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인생의 시작, 2023년을 보내며

옵주비·2023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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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og에 글을 작성한지 꽤나 오래 되었다.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취준이 끝나는대로 velog 말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글을 열심히 작성해도 조회수가 막 나오는것도 아니고, 댓글이 막 달리는 것도 아니다보니 뭔가 글쓰는 맛(?)이 떨어진달까. 2022년을 마무리하며 썼던 글은 조회수가 꽤나 나오긴했는데, 이건 아무래도 몇몇 기업명이 본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 티스토리 혹은 깃허브블로그로 옮기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2023년을 마무리하며 글을 하나 남기고 가려고 한다. 2023년은 나에게 있어 새롭게 태어나는 해가 되었다.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 카카오 겨울 인턴십

개발자로 커리어 전환을 하며 취업을 준비한 첫 시즌(2022 하반기)에 바로 카카오 인턴에 합격했고, 그렇게 2023년 1~2월은 인턴으로 정신없이 보냈다. 두달동안 집에서부터 지하철역까지 걷는 것 외에는 아무 활동량도 없이 카카오 아지트 건물에 앉아 프로젝트만 했던 나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단기 목표를 위해 내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고, 건강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핸들이 고장난 8톤트럭처럼 달렸다. 그만큼 간절했고,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늦은 나이에 개발자로 시작한지 반년만에 국내 최고의 기업 중 하나에 인턴으로 들어간 김에 정규직까지 되고 말겠다는 욕심이 컸다. 여기서 실패하면 개발자로서 실패하는 것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았던거 같다. 아직도 새벽 6시에 회사 수면실에서 일어나 찬물로 샤워하며 마음을 다잡던게 선명하게 기억난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에 탈락하고, 모든 것을 걸었던만큼 후회는 없지만 정말 크게 좌절하며 3월을 시작했다.

모든 것을 잃을 뻔했던 3월,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3월에는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던거 같다. 정규직 전환이란 목표 달성에 실패함과 동시에 오랜만에 운동을 하다가 양쪽 발목에 동시에 부상을 입었다. 이때 나흘동안은 걷지도 못하고 그냥 어두운 내 자취방에서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었던 것 같다. 끊임없는 부정적 자기암시와 함께, 나쁜 생각과 함께.... 이때쯤 오래동안 만나온 여자친구마저 떠나갈 뻔했는데, 내가 나를 포기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건강, 사랑, 그리고... 등등 모든 것을 잃을 뻔했다. 나를 포기하고 내려놓고 살았다.

그러던 3월 말의 어느 날, 몸무게 3자리를 인생 최초로 기록한 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지낼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살아보자. 아직 내 마음에는 커리어 전환을 시작할 때 가졌던 열정이, 그리고 다시 한 번 도전할 용기가 남아있을까? 스스로도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났다. 언젠가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서 일단 운동부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지난 실패를 마주하고 원인이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시간을 리드하는 것이 아니라 쫓겨사는 것, 단기적인 성과나 실패에 일희일비하는 것, 내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은 것.......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결국 지금까지 내 방식은 '지속가능성'이 없었다. 이 지속가능성이란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깨닫게 된 과정을 더 자세하게 적으려면 길이 너무 길어질거 같다. 책을 쓰라면 한 권 쓸수도 있을거 같은데, 어쨌든 지속가능성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나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제 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조금씩 동굴 밖으로

물론 처음부터 실천이 쉽지는 않았다. 4월에는 어떻게든 식습관, 생활습관, 운동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하며 인스타그램에 운동계정을 하나 시작하며 매일매일 운동+식단일지를 올렸다. 습관을 만드는데는 3주가 걸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버텨가며 습관을 만들자 5월에는 실천이 좀 더 수월해졌다. 그렇게 4~6월에 나는 100kg에서 79kg까지 감량할 수 있었고, 다시 취업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기간에는 일단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집중했기에 2023 상반기에는 총 3군데만 지원을 했다. 네이버 공채, SK에너지 공채, 카카오브레인 전환형 인턴 공채. 아직 실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자신감도 없었고, 지속가능한 생활습관이 자리잡기 전이라 이 3개도 모두 마감일에 고민하다가 부랴부랴 준비해서 지원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카카오브레인 인턴에 합격하며 좀 더 빠르게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뜨거웠던 여름, 카카오브레인 인턴십

