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는 C 코드를 이렇게 짠다고? - 번역 후기

포비·2025년 10월 8일

NASA C STYLE 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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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마치며

1994년에 작성된 NASA의 C 스타일 가이드를 2025년의 시점에서 번역하는 작업은 단순한 언어 변환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문서가 여전히 유효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원칙들

번역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 가이드가 제시하는 원칙들이 현대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가독성", "유지보수성", "명확성"과 같은 핵심 가치는 언어나 시대를 초월합니다.

특히 2장 "가독성과 유지보수성"을 번역할 때, 공백(white space)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코드는 기계가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읽는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자주 잊혀지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습니다. 4칸 들여쓰기가 가독성과 유지보수성에 최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언급한 부분은, NASA가 단순히 관습이 아닌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표준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보 은닉과 캡슐화의 중요성

3장의 프로그램 구성 부분을 번역하면서, 1990년대에 이미 정보 은닉(information hiding)과 캡슐화(encapsulation) 개념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변수의 스코프를 제한하고, 관련된 기능을 모듈화하며, 헤더 파일을 통해 인터페이스를 명확히 하는 등의 원칙은 현대의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이나 모듈 시스템의 기초가 되는 개념들입니다.

특히 그림 1의 "Information Hiding" 예시는 매우 교육적이었습니다. 두 개의 파일, 세 개의 함수, 여섯 개의 변수가 어떻게 스코프에 따라 가시성이 달라지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다이어그램은, 복잡한 개념을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좋은 예시였습니다.

PDL(Program Design Language)의 가치

4장의 파일 구성 부분에서 PDL을 다루는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PDL은 단순히 주석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문서화하는 도구입니다. IF THEN ELSE, DO WHILE, CASE 등의 구조화된 제어문을 영어와 유사한 형태로 작성하여, 코드를 작성하기 전에 논리 구조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번역하면서 느낀 점은, 이러한 체계적인 설계 과정이 NASA와 같이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환경에서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선의 소프트웨어 오류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과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코드를 작성하기 전에 철저히 설계하고 문서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함수 작성의 예술

5장 함수 구성을 번역하면서, 함수 하나를 작성하는 것도 얼마나 많은 고려사항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함수 프롤로그의 구조, 매개변수 선언 방식, 지역 변수의 배치, 반환문의 처리 등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boolean 반환 함수의 이름은 술어절로 작성해야 한다는 부분(예: stack_is_empty, file_is_saved)은 매우 실용적인 조언이었습니다. 함수명만 보고도 그 함수가 무엇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죠.

또한 단일 반환문(single return)을 권장하는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함수 종료 지점이 하나만 있으면 디버깅과 유지보수가 훨씬 쉬워진다는 것은 경험 많은 개발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문서에서도 언급했듯이, 때로는 복잡한 논리를 단순화하기 위해 다중 반환을 사용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데이터 타입과 연산자의 섬세함

6장에서 데이터 타입, 연산자, 표현식을 다루는 방식은 C 언어의 복잡성과 함정들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defineconst의 차이, 포인터 타입 선언 방식, 타입 변환의 명시성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define SIZE 10 + 10const int SIZE = 10 + 10의 차이를 설명하는 예시는 매우 교육적이었습니다. 전자는 매크로 치환으로 인해 SIZE * SIZE10 + 10 * 10 + 10 = 120이 되지만, 후자는 20 * 20 = 400이 됩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가 실제 프로그램에서 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부작용(side-effect)을 가진 연산자를 표현식 내에서 절제해서 사용하라는 조언도 중요했습니다. 증가/감소 연산자(++, --)나 할당 연산자를 복잡한 표현식 안에 넣으면 코드가 간결해질 수는 있지만, 실행 순서에 대한 오해로 버그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어 흐름의 명확성

7장 문장과 제어 흐름 부분을 번역하면서, 중괄호 배치 스타일(Braces-Stand-Alone method)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괄호를 별도의 줄에 배치하고 정렬하는 것은 단 하나의 수직 공간만 차지하면서도 코드의 구조를 훨씬 명확하게 만듭니다.

또한 goto문과 break문의 사용을 다루는 방식도 균형 잡혀 있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구조화된 프로그래밍을 권장하지만, 다중 중첩 루프에서 벗어나야 할 때처럼 goto가 오히려 코드를 더 명확하게 만드는 경우도 인정합니다. 교조적이지 않고 실용적인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switch문에서 fall-through(의도적으로 break를 생략하는 것)를 사용할 때 반드시 주석을 달라는 지침도 좋았습니다. /* fall through */라는 간단한 주석 하나가 미래의 유지보수자에게 이것이 버그가 아니라 의도된 동작임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이식성과 성능의 균형

8장 이식성과 성능 부분은 특히 현대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1994년에 이미 "먼저 이식 가능한 코드를 작성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최적화를 고려하라"는 원칙을 강조한 것은 놀랍습니다.

워드 크기가 다른 컴퓨터 간의 이식성을 위해 typedef를 사용하라는 조언(예: typedef long int32)은 오늘날의 크로스 플랫폼 개발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또한 sizeof() 함수를 사용하여 타입 크기를 하드코딩하지 말라는 것도 중요한 원칙입니다.

