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생활을 하며 얻은 것들.

jh_leitmotif·2023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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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슬기로운 의사생활 영상을 뒤늦게 유튜브에서 찾아보곤 한다. 특히 리뷰 영상들.

볼 때마다 리뷰어분들은 저런 환경과, 저런 의사는 얼마 없다는 둥의 이야기를 한다.

졸업 후 5년간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꼭 잘 일해야지' 다짐하지만 항상 모든 일이 잘 되지는 않았고 카페인을 수혈하면서도 피곤하다는 말이 가끔 튀어나오곤 한다.

그 동안 슬기롭게 일하고 싶었던 내가 느낀 것들과,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단점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자.

사람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금전과 같은 주변 환경과, 부모님들의 영향도 크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주변의 인간관계들이 개개인에 대한 방점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저 위에 있는 책을 꺼내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키 큰 친구가 슬쩍 꺼내주는 사소한 것부터, 어려움이 있을 때 상담해주는 사람이라던지, 혹은 진로에 대한 멘토들까지. 그들 모두는 단점을 보완해주는 최고의 동료들이다. 다음 단계는,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보답하면 되는 간단한 것이다.

내 단점은 좀처럼 시작이 늦는 것에 있다. 장바구니에 옷을 담아둔채 살지 말지 1주일도 넘게 고민하곤 한다. 일과 엮어보면, 새로운 기술같은 것을 도입할 때 막연한 의심이 든다.

'정말 사도 되나?', '이게 진짜 필요한가?'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고, 나 혼자만의 고민인 경우엔 거의 높은 확률로 흐지부지되곤 한다.

그렇다보니 한편으로는 머리로는 꼭 해야된다고 말하지만, 가슴으로는 잘 다가가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난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운다. 거금을 들여 클래스를 들어놓는 것으로 자기 자신에게 죄책감을 씌운다던가, 집 밖으로 나가 딴 짓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곤 하는데, 사실은 꽤 스트레스가 온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P들이 좋다. 내가 문제로 끌어안고 있는 부분들을 그들은 간단한 문제로 해결해버린다. 또 좋은 것은, 그들이 추진력을 내는 동안 뒤에서 나는 그들이 너무 빨라 놓칠 수도 있는 부분을 계속해서 정리해나가며 보람을 느낀다.

지금의 우리 팀이 딱 그렇다. 새로운 것들을 마구 가져오는 이들과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는 이들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뚝딱이며 나아가고 있다.

나만 불편한 게 아니다.

흔히 '남의 돈 벌기가 제일 어렵다' 라고들 한다. 참말로 맞는 말이다.

나는 침대가 너무 좋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바로 옆에 있는 침대와 등을 맞대고 싶고, 눈을 감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그처럼 회사 일을 하는 것은 맞지 않는 옷을 껴맞추는 것과도 같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는 순간 순수하게 좋아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듯, 나 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동료도, 저 건너편에 있는 동료도, 심지어 C레벨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각자의 이해에 따라 불편함을 자처하고 있을 것이다.

종종 무리한 일정이 갑자기 할당된다던지, 혹은 다른 팀원이 실수한 부분을 내가 커버할 때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나의 실수를 팀원이 커버해준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놓고 내가 잘못하여 사우에게 폐를 끼쳐버린 경우가 있었다.

4년 전, 인턴으로 근무할 때에 타 부서 분의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다가 실수로 데이터를 모두 날려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거의 반 패닉이었는데 같은 부서 과장님께서 거의 2시간 동안 함께 하며 데이터 복구를 할 수 있는 대로 도와주시고선 액땜했으니 다음부턴 괜찮을 거라며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게 계기가 되서 남은 인턴 계약 기간동안 별 다른 실수 없이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렇듯, 남에게 관대하며 나에게 엄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미 모두가 불편함을 안고서 일하고 있는 와중에, 누구나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나'에게 관대해지는 순간 그것이 곧 나 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의 정체를 일으키는 불씨가 될 것이다.