그렇게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는 카카오브레인 인턴 생활을 하면서 정신없이 보냈다. 카카오브레인 인턴 '패스파인더'는 정말 특이한 과정인데, 거의 모든 과정에 현직자 분들과 촬영팀이 함께한다. 얼마전에 카카오브레인 유투브에 이번 인턴십 생활도 올라왔던데, 부끄럽지만 뿌듯하게 봤다. 몇번 술먹으면서도 얘기했고, 팀 인터뷰 때도 얘기했지만, 카카오브레인 인턴으로 지내며 함께한 3명의 팀원들 덕분에 나는 동굴에서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2023년에 얻은 최고의 수확은 이 3명의 인연과 함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카카오브레인 인턴 시작 전에 모든 인턴들이 각자 자기소개글을 적어서 노션에 올려서 공유했는데, 나는 자기소개글을 내 개인 노션에 따로 엄청 공들여서 작성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뒤에, 강한 임팩트를 남기고 싶어서 전략적으로 나의 자기소개 글을 거의 가장 마지막 날에 늦게 업로드했다. 그리고 이 3명은 내 자기소개 글을 읽고 나와 같은 팀을 하고 싶다고 한 팀원들이라, 다행히도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여튼 이 글을 볼리는 없겠지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다음 주에도 내 생일 전날 보기로 했다:) 슈퍼콘 땡큐!

두번째 실패, 하지만 쉽게 극복

카카오브레인 인턴을 마무리할때쯤, 카카오브레인 인턴의 정규직 전환 결과는 10월에나 나온다는 얘길 들었다. 나는 전환 결과를 기다리기보단 곧장 2023 하반기를 준비하는 방향을 선택했는데, 이번에도 어쩌면 전환되지 않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괜찮은거 같은데 타 계열사에서 카카오브레인으로 다수의 인원이 넘어오면서 사무실 자리조차 부족한 상황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성형 AI 시장이 불꽃튀는 와중에 카카오브레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미리미리 하반기를 준비했기에 좀 더 많은 기회를 모색하고 면접 경험치를 쌓을 수 있었고, 카카오브레인 정규직 전환 발표가 나던 날에도 물론 탈락에 아쉬웠지만 이전만큼 좌절하진 않았다. 이날 나는 카카오브레인 외에도 한 기업의 서류전형에 탈락했지만, 2개의 서류전형과 면접전형에는 합격했으며, 이 모든 결과는 한 기업의 합숙면접에 참여 중에 확인했다. 이렇게 나는 미리미리 준비하며 항상 Next Step을 생각하게 되었고, 쉽게 꺾이지 않는 멘탈을 장착했다.

물론 이번 달 초에 정말 가고 싶었던 기업의 최종면접에서 탈락했을 때에는 잠깐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미리 나 자신과 한 약속이 있었다.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나의 다음 날 아침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다음 날에는 언제나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새벽운동을 다녀오고,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은 후에 8시에 스터디카페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냈다. 이제는 내가 쌓아온 노력들이 한 기업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공들여 쌓아온 탑은 날마다 더 견고해지고 있고, 나 자신 외에는 그 어떤 외부요인에 의해서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이나 외부 요인에 대해서는 잘 파악했지만 나를 잘 알지 못했다면, 이제는 나는 나 자신을 정확히 안다. 내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스스로와 대화하며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명확하게 정의하려 노력하다보니 비로소 나를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을 리드하게 되었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은 뭐했나하고 보내는 날이 없어졌고, 설령 하루를 아쉽게 보내더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꾸준함을 생각하며 다음 날은 또다시 충실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4개월만에 다시 일하게 되었다. 32살에 다시 신입으로 일하게 될진 몰랐는데... 아무튼 출근!

마무리

"카카오, 카카오브레인에서 선택받지 못한 지원자님은 왜 우리는 뽑아야 하나요?"

최종탈락한 기업에서 이런 질문을 했었다. 당시엔 정말 너무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 질문을 주신 임원분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복기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다보니 오히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한편으론 부족한 부분에 대한 분한 마음과 함께 동기부여도 확실히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인생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에 모든 면접을 마무리하고, 뒤늦게 '재벌집 막내아들'과 '무빙'이란 드라마를 보았다. 어쩌면 나도 인생 2회차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올해 많이 발전한거 같다. 실패경험과 함께 인생의 최저점을 찍으며 나라는 사람은 자타공인 정말 단단해지고 많이 성숙해졌다. 그리고 회복탄력성이 좋아졌다. 많은 도전을 하다보면 실패는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일텐데, 이 당연한 이치를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다. 실패해보지 않았다면 "잘 날아오르는 것은 잘 떨어지는 것"이란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을텐데, 이 말은 앞으로도 계속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삶의 의미를 명확히 생각하며 계속 성장하기 위해 도전할 것이고 또 실패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지금처럼 나의 중심을 잃지않고 지속가능성이란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내년 이맘때쯤의 나는 또 얼마나 모든 면에서 성장해있을지 정말 기대된다:) 새롭게 태어나게 된 2023년에 무한히 감사하고, 2024년도 멋지게 살아가보자.

E.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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