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로 9379일을 살고있다. 꽤 오랜 시간인 것 같은데, 일수로 바꿔놓으니 생각보다 얼마 안된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했지만,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던 것 같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오늘은 대학부터 지금까지 개발 인생에 대해 써보자.
딱히 정확한 '꿈'은 없었다. 정말 고르자면 선생님?이란 직업이 좀 멋있었던 것 같다.(재수까지의 입시생활에 자연스레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1,3지망은 자연과학계열의 전공을 지원하고 임용고시 루트를 생각해보았고, 남은 2지망은 점수를 꽉꽉 채워서 넣자는 마인드로 '소프트웨어학과'를 지원했다. '개발자는 굶어 죽을 일은 없다'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고, VS Code 창도 멋있어 보였기 때문에 막연하게 넣었다. 결과는 1,3지망은 추합에서 탈락했고, 2지망의 소프트웨어학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해서 대학시절에는 개발에 엄청난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입학 당시에는 github 조차 뭔지 몰랐으며, 영화 속의 '선수입장' 대사를 담당하는 해커 정도로 개발자를 생각했었기에, 실제 대학 과정의 공부는 내가 생각했던 '개발자'와 조금 거리가 멀었다. 특성화고에서 진작에 개발을 하다온 동기들도 많았기 때문에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많았고, 성적은 나름 잘받았지만 (전공은 3.8인데 나쁘지 않지 않나..?, 아님 말구), 입시생활 때처럼 그저 아등바등 따라가려는 '공부'만 했던 것 같다.
사실 신기했다. 개발이 재밌다고 하는 동기들(사실 몇명 없었긴 했는데)의 뇌를 열어보고 싶었다. 틈만 나면 빨간색 에러창에, framework는 또 뭐고, 쉬운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언어들은 왜 나만 어려운건지, 막상 대학교 때 배운 컴퓨터 구조, 운영체제 등의 CS 지식들은 찐 개발할 떄 쓰지도 않는 것 같고, 대학 교육과정보다 인프런이 더 좋은 것 같고... 땅을 칠 정도는 아니지만, 전공 선택에 대한 후회도 종종 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인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정확한 텍스트는 다르지만, 종종 인터뷰에 나오는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직업까지 이어지는 케이스가 적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 아닐까. 사실 정말 자기가 하고싶은 일로 돈 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합격 자기소개서 예시들은, 직종을 막론하고, 해당 분야를 얼마나 즐기고 재밌어하며 사랑하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자주 담겨있다. 수많은 자소서들의 필자들이 모두 '행복'한 삶을 원한다며 글을 쓰지만, 모두가 진실되게 글을 작성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에 '그거 내가 만든거야'라고 가장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직업은 개발자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직업이 몇개나 될 거 같애? 난 그게 재밌더라고.
현재 개발자로 근무중인 친구가 했던 말 중 일부이다. 같이 개발자에 대한 진로를 꽤 고민해왔었고, 얘기도 잘 통했다.(주량도 잘 맞아) 열심히 했었고 꽤 개발 쪽으로 재능도 있던 친구였다.
최근 만나 진로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사실 자기도 개발이 재미없었다고 고백했다. 그저 남들이 다 열심히 하니까, 자기가 선택한 전공이니까 따라 열심히 했었다고 한다. 결국 입사까지 하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처음 보는 것 투성이였고, 대규모 서비스의 한 부분에서 자신의 실수가 치명적이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컸다고 한다.
어떻게 처음부터 재밌어. 하다보니 재미를 찾게되더라고.
N년차, 이제는 필수적인 한 사람이 되었고, 일을 해나감에 있어 자기의 기여도가 확실히 보이니 더욱 도움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찾아보기도 하며, 야근도 자주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항상 한 것 이상의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다른 직종들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소모품이 아니라 구성요소로서, 자신의 노력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직업이지 않을까라는 것이 친구의 결론이었다. 세상에 그저 소모품으로서 억까당하는 직업들도 많을텐데, 큰 구성요소로서 어떤 일을 해내는 것이, 살아감에 있어 의미를 계속 주는 기분이라고 했으며 이제는 떳떳한 어른이 되가고 있는 것 같아 재밌다고 했다. 추가로 빠르게 바뀌는 개발시장에서, 나 자신이 나태해질 일이 없어, 강제 갓생을 살게 해주는 점도 좋다고 덧붙였다.
아직 재미를 찾아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글로벌 IT 인턴쉽 최종 면접 때 이렇게 답했는데, "이제서 찾고있으면 좀 늦는데..?" 라고 반문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떨어졌나?) 근데 솔직히, 어떻게 처음부터 재밌을까.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는 것을 알고, 공부가 깊어질 수록 알아야 할 분야들도 늘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한숨이 나오지 않는다. 친구의 말처럼, 자신의 기여가 전체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더 많은 자격을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요새 취업 준비를 하며 자소서 및 포트폴리오 작성에 힘을 쓰고 있지만, 솔직히 아직 그 자격이 부족한 것 같다. 친구가 먼저 찾은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내일도 힘차게 노트북을 열어본다.
글이 술술 읽히는데요...? 같이 화이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