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프로젝트로 마켓컬리 클론을 하고 후기를 남겼었다. 마찬가지로 당근 마켓 모바일 앱 클론 팀 프로젝트 후기를 쓰다가 문득 왜 쓰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왜 후기를 쓰는지, 회고록을 남기는지 본질적인 이유에 생각해보았다. 앞으로 후기와 회고를 작성할 때 그것이 가지는 힘과 필요성을 이해한 채로 글을 쓰고 싶었다.
후기나 회고란 (당연하게도) 누가 강요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내 경우에는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엄청 즐기는 사람이라서 후기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후기 혹은 어떤 글을 왜 쓰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느정도 공통 이유가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글을 많이 써보지도 않았고, 잘 쓰지도 못하는 내가 왜 회고록을 쓰고 있는걸까? 불필요한 행동을 굳이 시간을 들여 이유도 모른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글을 작성하며 후기와 회고록 혹은 포괄적으로 '글'을 왜 써야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정리해보았다.
아래 글은 온전히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어떠한 근거를 기반하여 쓴 글이 아닙니다.
어떤 경험을 하고 나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는 그 경험이 그냥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처럼 흐릿해진다. 여행 중 사진을 한장도 찍지 않았다면 그 여행은 머릿속에만 있는, 서서히 잊혀가는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여행에 대해 글을 쓰거나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나중에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 때의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게 된다. '인간은 결국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라는 말도 결국 자신이 겪은 중요한 경험에 대해 되돌아보거나 기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력과 관련해서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 가설이 잘 알려져 있다. 학습한 내용을 의식적으로 복습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빠르게 잊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의식적인 복습이 있을 때마다 배운 지식 중 많은 부분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생 때 들은 과목들 중 기초과목, 기반과목의 경우 학교에서 여러 수업을 듣다보면 어쩔 수 없이 복습하게 되어 지금까지도 잘 기억한다. 하지만 벼락치기를 했거나 그 당시 잠깐 공부했던 과목은 지금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라는 것은 지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기계발도서를 그냥 만화책 읽듯이 슥 읽고 넘어간다면 '자기계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중요했던 프로젝트를 하고 나서 느낀 점이 무엇인지 기록하지 않거나 다시 상기시키며 생각으로라도 정리해보지 않는다면 내가 한 팀 프로젝트는 그냥 '개발자로서 성장했던 즐거운 경험이었어!' 정도로 남게된다.
그렇다고 모든 경험을 다 기록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같은 경험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고, 개개인의 가치관은 다르기 때문에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이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게 두 번의 팀 프로젝트는 배운것도 많고 기억하고 싶은 것도 많기에 다양한 측면에서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경험에 대해 회고를 하며 후기를 남기는 것이다.
내게 의미있는 경험, 기억 그리고 배움을 정리하거나 기록할 수 있다. 간단한 일기를 쓸 수도 있겠고, 회고록의 형태로 글을 쓸 수도 있다. 기록은 그자체로서 가치도 있지만 기록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배움이 좀 더 정확하고 오래 남게 된다.
과거에 얽매이는 것은 좋지 않지만, 배울 것이 있다면 과거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나서 그 당시에 느낀 것도 있지만 회고하고 다시 생각 정리를 하면서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것들도 많다. 그 당시에 집중하느라 큰 그림을 보고 있지 못하다가 끝나고 되돌아보니 새로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는 뜻이다.
첫 팀프로젝트였던 마켓컬리 클론 프로젝트가 끝나고 회고록을 쓰고 있는 주말 오후였다. 프로젝트가 어땠는지, 무엇이 아쉬웠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왜 팀프로젝트에서 소통이 중요한지 몸소 느꼈다는 것이 큰 경험 중 하나였다. 그러나 프로젝트 당시에는 '소통이 중요하다'라고 느끼기만 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더 소통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깊게 하지 못했다. 짧은 프로젝트 기간에 개발적으로 굉장히 몰두했던 기간이라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즉, 소통의 중요성과 소통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인지하기만 하고 해결책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그 당시에 소통을 더 잘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절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회고를 하면서 당시 발생한 문제와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론트와 백엔드가 회의할 때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프론트팀 내부에서 회의할 때는 어떤 소통을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말해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전달되는지. 각자가 서로 한 일에 대해서 어느정도로 디테일하게 공유해야 하는지.
나의 경험과 배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정리하며 문제가 있었다면 해결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행위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 투자와 결과물은 일반적으로 정직한 비례관계를 가지기 마련이다. 회고와 후기남기기라는 시간 투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거나 당시에는 생각지 못했던 배움을 얻기도 한다.
실제로 바로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1차 프로젝트 때 배운 소통의 방법을 적용시켜 보았다. 팀 인원이 7인에서 4인으로 줄어 소통의 방식이 다른 느낌이긴 했다. 그렇지만 개발자 사이의 소통,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해 회고에서 생각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혹은 의식적으로 적용시켜볼 수 있었고 2차 프로젝트는 소통 면에서 꽤 만족했다.
