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는 책 스카우트 팀이 있다고?

mare-solis·2022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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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같은 장대한 판타지부터 설렘 치사량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그리고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 <원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 중에는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많죠. 내가 좋아하는 책이 영화화된다고 하면 제작 관련 소식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읽지 않은 책이라도 하더라도 괜히 원작이 있다고 하면 기대가 되기 마련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실제 사례를 통해 영화화의 힘을 떠올려보겠습니다.



성공한 책은 영화 관계자에게 있어 가장 매력적인 시나리오임에 틀림없습니다. 관계자만 읽을 수 있는 여타 시나리오와 달리, 이미 대중에 공개되어 그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를 두고 영화사들 간의 치열한 물밑 전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혹은 아직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더라도 더 좋은 책을 누구보다 더 빨리 찾아내기 위한 "책 스카우트" 팀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게 이제 필수라고 하죠. LA 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코로나로 인해 콘텐츠 소비량이 늘며 책 영화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폭증하는 콘텐츠 수요를 감당하기에 책이 든든한 원천이 되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할리우드의 책 스카우트 팀. 사진을 누르면 관련 기사로 이동합니다.

특히,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에는 가성비 갑 영화들이 많습니다. <나를 찾아줘>는 6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3억 6천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고, <안녕, 헤이즐>은 1천6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3억 7백만 달러를, <헝거 게임>은 7천8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6억 9천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냈습니다.


한국도 할리우드만큼은 아니지만 책을 영화화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 사례가 있었습니다. 종이책은 아니지만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 함께>가 천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선보였는데, 아마 원작이 없는 시나리오였다면 영화로 만들어질 수조차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영화일수록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안전한 선택을 하기 때문에, 같은 제작비라면 이미 정립된 흥행공식이 있는, 예컨대 <베테랑>이나 <암살>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보다 현명한 판단일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과 함께>는 이미 웹툰으로서 스토리의 흥행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어 제작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한 셈입니다. <신과 함께>는 한국 영화 최초로 시리즈가 쌍으로 천만 관객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마케팅에서는 영화화를 브랜드 연장(Brand extension) 또는 상품 연장(Product extension)으로 보기도 합니다. 네이버라는 포털 서비스가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페이, 네이버 지도 등의 서비스로 확장되듯, 책이 영화로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존의 브랜드가 확장할 경우, 이미 구축해놓은 브랜드 이미지, 지식, 태도, 경험 등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우리 기억은 한 가지 노드(Node)가 형성되면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연관성이 있는 기존 노드에 붙여가며 구조화됩니다. 이를 연상 기억 장치(Associative Network Memory Model)라고 하는데요, 때문에 네이버 페이가 새로 나왔을 때, "네이버 포털 서비스를 사용해 보니 네이버는 편리하고 신뢰할 수 있지. 네이버 페이도 그럴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라고 합니다.

연상 기억 장치의 예. 뉴욕하면 연상되는 다양한 정보들이 있습니다.

스필오버 효과를 증대하기 위해서는 신호(Cue)를 사용합니다. 위에서 예시로 든 네이버가 서비스에 모두 네이버라는 이름을 동일하게 유지한 것도 기존 브랜드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가져오기 위한 신호로, 가장 흔하게 쓰이는 기법입니다. 더 나아가 애플의 아이폰 12, 13처럼 숫자만 증가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전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 사용자의 경험과 같은 기억을 더 쉽게 불러오기 위한 것이죠. 이름이 아니더라도 동일한 광고 음악, 모델 등도 좋은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폰이 비슷비슷한 디자인을 유지하는 것 역시 스필오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팬층이 두꺼운 브랜드의 경우, 스필오버 효과가 막강한 역할을 합니다. 책의 경우에도 팬층이 두꺼운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책의 팬층은 마블, DC 코믹스의 팬일 것입니다. 슈퍼 히어로는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너드의 전유물에서 대중문화의 대명사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도 비슷한 예입니다. 또 떠올릴 수 있는 강력한 팬층은 10대 여성입니다. 이들의 영향력은 <트와일라잇>이라는 신드롬을 만들어냈고, 이후에도 <퍼시 잭슨>, <헝거게임>, <메이즈러너>와 같은 트렌드로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키싱 부스>, <애프터>와 같은 웹 소설이 영화화되기도 했죠. 또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4, 50대 주부들입니다. 북클럽을 결성하여 독서량이 많고,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며, 구매력도 있기 때문입니다. 북클럽을 운영하는 배우 리즈 위더스푼은 자신이 선정한 책을 직접 영화화하며 제작자로 우뚝 섰습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HBO의 미드 <빅 리틀 라이즈>.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하고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브랜드 연장에 관한 흥미로운 견해 중 하나는, 스필오버 효과가 없더라도 소비자는 브랜드 연장 자체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기존 브랜드에 대한 경험이나 이미지가 없어도 해당 브랜드가 연장 브랜드 또는 상품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를 좋은 퀄리티에 대한 증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두에서 말했듯 영화가 원작이 있다고 하면 "뭔진 몰라도 재밌으니까 영화화했겠지", 또는 "원작이 있으니까 스토리가 탄탄하겠다" 하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지만 "북미 베스트셀러"라고 홍보하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듯, 원작을 영화화하는 것은 안전하다는 제작자의 믿음은 경험적으로는 어느 정도 증명된 듯합니다. 하지만, 이 믿음을 통계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본격적인 분석을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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