성능 최적화와 관련해서도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합니다. 성능이 중요한 실시간 시스템이라도, 먼저 이해하기 쉬운 코드를 작성하고, 필요할 때만 최적화하되 그럴 때는 반드시 주석을 달라는 것입니다. "코드는 반드시 유지보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죠.

실제 코드 예시의 가치

9장의 실제 코드 예시들은 이론을 실전으로 연결하는 훌륭한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Makefile, C 프로그램 파일, 헤더 파일의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앞서 설명한 모든 원칙들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RF_GetReference.c 파일은 90줄이 넘는 상세한 함수 프롤로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일명, 목적, 파일 참조, 외부 변수, 외부 참조, 비정상 종료 조건, 가정사항, 개발 이력, 그리고 PDL로 작성된 알고리즘까지... 이런 수준의 문서화는 처음에는 과도해 보일 수 있지만, 우주 비행 역학 시스템처럼 복잡하고 중요한 소프트웨어에서는 필수적입니다.

코드 자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명확한 변수명, 일관된 들여쓰기, 적절한 주석, 체계적인 오류 처리 등 모든 것이 앞서 설명한 원칙들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디버그 레벨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출력하는 부분은 실제 운영 환경에서 매우 유용한 패턴입니다.

헤더 파일 HD_reference.h도 모범적이었습니다. 각 전역 변수에 대한 상세한 주석, 개발 이력, 그리고 매크로 정의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번역의 어려움과 보람

이 문서를 번역하면서 여러 기술 용어들을 어떻게 옮길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encapsulation"을 "캡슐화"로, "information hiding"을 "정보 은닉"으로, "white space"를 "공백"으로 번역했지만, 때로는 원어를 병기하는 것이 더 명확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1994년의 맥락을 2025년의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도전이었습니다. ANSI C가 비교적 새로운 표준이었던 시절, 8자 파일명 제한이 있었던 시스템, FORTRAN에서 C로 전환하던 시기... 이런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서 번역해야 했습니다. 물론 글에는 따로 안썼지만 말이죵 허허.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습니다. 30년 전의 NASA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소프트웨어 품질을 추구했는지, 어떤 원칙들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한국어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현대 개발자들에게 주는 교훈

이 가이드를 번역하면서 현대 개발자들이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핵심 교훈을 정리해보면:

  1. 원칙은 언어보다 오래 지속된다: C 언어의 구체적인 문법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가독성, 유지보수성, 명확성이라는 핵심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2. 문서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특히 안전이 중요한 시스템에서는 코드만큼이나 문서가 중요합니다. 함수 프롤로그, 파일 프롤로그, PDL 등은 미래의 유지보수자(혹은 미래의 나 자신)를 위한 투자입니다.

  3. 일관성이 창의성보다 중요: 개인의 코딩 스타일보다는 팀의 일관된 스타일이 더 중요합니다. NASA가 이렇게 상세한 스타일 가이드를 만든 이유는 여러 사람이 협업하는 환경에서 일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4. 성급한 최적화는 악의 근원: "먼저 올바르게 작동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 빠르게 만들어라"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최적화 코드에는 반드시 주석을 달아야 합니다.

  5. 이식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라: 하드코딩된 값, 플랫폼 의존적인 코드 등은 나중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식성을 고려하는 것이 나중에 수정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 진화하는 도구

흥미로운 점은 이 가이드의 많은 원칙들이 현대의 도구들에 의해 자동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코드 포맷터(prettier, clang-format 등)는 자동으로 일관된 스타일을 적용하고, 정적 분석 도구(lint, cppcheck 등)는 잠재적인 문제를 찾아내며, IDE는 함수 프롤로그를 자동 생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구가 자동화할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의미 있는 변수명을 짓는 것, 적절한 추상화 수준을 선택하는 것, 명확한 주석을 작성하는 것... 이런 것들은 여전히 개발자의 판단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번역을 마치며

이 가이드를 번역하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새 프레임워크나 언어가 계속 등장하지만,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근본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NASA의 C 스타일 가이드는 단순히 C 언어를 어떻게 작성할지에 대한 규칙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문가로서 코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동료 개발자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미래의 유지보수자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입니다.

우주선을 띄우는 코드를 작성하는 NASA 엔지니어들에게 코드의 품질은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극단적인 환경에서 일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들이 가진 품질에 대한 집착, 명확성에 대한 추구, 동료에 대한 배려는 배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번역이 한국의 개발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C 언어를 배우는 학생들(임베과 학생들ㅋ)이나, 레거시 C 코드를 유지보수해야 하는 개발자들, 혹은 단순히 좋은 코드 작성법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께 유익했으면 좋겠습니다.

번역 과정에서 최대한 원문의 의미를 살리려 노력했지만, 제 이해나 표현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틀린 부분이나 개선할 부분을 발견하시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함께 더 나은 번역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치 있는 이 문서를 작성한 NASA의 Software Engineering Laboratory 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의 지혜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더 많은 개발자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어려운말을 왤케 많이쓰냐 하실수있는데 뭔가 글쓸때 계속 이걸 어려운 말로 하면 뭘까 고민하다보면 제가 나중에 사람들을 만나거나 면접을 할때 조금 있어보이지않을까 해서 쓴것이니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참고

원문: https://ntrs.nasa.gov/api/citations/19950022400/downloads/1995002240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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