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왜 작은 사회인지를 설명하는 글을 적었다. 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환경적인 면에서 동질감을 느꼈고 실제로도 비슷한 부분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전 글 👉 내가 경험한 작은 사회, 나의 오케스트라 활동기 Part 1.
이번 글에서는 대학 시절 교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함에 있어서 어떤 포지션에 있었는지와 그에 따라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정리해보고, 사회에서는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사회원으로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작성하고자 한다.
필자는 바이올린🎻을 하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동을 했다. 그게 현재의 내 사회생활과 많은 연관이 되어 있다.
첫 회사 입사 시 수습 평가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좋다'라는 말을 들었고, 현재도 동료 평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커뮤니케이션에 부담이 없다'는 얘기들이었다.
사람들과 공동의 목표를 잘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온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오케스트라에서의 경험 중 무엇이 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었는지 가시화한 적은 없다. 그래서 내가 겪었던 포지션마다 배운 것들을 적어보고 회사에서는 어떻게 적용했는지, 또는 적용할 것인지 정리해보겠다.
학교 입학과 동시에 입단을 했다. 그 때의 나는 완연한 바이올린 초보자였다.
6학년 때 엄마한테 바이올린 배우고 싶다고 졸라서 딱 1년을 레슨 받고선, 초심자의 패기(?)로 중학교 관현악부에 입단. 그리고 중학교 졸업 후 약 4년 만에 다시 악기를 잡았다.
동아리 생활이 재미있을 거란 생각과는 다르게 세상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특히 그 때 했던 곡이 당시의 내게 너무 어려웠다. 너무 힘들어서 입단을 후회하기도 했고, 동아리를 탈퇴하는 것도 여러 번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오케스트라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일단 나는 현재의 상황을 빠르게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개선해야 할 것들을 나열했다.
개선 필요 사항에 따른 액션 아이템을 실행하고, 여름 MC(합숙 연습 기간) 때는 비로소 '단 시간에 많이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문제 상황을 파악해서 빠르게 질의하고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의 오케스트라 첫 해를 보냈다.
신입 시절, django와 mysql을 조금 해본 상태로 갑자기 flask, postgresql, sqlalchemy로 되어 있는 프로젝트에 투입됐던 기억이 났다.
처음 보는 구조의 코드는 큰 벽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고민했던 것은 개인적인 공부는 기본이며, 질문
자체를 잘 하려고 했었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땐 그걸 잘 모아서 사수한테 메세지로 번호 매겨가며 질문 폭탄(?)을 던졌다.
번호를 매기면서 쓴 내용이 오히려 답변하기 편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물론 내가 질문하는 입장에서도 더 편했다. 구조화 하다보면 질문의 목적과 의도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메세지 작성하는 데 내 생각의 맥락을 잘 담으려고 이 또한 메모장에 먼저 적으며 '첨삭'을 하면서 작성했다. 당시에 코로나가 심해져서 전면 재택을 했기 때문에 비언어적 요소가 없는 상황에서 생길 오해를 줄이고자 선택했던 방법이다.
이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좋다'라는 다수로부터 평가를 받으며, 수습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완전한 정규직이 될 수 있었다.
기장이라 함은, 동기들의 대표를 지칭했던 말이었다. 나는 2학년이 됐을 때, 갑작스럽게 기장이 되었다. 원래 기장이었던 동기가 기장을 그만두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당시 회장이었던 선배가 할 얘기가 있다더니 급 제안을 했어서 순간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이내 그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뭔가 앞장 서서 하는 걸 좋아했기에 큰 고민은 안했다. 그저 '동기들을 잘 이끌어야지!' 라는 다짐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2학년 때의 기장은 내 동기를 잘 챙기기도 해야 했지만, 신입생 챙기기
라는 소임을 다해야 했다. 갑자기 추가된 나의 업무
1학년 때 겪었던 동아리의 분위기에 반전을 꽤하고 싶었다. 내 동기들은 다소 무거웠던 동아리 분위기에 대다수가 탈퇴를 해버렸다. 나는 어찌저찌 버텼지만, 앞으로 동아리 생활을 같이 할 후배들에게는 그런 분위기를 전하고 싶지 않았다. 라포 형성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겠다 다짐했다.
