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강으로 시작했는데 구조가 바뀌었다
시작할 때 이름은 v2.5였다. 보강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렉스랩은 옵티스랩의 첫 자회사다.
시간상 가장 오래됐고 페이지도 가장 많다.
그런데 탈모케어랩·피부케어랩·뷰티케어랩을 차례로 만들면서 정립한 방법론이 렉스랩에는 적용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다른 세 곳에서 확인한 결을 렉스랩에도 입히는 정도로 잡았다.
이틀 뒤, 이름을 v3.0으로 바꿨다.
보강이 아니라 사이트의 축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정리한다.
법률 상담 플랫폼 사이트는 대개 죄명으로 나뉜다.
성범죄, 폭행, 사기, 음주운전. 각 페이지에는 정의가 있고, 처벌 조항이 있고, 변호사 선임 기준이 있다. 논리적이고 깔끔하다.
문제는 검색자가 그 순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입 키워드를 열어보면 실제 검색은 이렇다.
"경찰 출석요구", "참고인에서 피의자 전환", "검찰송치 문자", "휴대폰 포렌식 기간", "집행유예 중 음주운전". 죄명이 아니라 자기가 놓인 상황을 친다. "성범죄 처벌"보다 "경찰에서 연락 왔는데"가 먼저다.
죄명 중심 구조는 이 검색을 받지 못한다.
받아도 답이 없다. "경찰 출석요구"로 들어온 사람에게 법정형 표를 보여주는 식이다.
v3.0은 이 어긋남을 고치는 작업이었다.
기존에 있던 것은 죄명 축 하나였다. 여기에 절차 축을 신설했다.
형사 절차 /criminal-process/
├─ 고소대리 /complaint
├─ 경찰조사 대응 /investigation
├─ 검찰송치 /prosecution
├─ 항소심 /appeal
└─ 집행유예 /probation
각각은 죄명과 무관하다.
무슨 죄든 경찰 조사는 받고, 송치는 되고, 재판은 간다.
그러자 사이트가 격자가 됐다.
세로축은 죄명, 가로축은 절차. 검색자는 어느 칸으로 들어와도 양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마약 페이지에서 "집행유예 중인데"를 누르면 집행유예 페이지로, 집행유예 페이지에서 "무슨 사건인가"를 누르면 죄명 페이지로.
이 시점에서 v2.5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페이지를 다듬은 게 아니라 사이트를 읽는 방향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절차 축만으로는 부족했다.
같은 "경찰조사"라도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모든 페이지에 상태 분기를 넣었다.
초범인가, 재범인가
동종전과가 있는가
누범기간인가
구속됐는가, 불구속인가
집행유예 기간 중인가
본인인가, 가족인가
이 여섯 가지가 전 페이지에 깔렸다. 마약 페이지의 "집행유예 기간 중입니다"와 폭행 페이지의 "집행유예 기간 중입니다"는 답이 다르다.
마약은 동종 재범이라 실효 위험이 특히 높고, 폭행은 위험한 물건 사용 여부가 먼저 갈린다.
법률 마케팅 글을 계속해서 쓰다 보니 알게 됐다.
검색자가 정말 알고 싶은 건 죄명이 아니라 "내 경우는 어떻게 되느냐"다. 그리고 그건 죄명 × 상태의 교집합에서만 답이 나온다.

작업 중반에 실수를 하나 했다.
디지털 성범죄 페이지에 "집행유예 기간 중이라면 → 집행유예 페이지 보기" 링크를 걸었다.
그런데 이러면 무한루프다.
형사절차 페이지가 "무슨 죄야?"라고 물어서 디지털 성범죄로 보냈는데, 거기서 다시 "집유 중이야? 그럼 집유 페이지로" 하면 검색자는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런 방법이면 어디서도 답을 못 받는다.
그래서 원칙을 세웠다.
죄명 페이지는 종착지다.
"디지털 성범죄 × 집행유예 중"의 답을 그 페이지가 직접 소유한다.
링크로 넘기지 않는다.
절차 자체가 궁금할 때만 절차 페이지로 보낸다.
기존 구속영장 페이지는 "체포 후 48시간"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절차 설명으로는 맞다.
그런데 이 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니 어긋나 있었다.
체포된 직후 48시간 안에 있는 사람은 검색을 못 한다.
유치장에 있기 때문이다.
검색하는 사람은 그 바깥에 있다.
실제로 이 페이지가 받아야 할 상황은 이쪽이다.
불구속으로 조사를 받다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경우.
영장실질심사 날짜를 통보받고 그 사이에 있는 경우.
가족이 구속됐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는 경우.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체포 시한 설명이 아니다.
심사까지 남은 시간에 무엇을 준비할 수 있는지, 누가 어떤 서류를 낼 수 있는지, 구속되면 그다음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다.
그래서 페이지 전체를 이 각도로 다시 썼다.
절차를 나열하는 페이지에서, 지금 시간이 급한 사람이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페이지로.

