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났을 뿐이다.
왜 2020년대가 되었는데도, 인간과 기계는 협력을 똑바로 못하는걸까?

많은 것들이 무인화가 되어가고 있지만, 인간의 하위호환 버젼으로 존재할 뿐이다. 인간과 기계와 인공지능이 협력하여 시너지를 낼 수는 없는걸까?
그렇게 창업을 하게 되었다.
때는 2021년도였다.
여느때와 같이 회사를 다녔다가, 퇴사해서 내 사업을 만들어보고, 실패하고, 다시 취업하는 것을 반복하던 시기였다.
사업이라는게 무엇인지 감을 잡아가면서, 이번 사업만큼은 돈을 벌어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의 나는 '개발자'였다. 하지만 '사업가'의 눈을 가지게 되면서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업가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막 사업에 눈을 떴고, 내 능력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이뤄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여러개의 사업을 만들어 고객의 반응이 좋은 사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해보기로 결정했다. 한달만에 7개의 사업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고객의 반응이 좋았다. 첫날부터 50만원의 수익이 발생했다. 그 사업에서 나는 '무엇이든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마법의 칩'을 팔았다.

어떤 제품이든, 내가 만든 마법의 칩을 부착하면 원격제어, 원격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이 사업은 처음에 연구실을 타깃으로 만들었다. 주변 연구원 분들이 여러 실험 장비를 힘들게 직접 제어하는 것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미경, 드론 등 여러 장비에 나의 칩을 팔았다. 처음 맛보는 '사업에 대한 작은 성공경험'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있던 경상도에서 떠나, 서울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에서 나를 찾는 고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살이는 쉽지 않았다. 급격하게 오른 고정비 때문에, 기존 수익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매출의 도약을 이루고 싶었다. 고작 몇십, 몇백만원으로는 내 지갑도, 내 꿈도 버티기 힘들었다.
내 사정이 어떻든, 세상은 알빠가 아니다. 내 통장잔고는 0원, 내 지갑에는 1만원이 있었다. 배가고파서 국밥집 앞에 서서 10분정도 고민했다. 평소에 먹던 맛없고 영양가 없는 식단으로 5일을 더 버틸지, 지금 국밥을 먹고 힘을 내서 더 높은 도약을 할지 말이다.
나는 국밥을 먹었다.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다시 일하러 돌아가는 길이 어지롭고 토할 것만 같았다.

마침내 나는 각성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다고해서, 내가 원하는 매출을 만들 수는 없다고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콜드콜, 콜드메일을 뿌렸다. 말도 더듬고, 쪽팔렸다. 하지만 여러 방법을 시도한 끝에 내가 찾던 고객과 매출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때 쯤부터 나는 제조업체를 타깃으로 바꾸었다. 제조업체에서는 자기네 제품을 인터넷에 연결하여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들은 제품을 정말 잘 만들지만, 서버나 웹에는 역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제품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제조업체에게 나의 칩을 팔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은 제조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해야할 일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칩이 들어있는 제품을 양산해서 팔기도 했고, 매출도 늘어갔다.
나는 이 사업을 더욱 키워보고 싶었다.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군대라는 족쇄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했다. 이대로 계속해서 성장하면서 몇년 뒤에 군대에 끌려갈지, 아니면 지금 군대를 갈지 말이다.
나는 군대를 가기로 결정했다. 군입대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생겼다. 그동안에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군대에서도 내 사업이 돌아갈 수 있도록 팀을 꾸릴까? 아니면 다른 곳에 취업을 짧게라도 해볼까?
다양한 시도들을 해봤지만, 결국 아무 성과없이 군대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군입대 직전에 나는 '마케팅과 세일즈'에 눈을 뜨게 되었다. 유튜브를 보다가 아주 멋진 세일즈맨을 보았기 때문이다.
군대에 가서는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전역할 때까지 계속 배를 탔고, 밤낮없이 바다를 지켰다. 그러면서 나는 인스타그램 채널을 키워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클라이밍을 취미로 하고 있다. 군대에서는 클라이밍을 할 수 없으니, 클라이밍에 대한 이론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공부하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까운 정보들인데?'
그렇게 클라이밍과 관련된 인스타그램을 만들었고, 3주만에 1000명 팔로우를 넘어섰다. 밤낮없이 배를 타던 군대 안에서 말이다. 잠깐 부두에 정박한 때에 콘탠츠를 만들고, 팔로우를 모은 경험은 정말 감격스러웠다.
이때 나는 브랜딩과 세일즈에 더욱 빠지게 되었다. 잘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게 잘 파는 것이고, 잘 팔기 위해서는 고객을 이해하고 설득하고 신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끝에 '구매'로 이어지게 되었을 때의 그 쾌감은 아주 좋다! 아마 처음 보는 이성에게 프로포즈를 성공하는 느낌일 것이다. (*고객과 회사는 연애에 비유를 많이 해서 쓰는 비유)
시간이 흘러 전역을 했다. 그리고 날 뛰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고객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난 뒤, 처음 겪는 경제위기였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경제가 흔들렸고, 이 영향을 고스란히 나의 고객인 '제조업체'가 타격을 받은 것이었다.
다들 부도, 파산 ...
암담했다.
몇 개월 간, 나는 이 상황을 파악하고, 이 위기를 돌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시간을 썼다. 그렇게 나는 '불황일수록 잘되는 사업'을 만들었다.
이전 사업이 제조업체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도와주는 '마법의 칩'이었다면, 이번에는 인건비가 없어 일손이 없는 자영업자를 위한 '마법의 칩'을 판매하는 것이다.

아시는 분의 요청으로 이 사업은 시작되었다.
'제발 우리 사업장을 무인으로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자영업자를 상대로 세미나에 참여했다.
약 30명이 있는 작은 세미나에서, 나는 잠재고객 150개를 얻게 되었다.
제발 그 서비스를 팔아달라고 예약구매하신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관련 업체도 이 서비스를 자기네 서비스에 공급해 달라고 했다.

정말로 필요한 서비스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왜 아직도 우리는 기계와 협력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일까?
힘들어하는 자영업자들이 기계와 잘 협력할 수 있는 인프라만 갖춰져도 훨씬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자영업자 뿐만이 아니다. 우리 인류는 기계와 인공지능과 자유롭게 협력할 수 있게 된다면 수많은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기계와 인공지능과 자유롭게 협력할 수 있게 된 상태를
'호모 하이퍼 커넥투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호모 하이퍼 커넥투스'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고자 한다. 호모 하이퍼 커넥투스가 되어 질병, 기후위기, 사회문제 등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막강한 서포터가 될 수 있음에 막강하게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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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도약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