총무였던 선배랑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봄소풍, 사진 출사 대회, 어린이날 기념 선물 추첨, MC 기간 마니또 게임, MT 기획 등. 사진이 필요하면 사진을 찍었고, 디자인이 필요하면 디자인을 했고, 영상이 필요하면 제작을 했다. 미디어학도들이 동아리 인력으로 쓰이는 방법
다행히도 내 진심이 통했는지 후배 기수들은 보다 많이 남았고, 연주회 준비도 더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다.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데에 꽤 도움이 되었다. 팀워크 향상 TF로 활동 중!
회사에서 팀워크 향상을 위한 활동으로 여러 가지 작업을 해보고 있다. 이름하야, 조직문화와팀워크혁신회식TF 팀원으로ㅋㅋㅋ 아이디어 회의에서부터 장소 섭외, 그리고 필요하면 미디어 콘텐츠 제작까지..!
물론 팀원들의 피드백에 따라 분기 별로 제공하는 콘텐츠를 조절하고 있다. 아주 단적인 예로, 외향적인 팀원은 이런 저런 활동 하는 걸 좋아하지만 내향적인 팀원은 집 가고 싶어한다. 이럴 땐 짧고 굵게 끝낼 수 있는 콘텐츠도 제공한다. 토마호크 먹으러 아웃백 간 걸로 매우 만족한 팀원도 있다.
4학년 때, 현악장을 맡게 된 후배가 '누나, 2nd 바이올린 파트장 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분명 신입 시절보단 악기 실력은 늘었지만, 파트의 리더가 되는 건 꽤나 부담이었다. 특히 실력적인 면에서.
그렇지만 한 번 쯤은 리딩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나는 동아리 회장 후보까지 올라갔지만 휴학하려던 타이밍과 겹쳐서 하지 못했던 것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기에, 파트장 제안을 또 다시 거절하고 싶진 않았다. 그것도 부담된다는 이유로. 차라리 이 김에 '실력을 늘리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파트장이 되고 나서는 나의 role에서 수행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 정의해보고 실천하려 했다. 정리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파트원 라포 형성
: 점심 회식(지원은 내가!), 커피챗 등으로 개인적으로도 얘기 많이 들어보도록 함파트 연습 관리
: 파트 연습을 주도해야 했다. 박자 연습, 음정 연습, 곡에 대한 전반적인 연습 등1st 바이올린 파트와의 협연
: 기본적인 연습은 현악장이 주도하지만, 활 체크, 슬러 포시 등은 곡의 흐름에 따라 같이 정해야 함지휘자와의 컨택
: 지휘자가 해석한 곡의 방향대로 연습해볼 수 있게 곡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함개인 연습 시간 지정
: 기존에는 그냥 연습하고 싶을 때만 개인 연습했지만, 정해진 시간엔 꼭 연습 실천액션 아이템을 챙기는 것 만큼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동아리 내에서도 작고 큰 일들이 많이 있었다.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항간에 떠돌곤 한다. 이 때,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었고, 현재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떠한 사건을 바라보는 눈은, 70명이면 70개의 눈이라는 것(또는 그 이상일 수도). 절대적인 편도 절대적인 적도 없다. 개개인의 생각은 다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생각 하나로 나는 비로소 타인의 바운더리를 이해했다. 한 때는 '나의 생각'이 곧 답인 것처럼 생각했는데, 막상 사람들과 부딪히고 사건을 맞딱뜨려보니 내가 항상 옳지만도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더 효율적이거나 정당하기도 했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도 빠른 결정을 위해선 때론 필요했다.
파트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가장 신경 쓴 건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리더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말하지 말고, 파트원들의 생각부터 읽으며 행동하자'는 기조로 대화를 했다.
Part1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조직에선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리더는 권위자가 아니지만 결정권에 있어서는 권한이 있다. 그 권한을 내 생각대로만 판단해서 누리면, 그게 곧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옳지 않게 힘을 휘두르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면 조직 내에 엄격한 잣대가 생겨 버려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질 것 같았다.
기장을 할 때도 무거운 분위기가 싫어 행동했었는데 그런 권위를 갖는 행위는 내겐 어울리지도 않았고, 나도 딱히 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리더의 역할을 잘 수행할 생각 뿐.
아마 이 시기에 했던 생각들이 현재 나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게 분명하다. 어느 위치에 있어도 나는 그저 '난 이렇게 생각하지만 너의 생각이 궁금해',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럼 이렇게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를 반복하게 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나를 F로 보는 부분이긴 하지만.. 의외로 T라는 점)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생각의 차이를 많이 줄여 파트원 간의 친밀도, 신뢰도를 높혀 연습 참여율 상승에도 기여하였다.
