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야지라는 다짐

권대규·2021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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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 님의 '살고싶다는 농담'이라는 책을 읽었다.

평소 에세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기에, 무턱대고 밀리의 서재 에세이 1위 책을 골라서 읽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공감이 되고 나에게 위로가 되주었다. 특히, 찬란할 거라 생각했던 나의 전역 후 20대가 코로나로 인해 무기력하던 시기에 읽어서인지 오히려 내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세상은 에타보다 밝고 인스타보다 어둡다

책 첫장에 적힌 문구이다.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페이스북을 지웠다. 인스타그램은 지우려다 말았다. '그래도 사람사는 이야기는 봐야지'라는 느낌이었지만, 코로나 시국에도 잘 놀러다니는 걸보면 한쪽 깊은 곳에서 샘이 나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내 여행은 다 파토가 났다. 집 - 노래학원 - 샌드위치집 - 헬스장 이라는 건전한 생활을 한 지도 대략 2주째다. 그래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과거에는 나도 인스타그램을 건강하지 않은 목적으로 열심히했다. 내가 이렇게 잘 살아요, 나의 삶은 이렇게 빛납니다, 고독함이라는 어떠한 시험에 대해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지만 이제 별 생각이 없다. 다 비슷한 인생이고 굳이 인스타에서 나 혼자만의 대회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인스타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현재 내 인생에 이렇다할 즐거운 일이 딱히 없어서 안 올리는 거지, 즐거운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올릴 것 같다. 다만 그 목적이 과거와는 다르게 그냥 내 추억을 남기는 하나의 저장소일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면, 인스타에는 사진을 남기는 것처럼.

그렇기에 이제는 인스타로 내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 자존감이 굉장히 낮았을 때는 오히려 SNS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내 친구들은 알 만한 대충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속의 공허함은 겉에서 메꿔지지 않았고 이제는 거진 굳이 삶을 평가해서 뭐하나 싶다라는 마인드다. 모두의 삶에 저마다의 고충이 있을 거고, 저마다의 행복이 있을텐데 행복만 모아놓은 SNS를 보고 비교하며 뭐하나 싶다. 인스타그램이 하이라이트라면 인생은 롱테이크다.

삶을 비교하진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은 비슷한 무언가가 두 개가 있으면 당연히 비교하지 않을까? 위에서 허지웅 님이 쓴 문구와 비슷한 글을 본적이 있다. '세상은 에타보다 밝고 인스타보다 어둡다.' 여기서 에타란 대학교 내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의 준말인데, 나에게는 나름 지성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학교도 익명의 가면 뒤에 숨으면 그 추악한 속내를 어디까지 드러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 중 하나였다. 이렇듯 조건과 환경에 따라 삶을 비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삶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비교하려면 조건을 좀 동일시했으면 좋겠다. 나도 내 행복한 순간만 모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리고 애초에 행복이 측정은 가능한가. 비교는 하되 열등감도 우월감도 아니 그냥 이해도 하지말고 '그러려니'라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행복하다면 행복한거고 내가 슬프면 슬픈거지 뭐. 난 지금 행복하진 않은데 그닥 슬프지도 않다. 발성 연습이나 잘되면 좀 행복해질 것 같다. 그냥 각자의 삶, 열심히 버텼으면.

용기, 평온, 지혜. 그 중 제일은 지혜

삶의 모토로 삼을 만한 글귀도 덕에 접했다. 바로 평온을 위한 기도문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이 둘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위 세 가지를 모두 지키며 사는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상적인 삶은 이룰 수 없기에 이상적라고 생각하기에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위 기도문은 실천보다는 노력 쪽에 가중치를 둘 것 같다.

다만 이 기도문이 모두에게 공평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기준이 공정할까. 애초에 사회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극도로 적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저 사람도 바꿀 수 없을까? 화자의 의도에서 약간 핀트가 어긋난 의문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네 주제를 알아라'라는 공격적인 멘트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사회속의 나를 잘 형성하는 것은 타인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상대적인 위치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예시로 고등학교 시절에는 모의고사라는 전국적인 지표가 존재해 나의 위치에 대해 확인할 수 있고, 어느정도 자존감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되게 나는 불안정한 상태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이 방향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x,y,z 3방향에 대해서 모두 내 위치를 모르겠다. 아마 나와 비슷한 나이대를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닌 의문점이자 걱정거리가 아닐까싶다. 긍정적으로 보면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내 위치는 어느정도 보장되어있겠지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사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가끔 현실적인 망상을 할 때 국가에서 주기적으로 청년 잠재가치 랭크를 매기면 어떨까, 나는 몇등급이나 나올까라는 생각도 종종하곤 한다.

