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코드 한달을 돌아보며

lilyoh·2020년 8월 23일
5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말도 잘 못한다. 한달을 돌아보는 글을 쓰면 좋겠다는 멘토님의 말을 듣고도 계속해서 글 쓰는 것을 미뤄왔다. 하지만 동기들의 진지하고 솔직한 회고록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고, 나도 짧더라도 꼭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저쩌다가 위코드에 오게 됐다


원래는 마케터로 일할 생각이었다. 우연히 시작한 디지털 마케팅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야근을 하면서도 일이 재미있어서 피곤한 줄 몰랐다. 하지만 오래 다니다보니 이 일을 계속 사랑하며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일을 그만두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이전에 했던 경험을 돌아보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했다.

탄자니아에 봉사 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간 여행이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마음을 빵빵하게 채워서 온 기억이 있다. 탄자니아는 내리쬐는 햇살만큼이나 교육열이 뜨거운 나라이다. 교육 봉사를 하는데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수업 시간을 노래, 춤 그리고 흥으로 채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아이들한테는 내 수업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들었다. 어떻게 하면 더 알찬 수업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고 별볼일 없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남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졌다.

디지털 마케터로 일하면서는 비효율적인 작업을 프로그래밍을 통해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 때 큰 희열을 느꼈다. API 를 통해 받아오는 데이터를 하나 하나 손으로 처리하다가 프로그램이 개발된 후 30초만에 RTB 광고 비딩가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미디어별로 사이트에 일일이 들어가서 데이터를 다운받다가 한번에 다운받아 매핑하여 리포트를 볼 수 있었을 때, 소재 관리를 나 혼자 하다가 소재 관리 사이트가 만들어져 모두가 효율적으로 소재 관리에 참여할 수 있었을 때! 내가 만든 광고가 미디어에 노출될 때 만큼이나 짜릿했다.

학교를 다닐 때도 개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고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는데 마케팅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미뤄뒀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케팅 일을 하면서 점점 더 프로그래밍이 가져다주는 큰 효용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프로그래밍이 주는 효용을 남들을 돕는데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위코드에 다니게 되었다! (급 전개!)

괴로울 때도 있지만 매일 매일은 즐거워 ♥


위코드 사전스터디 첫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낯가림이 엄청 심한데 또 정적은 참기 힘들어하는 성격이라 중간 중간 오디오가 빌 때마다 열심히 아무 말이나 했던 기억이 난다. 사전스터디를 하기 전에 HTML, CSS 를 혼자 공부할 때는 외로웠는데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7월 20일 개강 이후로 벌써 한달이 흘렀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레플릿을 풀 때는 재미있었고, 인스타그램 클로닝을 하면서는 응용하는 것이 어려워서 매 순간 낭패감을 느꼈다. 코드카타를 시작하고서는 내가 이렇게까지 바보였나 싶었고, 리액트로 인스타그램 리팩토링을 하면서는 이해할 것들이 많은데 빠르게 이해되지 않아서 내 자신이 멍청하다고 느꼈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위코드에 오면 늘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원님, 충희님, 용민님이 있다. 어렵다고 징징거리고 싶을 때는 내 징징거림에 공감해주는 예지님이 있다. 구글링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는 항상 친절하게 도와주는 예흠님이 있고, 내가 만든 신박한 에러들을 자기 일인 것처럼 해결해주는 연욱님과 건우님이 있다. 사전스터디 때부터 늘 진지하게 생활해서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휘찬님과 사전스터디 때는 말이 없었지만 이제는 나를 괴롭히는 걸 즐기는 창식님도 있다. 첫 2주동안 옆자리에서 옴싹옴싹 같이 코딩한 은별님과, 텐션이 떨어질 때마다 와서 수다를 떨어주는 태기님도 있다. 피곤할텐데 기꺼이 운동을 도와주는 태수님과 JMT 핫식스를 나눠주면서 항상 응원해주는 기욱님이 있고, 자기가 복습하러 왔으면서 나한테 더 많이 가르쳐주는 진아님이 있다. 옆자리였다가 자리를 바꿀 때 분리불안이 왔을 정도로 내 공부를 많이 도와준 영섭님도 있다. 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찰떡같이 설명해주시는 멘토님들도 있다. 모두 적진 못했지만 위코드의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다. 순간 순간 괴로울 때도 있지만 이 사람들 덕분에 매일 매일은 즐겁다.

결국 계속 쓰는 사람만이 개발자가 된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나는 종교가 없고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이 세계의 어딘가를 향해 감사 인사를 올린다.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좋아하는 작가가 글쓰기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적은 글이다. 진도가 빠른 동기들과 나를 비교하게 될 때, 내가 너무나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이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한 달 전에는 내가 코딩에 재능이 있을지 없을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지금은 내 재능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재능만큼이나 반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느리더라도 계속 코드를 치고 싶다. 오류가 나도 흥분하지 않고, 기능이 구현되면 충분히 기뻐할 줄 아는, 꾸준한 개발자가 되고 싶다. 결국 계속 코드를 쓰는 사람만이 개발자가 될 테니까.

3개의 댓글

comment-user-thumbnail
2020년 8월 23일

💜

답글 달기
comment-user-thumbnail
2020년 9월 12일

너무 좋은 글입니다 잘 읽고 가요

답글 달기
comment-user-thumbnail
2020년 9월 20일

분리불안 너무 일찍 극복한 것 같아서 섭섭쓰 🤔

답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