개발자들의 고민과도 똑같이 일치하지 않나 싶다.

그들은 이미 이러한 문제들을 겪었고, 그것에 대한 방법론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세상에 많이 풀어두었다.

나는 그것들을 짤막하게나마 검색을 통해 찍먹을 할 뿐이 아니었는가? 라는 자조적인 생각으로, 조금씩이라도 읽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예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이해할 자신감이 충분히 있다.

'잘' 하고 싶다.

개발자로서 잘한다에 대한 의미는 그저 코딩을 잘한다로 귀결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나는 확실히 천재과는 아니다. 스스로 영감이 팟하고 떠오르는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라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내가 개발자로서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머리가 고생하면 몸이 편하듯이, 최대한 내 스스로가 편하게 개발하기 위해 단순화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좀 더 확장시킨다면,

다른 개발자들이 과자먹듯이 내가 만든 것을 꺼내다 쓰지 않을까? 라는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머리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가슴은 너무나도 차갑다.

곧 책을 펴서 활자를 읽어내려갈 텐데 그 때는 좀 데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끝낸다.

profile
Define the undefined.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