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꼭 “어딘가에서 돌아가고” 있어야 할까?

predict-woo·2026년 4월 21일

우리는 무언가가 존재하려면, 그것을 떠받치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고 쉽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고전물리학 전통에서는 공간과 시간 자체를 독립적으로 있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 있었고, 뉴턴은 특히 절대공간절대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반대로 어떤 입장들은 “공간이란 결국 물질들의 배치 관계일 뿐”이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현대 상대론 해석에서도, 시공간 자체를 하나의 실재적 ‘것’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집니다.

양자장론 쪽으로 가면, 바탕 후보는 또 달라집니다. 여기서는 입자를 완전히 독립된 작은 알갱이로 보기보다, 공간 전체를 채우는 장(field)을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이 등장합니다. CERN의 설명대로 힉스장은 “우주 전체를 채우는 장”으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익숙한 예시는 시뮬레이션 가설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현실의 바탕이 시공간이나 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컴퓨터 같은 외부 계산 장치가 됩니다. 보스트롬의 유명한 시뮬레이션 논증도 바로 이런 방향의 상상을 밀어붙입니다.

즉 “현실은 무엇 위에 놓여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미 여러 후보가 있습니다.
시공간일 수도 있고, 물질일 수도 있고, 장일 수도 있고, 경계 이론일 수도 있고, 외부 컴퓨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현실은 정말 그런 바탕이 꼭 필요할까?


1. 가장 쉬운 예시: 원주율의 숫자

원주율 π를 생각해 봅시다.

π는
3.1415926535…
처럼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100번째 자리나 100만 번째 자리를 계산하기 전에도 그 숫자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더라도, 그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밖에서 값을 하나씩 집어넣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숫자는 그 구조 자체 안에서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즉 계산은 무엇을 새로 만들어내는 행위라기보다,
이미 있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이 예시는 아주 단순하지만, 중요한 직관을 줍니다.

존재한다는 것이 꼭 “어딘가에서 실행되고 있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어떤 것은 단지 수학적 구조로서 이미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2. 조금 더 복잡해져도 핵심은 같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원주율은 너무 단순한 예시다.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복잡하다고 해서 반드시 외부 바탕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수학에서는 아주 간단한 규칙으로도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구조가 나옵니다.
짧은 정의에서 매우 긴 결과가 나오고, 간단한 관계식에서 엄청난 패턴이 펼쳐집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복잡성은 외부에서 하나하나 집어넣지 않아도, 구조 안에서 생길 수 있다.

즉,

  • 규칙이 단순하다
  • 결과가 복잡하다
  • 하지만 그 복잡성은 여전히 구조 내부에 속한다

이 셋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3. Game of Life: “실행”보다 먼저 “구조”가 있다

여기서 Game of Life가 좋은 예시가 됩니다.

Game of Life는 아주 단순한 규칙을 가진 세포자동자입니다.
격자 위의 각 칸은 살아 있거나 죽어 있고, 주변 칸의 수에 따라 다음 상태가 정해집니다. 이런 몇 가지 규칙만으로도 매우 복잡한 패턴이 나타난다는 점 때문에 유명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건 결국 컴퓨터에서 돌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Game of Life의 규칙이 한 번 주어지면, 우리는 단지 한 번의 실행 화면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더 크게 보면 다음 전체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 가능한 모든 초기 배치
  • 각 초기 배치에서 이어지는 모든 다음 상태
  • 그리고 그 상태들이 서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즉, Game of Life는 “실행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컴퓨터가 켜지는 순간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라고만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규칙이 주어지는 순간, 가능한 모든 상태와 모든 전이 관계를 포함하는 하나의 거대한 수학적 구조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컴퓨터로 Game of Life를 실행한다는 것은,
무에서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정의된 거대한 구조 안의 한 경로를 순서대로 드러내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만약 그 안에 내부 관찰자가 있다면,
그 관찰자가 경험하는 것은 오직 자기 갈래 안의 상태 변화뿐입니다.

그 관찰자는 자신의 세계가

  • 실제로 어떤 컴퓨터 위에서 계산되고 있는지,
    아니면
  • 이미 완성된 수학적 구조 안의 한 내부 경로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내부에서 보이는 것은 둘 다 똑같이
“이 상태 다음에 저 상태가 온다”
는 사실뿐이기 때문입니다.


4. 컴퓨터 게임도 본질은 비슷하다

컴퓨터 게임을 생각해 봅시다.

게임 속 캐릭터가 충분히 똑똑해서 자기 세계를 연구한다고 해도,
그가 직접 관측하는 것은 게임 내부의 법칙뿐입니다.

  • 무엇이 충돌하는가
  • 무엇이 움직이는가
  • 어떤 규칙으로 시간이 흐르는가
  • 어떤 조건에서 사건이 일어나는가

이런 것들은 모두 내부 구조입니다.

물론 바깥에 CPU나 GPU가 실제로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부 관찰자에게 직접 드러나는 추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 내부 관찰자는 자기 세계가 진짜 하드웨어 위에서 실행되는지,
아니면 완전한 수학적 구조의 내부 질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즉 내부 관찰자에게 중요한 것은
“바깥 기계가 있는가?”가 아니라
“내 세계 안에서 어떤 상태가 어떤 상태로 이어지는가?”입니다.


5. 이제 현실로 확장해 보자

이제 질문을 현실로 옮겨 보겠습니다.

