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주 작은 오디오 취미가 있다.
보통 오디오에 있어서 투명한 음색이라고 하면 기이하게도 중고역대가 살짝 강조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투명 -> 유리 -> 유리병을 불 때 나는 맑고 고운 소리 -> 고음으로 연상이 되는 걸까? (clear)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투명한(transparent) 음색을 해석하자면 작곡가 또는 오디오 엔지니어가 의도한 소리를 그대로 들려준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보통 이런 것을 Hi-Fi 하다고 하며, 많은 오디오 매니아들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유감스럽게도, 스피커, 헤드폰 소리가 어떻다할 이야기를 할 때에도 커뮤니케이션은 의도가 왜곡되고 만다. 마치 Hi-fi하지 않은 음향기기를 거친 소리가 의도된 것과 다른 소리를 재생하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노래하는 거겠지.
개발자, 프로그래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뭐라고 불러야할 지 모르는 이 IT 관계의 기술 직종은 커뮤니케이션 관련 문제로 고통을 겪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변인들이 답답해하기도 하고 본인들이 답답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은 우리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거나, 혹은 그 반대의 작업, 현실의 물건을 개념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복합적인 작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이 겪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세상에서 유난히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는 특성 때문에 과도하고 비대하게 모습을 부풀리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냥 주로 이모저모 답답한 사람들이 현실 세상의 모사품으로 컴퓨터와 친해지다보니 답답한 사람들이 개발자가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앞서 꺼낸 오디오의 비유를 다시 꺼내보자면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전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가능하다면 적은 비용으로. 이렇게 심플하게 정의한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신 분!"을 찾는 곳은 무척이나 많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겠지. 원칙은 단순해도, 실천하는 방법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은 내가 하는 [노력들]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기 위한 노력들.
나는 "안녕하세요. 잠깐 말씀 좀 나눌 수 있으실까요?" 라는 서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이메일/문자/메신저 등 비동기 통신수단일 경우에 특히 그렇다. 상대의 발화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발화는 상대를 긴장하고 겁나게 한다. 결국 의도가 전달되기 이전에 정보가 불분명한 상태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식의 발화가 적절한 경우는 내 생각에는 해고 통지 정도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클라이언트에게 업무를 수주해서 진행을 하고 있다고 하자. 어느 시점에 연락하는 게 좋을까? 업무를 완료한 뒤에 연락하는 것은 너무 늦다. 클라이언트가 업무가 진행되는 중간에 업무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니, 업무의 진행이 예상 가능한 시점에 올랐을 때, 예상 기간에 변동이 일어날만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먼저 알려주는 것이 좋다. (실제로 기간에 변동이 일어나지 않았더라고 하더라도) 특히, 엔지니어 직군은 비엔지니어 직군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정보를 보유한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어느 시점에 연락을 하는 게 좋은지" 또한 엔지니어 직군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프로그래머 중 한 분이 있다. 과거에 재직했던 회사에서 10년 전에 재직을 하신 분이다. 그 분은 해당 회사의 핵심이 되는 솔루션의 코드를 대부분 작성하셨다. 추측이지만 당시에는 주니어 레벨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부분에서 고민하신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 10년 전에 재직하신 분은 존경할 수 있었을까? 그 분이 나와 비동기적 커뮤니케이션을 하셨기 때문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고민이 담긴 코드들을 고민만으로 남긴 것이 아니라, 문서, 주석, 위키 등을 통해서 남겨놓으셨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해당 정보들은 남아서 개발을 돕고 있다.
찾으려고 하는 정보를 공개된 곳에 남겨놓으면 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찾을 수 있다.
[10년 전에 재직했던 개발자]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은 날 모르실 것이고, 이 블로그에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의 예시]로 쓰이신 것도 모르실 것이다. 우연히도 그 분의 블로그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 분도 오디오에 취미가 있으셨다.
춤이라도 추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