물론 실수한 것을 또 실수하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다만... 최소한 다 함께 같은 방향을 위해 나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해프닝들은 서로 밀고 당겨주며, 술안주로 소회하며 풀어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이라고 하자.

만고불변의 진리다. 모른다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면 안된다.
조금 아는 것을 아는 체해서는 안되며, 아는 것이라 하더라도 한 번 쯤 더 생각하고 말해야 된다.

케이스 중 가장 최악을 꼽으라면, 내 생각엔 아는 체 하는 것이 제일이다.

나는 모르겠다고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말할 때마다 마음 속 한 구석이 불편하다. 수학 문제집을 채점할 때, 틀린 것에 대해 과감히 그어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차마 그러지 못하고 세모 표시를 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일드의 제목처럼 차라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망치는 게 오히려 낫다.
(물론 년차에 맞지 않게 알아야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부끄러움의 범주가 아니다..)

간혹 잘못된 정보나, 완전하지 못한 내용을 가지고서 세상 다 안 것마냥 착각할 때가 있다. 나는 이것을 '작두 위를 걷는다' 라고 표현한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확신을 가지고 결단을 내리는 것은 마치 도박장에서 돈을 10배로 따고 오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건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고 하듯 차라리 모른다고 하자.
또한 아는 내용이더라도, 자신감은 가지되 100%의 확신이 아닌 100%의 확인을 가져가는 것이 제일 낫다 싶다.

'안돼요.' 보단 '왜요?'를 하자.

쉬는 시간에 기획자로부터 '개발자가 안된다고 하는 이유는 뭐에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생각해본 이유는 3가지 정도가 있었다.

  1. 당장 제안된 것을 할 시간이 없다.
  2. 제안된 것은 현재 설계 구조상 구현이 불가능하다.
  3. 하려면 하겠지만, 이해가 안 된다.

보통 1번과 2번의 경우가 많았다. 1번이야 비일비재한... 어쩔 수 없는 케이스에 해당하고.
2번의 경우, 실제로 기획자가 그려준 그림이 뭔가 싸하다 싶어 DB를 뒤져보니 그대로 개발되었다면 실제 데이터에 영향을 미쳐 클레임이 발생할 수 있어 다시 기획이 필요하다고 재기획 요청을 드렸던 경우도 있었다.

사례를 뒤로 하고, '안된다' 라는 단어에 집중을 해보고 싶다.
사실 개발자는 왠만하면 본인이 개발한 범위 내에서는 히스토리가 확실하기에, 이미 스스로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순수하게 안된다고 하는 것일 뿐이라고 미리 변명을 해두고..

Yes, Or No, true or false. 0과 1. 된다 혹은 안된다는 극단적인 차이가 있다. 그 뉘앙스는 말하는 것에도 적용된다. 개발자끼리야, 대강 왜 되는지, 왜 안되는지에 대해 서로 추가 토의를 하니 상관없지만 개발을 잘 모를터인 운영 또는 기획팀 입장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프로그래머' 만이 개발자일까싶다. 프로그래머든 기획팀이든 운영팀이든 QA팀이든 모두 제품을 잘 만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개발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되고, 안되는 이유가 명확히 존재하듯이 '비프로그래머' 입장에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논의해서 나온 결론을 제시하는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획서를 받아들고, 이미 머리 속에서는 '안된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을지언정 '왜요?' 또는 '왜 이렇게 되어야 할까요?' 같은 질문으로 운을 띄우는 게 더 긍정적인 경험들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의도로 그림이 그려졌는지 들어보면 당장 구현할 수는 없더라도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또한 정말로 안되더라도, 차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기획팀에서도 충분한 개발 히스토리를 공유받게 되면서 이후 기획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에요?

면접에서 항상 나오는 단골 질문. 어떤 사람이랑 일하고 싶고, 어떤 사람이랑 일하기 싫어요? 와 같은 주제인데.
그 속은 개인적으로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라는 질문인 것 같기도 하다.