리더가 된다면 고려해볼 사항들을 계속 생각해보고 있다. '잘' 말하는 것에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현재까지 회사에서는 따로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진 않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다른 것보다도 성과 지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과정을 시각화 하는 방법에 있어선 아무래도 많이 부족했다. 현업에서의 리딩과 매니징에 대한 공부는 필요하겠다 싶다.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은 꼭 리더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타인, 타부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에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타인의 생각을 톺아보며 내 생각을 공유하고, 합치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대화법.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더 나은 솔루션을 찾는 데에도 엄청 도움 되는 대화법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이 관점에선 기본적인 결은 파트장을 역임했던 시절과 동일하게 갈 것이다.
졸업반이 되고 나니 동아리 활동엔 약하게 involve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서도 동아리 활동을 단박에 놓기 어려워서 대안책으로 '팀파니'라는 타악기로 옮기기로 했다.
팀파니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타악기니까 박자를 잘 쳐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도 나름 박자왕이었던 나였는데 스트로크 기법은 할 줄 몰라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때문에 드럼 패드부터 사서 연습했다. 흥미로운 기분이 드는 것도 잠시, 드럼 패드로 스틱 치는 연습은 정말.. 재미 없었다. 근데 안 하면 팀파니 못치니까 그냥 꾸준히 연습했다. 처음부터 잘할 욕심을 낼 이유가 없었다.
당시 드럼을 쳤던 후배가 많은 도움을 줬다. 손목 스냅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1:1 코칭을 해줬다. 손목에 힘을 빼야 했고, 많이 풀어주기 위해서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너무 재미 없으면 BPM이 빠른 음악을 골라서 들으면서 치라고 해줬다.
조언해준대로 연습을 지속하니, 처음엔 잘 안됐던 스트로크도 BPM 120에서도 4박자씩 쪼개면서 칠 수 있게 되었다.
뭐라도 새로 시작한다면 결국엔 초심을 갖고 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선상에 놓인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기존의 경험이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 어쩌면 다시 신입의 마인드를 가지고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땐 그저 짬(?)에 대한 자부심을 내려놓고, 내 경험이 넓어지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임하면 된다. 어차피 이전 경험이 큰 도움이 안 되고 새로 해야 한다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역설적이게도 더 빠를 수 있다.
그리고 주변에 잘 아는 사람한테 코칭, 조언 등으로 도움을 받으면 된다. 타 분야의 전문가들과 계속 네트워킹을 하는 것도 내 시야를 넓히는 좋은 방안이었고, 이 행위 또한 현재도 on going 중이다. (내가 사람 많이 만나는 이유!)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6년이나 활동했고, 졸업 이후로도 참여가 가능한 선에서 꾸준히 컨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의 덩어리가 예상보다 커지긴 했지만... 20대의 내 열정을 다 쏟았던 활동이었던 만큼 얻은 바가 많았다는 것을 표명하고 싶었다. 대과거여도 그 때의 활동이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저연차 때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에 뒤늦게나마 경험담을 작성했다.
지금도 가끔씩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인터렉션을 통해 '하모니'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는 행복과 그에 따라 성공적인 연주회를 하면 얻는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이 있어서다. 회사에서도 필자 포함 개개인이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을 얻어가며 일하고 있는지 재고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상황을 이해
하고 타인이 이해하기 쉬운 방향
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여도 남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전달된다면 그것은 전달일 뿐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벗어나게 된다.
타인이 하는 얘기를 잘 이해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적당히 내것으로 만들 줄도 알아야 했다. 남이 하는 얘기가 잘 이해 안된다면 질문을 잘 해서 이야기의 핵심을 찾아내면 됐다. 그리고 그 본질이 현재 내가 나아가려는 방향에 부합하는 이야기라면 잘 받아들이려는 수용
의 자세를 취하려고 했다. 커뮤니테이션은 나를 이해 시키고 타인을 이해해가며 꾸준히 인터렉팅을 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던 활동이었다. 그 경험을 회사 생활에도 대입해서 행동하게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나는 나의 세상을 넓혀가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어떤 개발자로, 또는 어떤 사회 구성원으로 도약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 대한 질문 하나 받은 기분. 차후에 연말 회고 쯤으로 이 질문의 답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걸로...!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온갖 드립과 고민 글을 올리고, 외장하드에 사진 10만 장 저장해둔 과거의 나에게 바칩니다. 고맙다 과거의 나야. 덕분에 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