리드 품질을 위해 트래픽을 버린다는 것 이건 나름의 결단이 필요했다.
그러나 결국 당장의 매출보다 중요한것은 옵티스랩의 리드품질이였다.
하나의 예로,
유입 데이터에 "카톡 고소"가 꾸준히 있었다. 볼륨이 매우 컸다.
그런데 1:1 카톡에서 나에게 한 욕설은 명예훼손도 모욕도 성립하지 않는다.
공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검색자를 다 상담으로 보내면 리드 품질이 무너진다.
그래서 사이버 명예훼손 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카카오톡 1:1 대화에서 한 욕설, 고소가 될까요?
명예훼손과 모욕은 공연성이 있어야 성립합니다. 1:1 대화에서 상대방에게 직접 한 욕설은 고소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키워드는 흡수하되, 성립 안 되는 사람은 스스로 알고 나가게 했다.
대신 통매음에 관련한 다른 분기도 있으니 이것은 남기고 다른 트래픽은 상담을 배제했다.
같은 방식을 전세사기에도 썼다.
"보증금을 못 받았다"는 결과만으로는 사기가 아니다.
계약 당시 반환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가 기준이고, 없으면 무혐의로 끝난다.
이걸 정확히 알려주면 민사 케이스는 이탈하고 형사 케이스만 남는다.
모든 트래픽을 상담으로 미는 게 좋은 플랫폼이 아니다.
법률 콘텐츠에서 가장 어려운 건 단정하지 않으면서 도움이 되는 것이다.
"초범이면 집행유예 받습니다"라고 쓰면 안 된다. 사실이 아니고 위험하다. 그렇다고 "사안마다 다릅니다"만 반복하면 아무 정보가 없다.
찾은 답은 이거였다. 왜 단정할 수 없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초범이라는 사실만으로 결과가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최근에는 적발된 사건이 1건이어도 포렌식에서 과거 자료가 복원되면 재범 위험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쓰면 검색자는 스스로 "혼자 판단하기 어렵겠다"에 도달한다. 강요가 없는데 조력 필요성이 생긴다. 단정 회피가 곧 전환 장치가 된 셈이다.
작업하면서 기존 페이지의 오류를 발견했다.
앞서 말한 구속영장 페이지의 48시간이 대표적이다.
체포 시한과 심사 일정이 뒤섞여 있었다.
이건 각도만 바꾼 게 아니라 사실관계 자체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상해·폭행 페이지는 정당방위를 세 곳에서 다루고 있었다.
한국에서 정당방위 인정은 극히 드물다.
검색자에게 실효성이 적은 정보는 대부분 걷어내고, 그 자리를 위험한 물건·누범·집행유예 같은 실제 가중 요건으로 채웠다.
사이버범죄 비용표는 "600-만원"처럼 하이픈 오타가 12곳 있었다.
AI가 콘텐츠를 인용하는 시대에 팩트 오류는 그대로 확산된다.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 한다.
법률 플랫폼은 변호사법을 지켜야 한다. 특정 변호사 추천, 결과 보장이 문제가 된다.
기존 페이지에서 걸리는 표현을 찾아 고쳤다.
"전문 변호사" → "변호인"
"불기소 성공에 큰 도움" → "초기 대응 방향 검토에 도움"
"집행유예 확보" → "양형 자료 준비"
"합의 유도" → "합의 검토"
"확보·성공·유도" 같은 단어가 결과를 약속하는 뉘앙스를 만든다. "검토·정리·준비"로 바꾸면 같은 의미를 전달하면서 안전하다.
작업 후반에 배운 것이 있다.
전세사기 섹션을 설계하면서 판단 기준(민사 대 형사)과 정황 네 가지를 한 섹션에 넣었다.
내용은 완벽했다.
그런데 실제로 시각화해보니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제목도, 대비도, 정황도 다 비슷한 무게라 눈이 어디 갈지 몰랐다.
성격이 다른 두 가지를 한 섹션에 넣은 게 원인이었다.
앞부분은 분류(내 사건이 어느 쪽인가)고 뒷부분은 검증(뭘 확인해야 하나)이다.
둘로 쪼개니 각각이 주인공을 갖고 위계가 자동으로 섰다.
한 섹션에는 덩어리 하나.
이게 결론이다.
형사절차 클러스터와 신종 사기 유형 페이지가 신설됐고, 형사 관련 페이지 전반이 같은 기준으로 재구성됐다.
형사 절차와 직접 관련이 없는 개인회생·파산, 가사사건 페이지는 UI 개선 중심으로 정비했다.
보강으로 시작해서 구조 개편으로 끝났다.
그래서 v3.0이다.
이제 확인할 것은 데이터다.
이탈률이 실제로 줄었는지, 상태 분기가 체류를 만드는지, 리드 품질이 올라갔는지.
검색 순위와 유입 데이터는 매주 공개하고 있으니 몇 주 뒤에 답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