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영리한 놀이 중 하나다.
진지하기엔 허술하고, 가볍다고 하기엔 놀랍도록 깊다.
누군가는 그것을 대화의 시작점으로 사용하고,
또 누군가는 자기 정체성의 축으로 삼는다.
열여섯 개의 알파벳 조합은 사람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우리는 그 안에 기꺼이 들어간다.
사람의 여러 지적 능력중 하나는 바로 추상화다.
수많은 경험과 감정을 덩어리로 묶고,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한다.
우리는 카테고리를 만든다.
'감성적인 사람', '계획적인 사람', '혼자 있길 좋아하는 사람'.
그러한 분류는 오차를 포함하더라도 편리하고, 무엇보다 안정적이다.
MBTI는 그런 본능에 딱 맞는 장난감이다.
나는 INTP야, 너는 ENFP야. 이 간단한 선언만으로도 서로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낯선 사람 사이에서도 말문이 트이고, 오래된 관계에도 해석의 틀이 생긴다.
알파벳 네 글자가 성격이라는 미지수를 푸는 암호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은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
같은 유형으로 묶이는 것에 안도하고, 다른 유형을 보며 경계를 그어본다.
이건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니다.
어쩌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은 오래된 감각이 작동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나는 특별하지만, 동시에 어디에든 속해 있다’는 이율배반적인 안심.
물론 MBTI는 완벽한 도구가 아니다.
사람은 알파벳 네 글자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다.
추상화된 범주로 묶일 수는 있지만,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된 존재가 바로 우리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가끔은 그 네 글자가 자기 자신을 이해할 단초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건 틀을 좇는 게 아니라, 틀을 빌려 나를 더 잘 보는 일에 가깝다.
MBTI는 결국 사람을 구분 짓기 위한 도구이기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단순한 심리 게임도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