지식에 대한 회고라고 하면 복습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처음 배울 때 신기해하며 이해했다고(착각하며) 즐거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아는만큼 보인다고, 다시 한 번 그 지식을 복습하거나 다른 지식을 습득하고 다시 돌아보면 내가 이해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롭게 배우면서 내 이전 지식이 깨지는 경우도 물론 많다. 그러나 같은 내용이라도 복습하거나 좀 더 깊이 생각하다보면 더 제대로 이해할 때가 있다.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한 번 더 되돌아볼 때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스스로 진단하고 어떤 방향으로 학습을 이어나가야 할지 진단하기에도 글쓰기는 유용한 방법이다.
이 항목은 회고가 가지는 힘이라기보다 글이라는 기록 방법 자체가 가진 힘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주는 장점에 대해서는 논리력을 길러준다던가 하는 이유 등 전문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때문에 이 항목은 특히나 더 내 생각에 기반을 둔 글이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로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동기부여, 목표의식, 자아성찰 등의 단어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글로써 정리정돈할 수 있다. 글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거나 회의를 통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어느것이 더 좋다 비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게다가 나는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것을 매우 좋아한다). 상황에 맞는 것들이 있고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글을 쓰다보면 정리정돈이 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게 글로 쓰는 것보다 더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로 풀어내는 것이 쉬운만큼 말하고 싶었던 포인트를 조금 빠트린다던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아쉬운 경우가 분명 있다. 특히나 내가 애매하게 알거나 정확히 내 머릿속에서 정돈되지 않은 생각이나 지식이라면 더욱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글로 풀어낼 경우 그렇지 않다. 글을 쓰다 보면 하나씩 차근차근 집고 넘어가게 된다. 내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 애매하게 알고 있던 것임을 글을 쓰다 보면 깨우치게 된다. 또 즉흥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기에 말보다는 더 정돈된 형태로 내 생각이나 지식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글로 정리한 뒤에 말로 설명하면 정돈된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지식 습득을 위한 공부를 할 때 글로 정리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많이 갈린다. 나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신봉자는 아니기 때문에 내가 배우는 지식을 모두 정리해서 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상황에서 글로써 정리하는 것보다 학습에 더 효과적인 방법이 많다. 그 시간에 학습 자료를 한 번 더 복습한다거나, 문제를 푼다던가, 실제 상황에 적용시켜본다던가! 하지만 때에 따라 글로서 정리해보면 더 정리가 잘되는 경우가 있다. 안타깝지만 이건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고 개개인에 맞게 스스로 그 노하우를 터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화로서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그 고유의 독특함과 특징이 있다. 매신저로 대화하는 것과 달리 대면하여 대화할 때만 느껴지는 그 무언가가 있다. 마찬가지로 글로서 내 생각과 지식을 공유할 때도 특유의 강점이 있다. 중요한 업무는 글로써 기록을 남긴다. 구두계약보다는 글로 명시되어 있는 계약서를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주제에 대해서 내 생각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빠짐없이 공유하는 데는 글이라는 매체가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또한 글로 남겨놓으면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내 식으로 쓴 글'이기에 내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자바스크립트 호이스팅에 관한 블로그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내가 이해한 방식과 내가 선호하는 워딩으로 작성한 글이기에 다시 그 글을 찾아 보았을 때 매우 편하고 쉽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하는 추억 팔이는 언제나 즐겁다. 다음 술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로 우려먹어도 또 재미있다. 후기와 회고도 가끔 그런 재미가 있을 수 있다. 일상 영상을 비디오로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것처럼, 그냥 즐거웠던 기억과 추억을 글로 쓴다는 측면에서 글 쓰는 것이 일상의 행복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마냥 재미없고 따분하다면? 혹은 오래 기억하기 위해, 새로운 학습을 위해, 혹은 정리정돈을 위해서만 글을 쓴다면? 글 쓰는 것 자체가 불행하거나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쓰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사는 사람도 아닌데 그걸로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서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추억 팔이로서의 후기, 회고는 쓰는 것에 대한 즐거움 자체를 준다고 생각한다. 추억 팔이로서의 내용이 공유하기 어렵다면 혼자 일기처럼 적어두면 되리 것이다. 글의 일부 혹은 전체를 가볍고 재미있께 쓰는 것은 글을 쓰는 것 자체에 부담을 줄이고 재미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기와 회고. 혹은 글쓰는 것 그자체. 이 일들이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되면 정말 좋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즐거움을 느끼도록 내가 글의 주제 방향을 잡아서 글을 쓴다면 글 쓰는 것이 즐겁다는 그 자체로 글을 쓰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재밌는 주제 잘 읽고 갑니다. 기가 d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