혹시 현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즉 현실은

  • 어떤 바깥 장치 위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수학적 구조이며
  •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 변화, 관측, 역사, 지구, 생명은
  • 그 구조 안의 내부 사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보면 지구도, 인간도, 관측도, 선택도
외부에서 따로 넣어진 것이 아니라
그 구조 안에 포함된 내부 사실이 됩니다.


6. 반론 1: “양자역학은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여기서 가장 흔한 반론이 나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결과가 확률적으로 나온다.”
“그러니 미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현실 전체가 하나의 완전한 구조라는 생각은 틀렸다.”

하지만 이 반론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은 하나의 해석만 있는 이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세계 해석에서는, 관측자가 보기에는 확률적인 결과를 경험하더라도, 전체 이론은 여전히 붕괴 없이 전개되며, 많은 세계가 병렬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다세계 해석은 보통 “무작위성과 비국소성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즉 내부 관찰자가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것과,
현실 전체가 미리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내부에서는 불확실성이 있어도,
전체 구조에서는 여러 갈래가 함께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것은 많아야
“내부 관찰자는 자기 위치를 한 갈래로 경험한다”는 점이지,
“반드시 외부 바탕이 필요하다”는 점은 아닙니다.


7. 반론 2: “우주에는 초기 조건이 필요하다”

두 번째 반론은 이것입니다.

“물리학은 보통 법칙만으로는 부족하고,
법칙 + 초기 조건으로 세계를 설명한다.
그러니 외부에서 정해지는 시작값이 필요하다.”

이 반론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실제로 결정론은 보통 “자연법칙만”이 아니라,
선행 조건과 법칙이 함께 미래를 결정한다고 정의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하나를 구분해야 합니다.

이론 안에 좌표가 있는 것
그 좌표값을 구조 밖에서 누군가 골라야 하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물리 이론은 가능한 상태들의 공간을 만들고,
그중 하나가 실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부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 “실제 상태의 선택”이

  • 정말 외부에서 선택된 것인지,
    아니면
  • 더 큰 전체 구조 안에서 자기 위치를 나타내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철학에서 자기-위치적 사실로 다뤄집니다.
자기-위치적 믿음은 “세계가 그 자체로 어떠한가”가 아니라, 내가 그 세계 안의 어디에 있는가에 관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초기 조건이 필요하다”는 말도,
다르게 보면
“더 큰 구조 안에서 내가 어느 좌표에 있는가를 지정해야 한다”
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 관찰자가 이 둘을 구분할 수 없다면,
그 차이는 과학적 차이라기보다 형이상학적 차이가 됩니다.


8. 그래서 핵심은 “관측 가능성”이다

여기서 핵심이 드러납니다.

만약 현실이 완전한 수학적 구조로 설명 가능하고,
그 위에 추가로 어떤 바탕을 더 상정하더라도
내부 관찰자가 그 바탕을 원리적으로도 구별할 수 없다면,
그 바탕은 관측 가능한 설명을 늘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사실은 뒤에 뭔가 더 있다”고 한 번 더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철학적으로는 그런 추가 가정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정이 어떤 새로운 관측 가능성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물리학의 핵심 주장이라기보다
형이상학적 덧붙임에 가까워집니다.

과학철학에서는 이런 문제를 과소결정의 문제로 다룹니다.
즉 서로 다른 두 설명이 같은 관측 결과를 모두 설명한다면,
관측만으로는 어느 쪽이 맞는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논지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현실이 수학적 구조만으로 완전히 설명된다면,
그 뒤에 숨은 바탕을 추가하는 것은 관측 가능한 내용을 늘리지 않는다.


9.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바탕”은 과학인가?

여기서는 표현을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측 불가능한 것을 이론에 추가하는 것은 유사과학이다”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직관적으로는 그 말에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검증도 반증도 불가능한 요소를 계속 붙이기 시작하면,
이론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과학적 긴장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런 주장은 자동으로 “유사과학”이 되는 것이라기보다,
물리학이라기보다 형이상학으로 이동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즉, 보이지 않는 바탕을 믿을 자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부 관찰자에게 어떤 차이도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검증 가능한 자연 이론의 일부라기보다 추가 세계관에 가깝습니다.


10. 최종 정리

이제 전체 흐름을 한 번에 묶어 보면 이렇습니다.

원주율의 숫자는 누가 밖에서 계산해 주지 않아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복잡한 구조도 외부에서 하나하나 넣지 않아도, 단순한 규칙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Game of Life도 컴퓨터가 “세계를 창조”한다고 보기보다, 이미 정의된 거대한 상태-전이 구조의 한 경로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의 내부 관찰자는 자신의 세계가 실제 기계 위에서 실행되는지, 아니면 완전한 수학적 구조의 내부 경로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현실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은 내부 관찰자의 경험을 말할 뿐, 전체 구조가 미리 완성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초기 조건도 외부 선택이 아니라, 더 큰 구조 안의 자기 위치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 관찰자가 보이지 않는 바탕을 끝내 구분할 수 없다면, 그 바탕은 관측 가능한 설명의 일부가 아니라 추가 형이상학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을 가장 짧게 압축하면, 핵심 생각은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현실이 완전한 수학적 구조로 설명 가능하다면, 그 뒤에 숨은 ‘바탕’을 추가하는 것은 설명을 늘릴 뿐, 관측 가능한 내용을 늘리지는 않는다.

또는 더 강하게 말하면:

내부 관찰자가 끝내 구별할 수 없는 바탕은, 과학의 필수 요소라기보다 형이상학적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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