꼭 반대 성격을 가진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듯이 말이다.

보편적인 답변은 '실력이 좋은 사람', '똑똑한 사람', '질문을 잘하는 사람' 등등이 나올 수 있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확실한 메세지를 말하며, 다름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이 좋다.
확실한 메세지라 함은 흐름에 온점을 찍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야기할 때 '처음부터' 충분한 정보를 갖고, 근거를 바탕으로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소통의 속도가 조금은 느릴 수도 있긴 하지만 오히려 첫 논의부터 서로의 상황을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 내가 다음 단계에서 어떤 것을 해야하는가? 에 대해 확신을 갖고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고, 그 속에서 유효한 생각들이 많이 나오기 마련이다.

사람은 서로 다른 24시간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은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며, 누군가는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는 모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상태에서,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부끄럽다 여기고 공개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도움의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모르는지 알면, 만약 나도 그것을 모른다면 함께 탐구할 수 있으며 아는 것이라면 알려주면 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모른다면 쿨하게 모른다고 이실직고(???)하고서 도움을 구하면 될 일이다.

나는 이런식으로, 서로 확실하게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하면 될 지 알 수 있고, 서로 간의 경험의 차이를 각자 가진 장점들로 보완하는 팀플레이어들이 좋다.

우물 파는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사람의 유형을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눈다.

  1. 남이 우물파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2. 우물을 파고 있는 사람
  3. 우물파는 사람들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졸업한 직후를 떠올려보면 난 첫 번째 유형에 해당했던 것 같다. 소통이 뭔지도 모르고 협업을 떠들어댔고, 대화를 잘한다고 포장하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던가, '빠르게 배우겠습니다' 따위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사실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값이며, 배움의 행위는 개인의 몫이 크고 나이와 위치와는 상관이 없다.

그 다음 단계로 우물을 파는 사람이 된다.

취업하고서 어느정도 적응이 된 뒤, 몇개월 정도는 무저갱을 파는 기분이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내 딴에는 규칙을 세우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믿는 형태로 수많은 화면들을 그려왔다. 하지만 내가 짜왔던 코드를 반성하며 갈아엎어보기도 하는 과정 중, 내 스스로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이 있었다.

기획된 화면이야 얼마든지 그리겠는데, 과연 내가 그린 것이 완전한가? 또한 내가 생산한 코드들이 다른 개발자들이 보기에 영감을 얻을 수 있을 만한 것인가? 에 대해서는 확신이 잘 들지 않았다. 스스로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에 대해 정확하진 않더라도 몸으로는 느껴지니, 지금까진 꽤 비약적으로 걸었다싶은데 내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과는 큰 벽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드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사용자 경험' 뿐만 아니라, '개발자 경험' 또한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면 화면을 안정적으로 서빙할까? 에서 나아가, 동료들이 어떡하면 이런 화면들을 더 쉽고, 빠르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더라. 그래서 토스 SLASH를 볼 때마다 놀라곤 한다. 저 곳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있는거지?

대학생 때에 날 잘 봐주시던 교수님께서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개발하는 것, 당연히 지금 아는 게 없으니 어렵겠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사실 개발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돕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민망하게도 요즘이 되서야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팀원들 언젠가 쓰기 편했으면 좋겠어서 몰래 오픈 소스 라이브러리도 하나 만들어보고, 겪어왔던 기술적인 시행 착오들에 대해 심심하면 스크럼 시간에 공유하곤 한다. 이제서야 그 큰 벽에 계단이 조금 보이는 것도 같다.

물론 코드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 완벽하다는 보장이 없으며, 일하는 모습을 통해 타인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이 땀흘려 동굴파고 있는 사람들을, 내 동굴을 파던 도중에 짬짬이 도와줄줄 아는 연습을 계속 하다보면은, 언젠가 나는 우물을 파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우물을 파고 있는 사람들의 방향을 잘 짚어줄 수 있는 헬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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