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퇴사 한 이후 심경 변화를 시간 순서대로 적어봤습니다.
퇴사를 한 시기는 이미 인턴 지원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다음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전까지는 자유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야근과 주말 근무로 인해 약해진 체력을 다시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하고, 그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그렇게 스타트업과의 이별은 너무나도 홀가분 했습니다.
복학 신청 후 겨울 방학이 찾아 왔습니다. 겨울 방학에는 학교에서 취업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빡세보이는 취업 캠프에 지원했습니다. 비슷한 전공의 사람 5~6명과 함께 조를 이루어서 자소서 작성을 시작으로 인적성 검사, 면접, 토론 등의 수업을 이어 나갔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서 면접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프로그램 이후에도 조원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매주 한번씩 모의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복학 후 첫 학기 이자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많은 기업들이 공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스타트업의 서러움(?)을 알았기 때문에, 전부 대기업 위주로 공격적으로 지원 했습니다. 삼성전자 / LG전자 / 현대자동차 등을 지원했고, 서류 전형은 모두 통과했습니다.
서류가 통과 된 후 각 회사 마다 진행하는 전형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대부분 적성검사 이후에 면접이 진행되었고, 삼성전자의 일정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적성검사 이후 기술 면접과 인성 면접까지 모두 마치고 결과만 기다리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LG전자는 적성검사 이후 기술 면접까지 통과 한 상태였고, 현대자동차는 적성검사 이후 면접 일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행되는 중에 삼성전자에서 가장 먼저 최종 합격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LG전자 / 현대자동차의 채용 전형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면접에 대한 압박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아 삼성전자로 마음을 굳히고 다른 회사의 전형을 포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회사의 전형을 다 보고나서 선택해도 전혀 손해보는게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고 그 만큼 스트레스가 심했었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대기업 입사가 확정 된 상태에서 무엇 때문인지 스타트업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beSuccess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beLanuch 라는 행사에 Staff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그때 마음 속으로 언젠가는 다시 스타트업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 먹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니문 기간 : 허니문 기간은 미국의 정치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이다. 미국 의회와 언론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약 100일 정도는 지나치게 비판을 자제한다. 이 100일간의 기간을 허니문 기간이라고 불렀다.
대기업에 드디어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폐지 되었지만, 당시에는 한 달 가까이 합숙하며 전 그룹사 신입사원이 함께 연수를 받았습니다. SVP(Samsung shared Value Program) 라고 하여 삼성의 역사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문화를 교육 받고, 세뇌(?) 시키는 프로그램 입니다. 흔히 푸른피를 수혈한다고 합니다. 연수 동안 UCC TF에 소속되어 각종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연수에서부터 열정적으로 삼성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삼성전자 신입사원들만 별도로 진입하는 연수를 짧게 진행했고, 드디어 부서 배치를 받게 됩니다. 정말 정말 운이 좋게 동기가 6명이나 되는 곳에 배치 받게 되었습니다. 부서의 업무는 기존의 스타트업에서 하던 업무와는 완전히 동 떨어진 일이었습니다. 기존에는 최상위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일이었다면, 이 곳에서의 업무는 거의 최하위 단의 하드웨어와 밀접하게 연관 된 일들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많은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실전에 투입되기 보다는 스터디 또는 다른 행사 지원 등의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사장님과의 간담회(?) 같은 자리에서 사원들에게 한 명씩 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당당하게 "아직 부서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업무를 파악하는 중입니다" 라고 말했더니, 제 뒤의 거의 모든 신입 사원들이 동일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간담회 종료 후 상무님의 내리 갈굼이 있었습니다. ㅎㅎㅎ 전입 온지 3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업무 파악 중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느냐 라는 요지였습니다. 전 그냥 사실을 말 한 것 뿐이었는데 ㅎㅎㅎ
부서에서의 업무는 서서히 적응이 되어갔고, 입사 후 1년 쯤 되었을 때 이제 슬슬 푸른피가 많이 빠졌을 때 쯤 다시 하계수련회 라는 것을 통해서 재수혈을 합니다. 하계수련회는 약 일주일 간 합숙하면서 놀기도 하고 뭔가를 합니다. ㅎㅎㅎ 동영상으로 보시는게 빠를 것 같습니다. 북한 아니고 삼성 그룹사 1년 차 사원들입니다.
어찌어찌 회사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던 것은 잦은 부서 이동과 내가 만든 것이 매번 버려지는 것을 봐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연구 개발 부서이다 보니 연구를 해서 사업부에게 제안을 하고 그게 실제로 사업부에서 채택 한 경우에만 지속적으로 개발이 이어집니다. 그렇지 못 한 아이템은 연말에 버려지고, 연초에는 다시 새로운 아이템을 기획해서 진행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사원의 입장에서는 휘둘려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본인들의 분야가 있었던 석박사들의 경우 회사에서도 대부분 본인의 영역을 구축하여 과제가 변경되던, 부서가 변경되던 큰 상관없이 커리어 패스를 연결해 갑니다. 하지만 사원의 입장에서는 3년을 다녔어도 전혀 연속성 없는 업무를 했기 때문에 남는게 없습니다. 물론 회사 업무와 별개로 본인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깨어있는 동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저처럼 평범한 사원의 경우는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주도적이고 연속적으로 업무 하던 것이 그리웠고, 이직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축구 관련 스타트업, 친환경 쓰레기통 스타트업, 비영리 스타트업 등을 관심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개발자 포지션으로 몇 군데 스타트업에 지원을 해봤지만 면접에서 탈락되거나, 심지어 서류에서 탈락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업무의 연관성 보다 삼성전자 3년 경력 하나 믿고 지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내가 가진 커리어로는 도저희 개발자로 밖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친환경 쓰레기통을 만드는 스타트업에는 기계 조립 포지션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면접 전에 직접 발로 뛰며 해당 제품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방문하여 사전 조사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원 한 업무 자체가 제가 해왔던 업무와 전혀 다른 업무였기에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여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연봉을 낮추면서 까지 그렇게 나가고 싶다면 보람있는 일을 하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비영리 스타트업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비영리 스타트업과 관련해서는 별도로 글을 하나 작성하겠습니다.)
비영리 스타트업을 무모하게 두드린 끝에 문이 열렸고, 그렇게 대기업 퇴사를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나게 되었습니다. 퇴사 한 달 전 미리 부서장님께 말씀 드렸고,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냥 불도저 처럼 밀고 나갔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당시에 자기계발 휴직이라는게 있었는데, 1년 정도 그런 것을 써봤으면 어땠을까? 라고 가끔씩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퇴사를 결정한 후에는 기존 업무를 마무리 짓고, 단기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데모 업무에 합류하여 퇴사 당일까지도 업무 시간을 꽉꽉 채우고 7시에 퇴근을 했습니다. ㅎㅎㅎ 개인적으로 퇴사하는 날 이렇게 하는게 회사에 남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그렇고 제 입장에서도 편한 것 같습니다. 남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저는 미련이 안 남아서 좋습니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이렇게 대기업을 거쳐 다시 스타트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삼전을 포기하고 스타트업으로 가셨다구요? 진정한 용자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