잠시 샛길로 빠졌지만,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3가지 요소에 대해서 내가 가장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일단 분별할 수 있는 지혜는 아니다.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주변 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속의 나는 아마 용기 쪽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사회 속'이라는 사족을 붙였듯 진짜 나에게 충분한 요소는 평온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 20대 중반이지만, 해가 바뀔수록 바뀌는 게 싫다. 단순히 나이를 먹기 싫다는 말이 아니라 변화가 살짝 두려워지고 참는다는 선의 한계가 늘어나는 느낌이다. 그래서 사회 속 '나'가 무턱대고 시작한 일에 대해 평온을 좋아하는 '나'가 고통받곤 한다. 그래도 이런 두 가지 '나'가 양립하는 현 현상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혜를 기른다면 둘이 알아서 잘 협상을 하지 않을까? 결국 돌고돌아 지혜다. 살다보면 늘겠지. 분별하는 지혜를 얻기를. 내 주제를 잘 깨우치길.

끔찍한 주기함수

허지웅 님은 본 책에서 니체의 글을 정말 많이 인용하였다. 니체에 대해서는 허무주의와 관련이 있다, '신은 죽었다'라는 멘트의 장본인이라는 정도밖에 모르지만, "이 끔찍한 삶이여, 그래도 다시 한번" 이라는 니체의 말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독일어로 쓰인 글귀라 해석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위와 같이 해석하고 싶다.

아직 창창한 20대 중반에 뭔 끔찍한 삶이냐 싶겠지만, 오히려 창창해야 할 20대 중반이라 끔찍한 것 같다. 군대에서는 전역만 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코로나라는 환경 속 불완전한 자유는 오히려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만약 지금 내 무기력한 하루하루가 평범한 삶이라면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끔찍할 것이다. 위에서 아직은 불행하지 않다고 느꼈다는 감정은 다 이러한 인식에서 기인한 것 같다.

니체는 세상의 숱하고 지독한 배신으로부터 광인처럼 기어올라와 '차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역작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역작속에서 니체는 인생의 영원회귀에 대해 논했다고 한다. 나는 천성 공대생이라 그런지 이러한 영원회귀를 하나의 반복되는 그래프라고 이해하였다. 그리고 내가 니체처럼 거창한 삶의 배신, 사랑의 배신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 내 삶을 톺아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은 저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니체가 그랬듯,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언젠가는 다시 정상궤도에 올라서고 이 추진력을 계기로 새로운 고점을 갱신하고 싶다. 니체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을 외쳤듯이, 나도 하나의 삶이라는 주기의 끝에서 다음 주기를 마주할 때 지난 날을 회고하며 새로운 삶을 마주하고 싶다. 그 찰나의 회고에 나는 어떠한 순간을 기억할까. 아마 내 성격 상 내 인생의 고점들 위주로 기억할 것 같은데, 그렇기에 더 높은 고점을 찍어보고 싶고, 그 순간을 위해 오늘도 버티며 살아야겠다.

평소에 글을 써보고는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무작정 소설을 써야지! 일기를 써야지! 이런 게 아니라, 단순히 글을 써보면서 더 논리적이고 깊은 사람이 되어봐야지라는 의도와 나도 언젠가 성공하면 나의 글들이 하나의 작품이 되지않을까라는 의도였다. 그리고 이런 의도들은 이 책을 읽으며 행동으로까지 발전한 듯 하다. 사실 글 하나는 이미 썼다. 새벽에 써서 그런지 살짝 부끄러웠고 지금은 비공개지만, 글 아카이브가 어느정도 쌓인다면 언젠가는 풀 것이다. 이렇게 책이라는 핑계를 두고 쓰는 글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기저로 쓰는 글. 괜찮은 취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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