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꽤 보수적인 편으로 잘 굴러가고 있는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는데 10년 넘게 QA를 하면서 생긴 습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걸 덜컥 도입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직업적으로 계속 봐왔으니까요.
그래서 이 글은 "AI 좋던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안 쓰던 사람이 왜 결국 쓰기로 했는지, 그리고 막상 써보니 무엇이 달랐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서 AI를 써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챗봇에 물어보라는 뜻이 아니었어요.
코딩 에이전트(Claude Code, Codex)처럼 알아서 움직이는 도구를 써보라는 얘기였습니다.
솔직히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AI를 쓰고 있었거든요. 채팅으로 물어보고, 프로젝트도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건 완전한 자동은 아니었죠. 제가 묻고, 제가 판단하고, 제가 옮겨 붙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으니까요.
저한테는 그게 중요했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뉴스에도 계속 나오고, 주변에서도 다들 쓰는 것 같고, 어느새 코딩 에이전트로 일하는 게 당연한 시대가 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 방식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고 불편한 게 없었어요.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뒤처지는 게 아닐까.
이게 꽤 강하게 왔습니다. 만족과 불안이 동시에 있는 상태가 한동안 이어졌어요. 지금 잘 되고 있는데 왜 바꿔야 하지, 라는 마음과 지금 안 바꾸면 나중엔 못 따라가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계속 부딪혔습니다.
결국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한번 해보자.
Claude Code로 시작해 보니 확실히 신세계이긴 했습니다.
다만 처음 세팅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도구를 설치하는 게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이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정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누군가는 에이전트한테 전부 맡기기도 하더군요. 알아서 해줘, 하고 결과만 받는 방식이요. 저는 그렇게 못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다 생각하고, 구상하고, 어떤 순서로 갈지 정해놓고 들어갔습니다. 성격상 그게 안 되면 불안하거든요.
사실 저한테는 따로따로 굴리던 프로젝트들이 있었습니다.
AI로 테스트케이스를 만들어보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고, 플러그인으로 커스텀 리포트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또 따로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몇 개를 더 구상 중이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본업을 하면서 이걸 하나씩 순서대로 해나가기엔 시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어요. 각각을 제대로 하려면 몇 달씩 걸릴 것 같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하나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직접 다 짜지 않아도 된다면, 이걸 한 번에 다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각각을 제 손으로 다 짜야 한다면 순서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계하고 판단하고 검증하는 역할만 맡는다면, 세 갈래를 동시에 굴려볼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흩어져 있던 프로젝트들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새로운 자동화 프로젝트는 설계부터, 테스트케이스 생성, 결과 대시보드까지 전부 한 번에 가기로 했습니다. 따로 하려던 것들을 한 프로젝트 안에 집어넣은 겁니다.
결과만 먼저 말씀드리면, 여러 플랫폼과 서비스 조합을 실기기로 검증하는 데까지 갔고, 대시보드도 붙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중 하나만 붙잡고 몇 달을 썼을 겁니다.
시작할 때 저한테는 유리한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현재 자동화 시스템은 제가 전부 구성하고 만든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시나리오가 왜 그렇게 짜여 있는지 제가 제일 잘 압니다.
그리고 처음엔 현재 운영 중인 플랫폼의 자동화 정보를 던져주고 비교·분석 후 일단 해보라고 하고 지켜봤습니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결과는 엉망이었습니다.
혼자 코드를 고치고, 실행해 보고, 실패하면 또 고치고, 다시 실행하고. 그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더군요.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은 이렇게 쓸 텐데, 이러면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AI가 혼자 무한히 반복하는 거구나.
물론 그렇게 둬도 몇 번 돌리다 보면 되긴 됩니다. 실제로 되더라고요.
하지만 사람이 확실하게 개입하면, 여러 번 걸릴 수정이 한두 번에 끝납니다
전부 맡기는 것과, 사람이 디테일하게 개입하는 것. 이 둘은 편하고 덜 편한 차이가 아니라 아예 차원이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명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래서 안 된다, 이 구조는 이런 이유로 이렇게 되어 있다." 간섭도 엄청나게 했습니다. 어느 순간엔 이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간섭할 거면, 코딩 에이전트를 쓰는 게 맞나?
내가 다 설명하고 다 정해줄 거면 그냥 내가 짜는 게 빠른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작업하는 내내 계속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냐, 이게 더 낫냐. 그러면 에이전트는 자기 판단을 먼저 내놓고, 그다음에 제 생각을 되물었습니다. 그 왕복이 계속 이어졌어요.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건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나. 평소에 제가 하던 QA 업무하고는 분명히 다른데,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지금 내가 너와 일하면서 맡고 있는 이 역할, 뭐라고 부르면 되냐고.
답을 듣고 나서야 정리가 됐습니다. 제가 간섭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설명하고, 방향을 정하고, 결과를 검증하고) 아니면 되돌리는 것. 그게 사실 이 시대에 맞는 하나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리고 업계에는 이미 이름이 있었습니다. 코드를 짜는 사람에서 오케스트레이터로 넘어간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사람이 판단 지점마다 개입하는 방식을 human-in-the-loop이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제가 뭘 새로 발명한 게 아니라, 제가 이미 하고 있던 걸 뒤늦게 이름으로 확인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사실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지휘만 하면 된다면"이라는 계산이 먼저 서 있었던 게 아니라, 한참 헤매고 난 다음에야 그게 지휘였다는 걸 알게 된 거니까요.
여기까지 읽으면 "그래서 좋았다는 거네"로 들릴 수 있는데, 솔직히 그런 느낌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와 대단하다, 환상적이다." 그런 감상보다는 효율로 따지면 "시간 단축은 확실히 많이 되는구나!" 이게 과장 없는 제 체감입니다.
다만 아예 안 써본 것과 한번 써본 것은 좀 많이 다릅니다. 써보면 시야가 넓어지는 건 분명히 있습니다. 전에는 생각조차 안 해봤을 방식이 선택지로 들어오거든요.
그리고 하나 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도 코딩 에이전트로 에이전트 많이 만들고, 한 번에 여러 작업 돌려봐야지" 하고 막연하게 들어오면 오히려 더 힘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저처럼 하고 싶은 게 계속 쌓여만 있던 사람이라면, 머릿속에 프로젝트만 잔뜩 만들어놓고 시간이 없어서 못 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때 가속이 확 붙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시대의 흐름에 뛰어들었으면 합니다.
AI를 쓰면 생각을 덜 해도 될 것 같지만, 제 경험은 정반대였습니다.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맡기지 않을지, 어떤 순서로 갈지, 지금 나온 결과가 맞는지 틀리는지. 전부 제가 판단해야 했습니다. 판단을 안 하고 맡기면 AI가 혼자 여러 번 헤매지만 판단하고 맡기면 한두 번에 끝납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에 적응해서 AI를, 코딩 에이전트를 제대로 쓰려고 한다면 지금보다 생각은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먼저 판단해야 했던 것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코딩 에이전트는 저장소 파일을 직접 열고, 명령을 실행하고, 실제 기기까지 스스로 접속합니다.
지금까지처럼 "민감한 값은 빼고 물어보면 그만"인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정한 게 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보안을, 특히 민감정보 보호를 1순위에 둔다. 그리고 AI가 스스로 해도 되는 일과 절대 안 되는 일을 미리 나눠서 박아뒀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까지 규칙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