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부트캠프, 나라면 절대 안 간다

computerphilosopher·2022년 10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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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블로그에서 후불제 부트캠프 학원에 소송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소위 '소득공유 후불제'라고 불리는 이 전형은 교육비를 내지 않고 수업을 받다가 취업 후에 소득의 일정 부분을 떼어 상환하는 방식이다. 학원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월 소득의 17% 가량을 지불한다. 단 무조건 받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안전 장치가 있다. 우선 연봉이 일정 액수 이하인 기간 동안에는 지불 의무를 유예해준다. 또한 납입 횟수나 총 납입액에 제한을 두었기 때문에 소득이 높다고 해도 지불액이 무한히 올라가진 않는다. 이 금액을 그동안 제대로 지불하지 않아 1500만원을 일시에 납입하라는 소송을 당했다는 것인데, 어떤 학원이길래 교육비가 1500만원이나 하는지 호기심이 생겨 알아보게 되었다.

보기보다 가혹한 조건

취업 전까지 교육비가 면제된다는 것은 취업이 간절한 취준생들이 혹할만한 조건이다. 이미 비슷한 형태의 학자금 대출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후불제 부트캠프의 계약 조건은 학자금 대출보다 훨씬 가혹하다. 글쓰는 시점 기준 학자금 대출의 이자는 1.75 퍼센트로 기준 금리인 2.5퍼센트보다 낮다.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대출을 해주는 셈이다. 국가에서 이자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를 후불제 부트캠프와 비교해보자. 후불제 부트캠프의 원조격인 C학원의 경우 연소득이 3000만원 이상일때부터 지급 의무가 발생한다. 학원측 자료에 의하면 총 24회동안 10,200,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이 학원의 선불 수강비는 850만원 정도이다. 가장 소득이 낮은 사람도 2년동안 교육비의 17퍼센트 가량을 이자로 내야 한다. 초봉이 4000 중반을 넘어가면 총 1500만원을 내야 하는데 이는 원금의 76퍼센트에 달한다. 지불 유예의 대가로 내기엔 너무 가혹한 돈이 아닌가?

법정 최고 이자인 20퍼센트를 2년 동안 복리로 계산하여도 원금의 44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소득공유 후불제라는 미명에 혹한 취준생들에게 이렇게 조언해주고 싶다. 차라리 대출을 받아라. 취준생이나 저소득자에게 저리로 대출해주는 상품들이 있다. 은행 돈을 빌린다는게 무섭겠지만 이들에게 '소득 공유' 당하는 것보단 훨신 낫다. 러쉬앤캐시나 산와머니는 부트캠프 앞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보기에도 부실한 교육

모든 부트캠프가 형편 없는 강의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럭저럭 좋은 강의를 듣기 위해 지불하기에는 너무 비싼 금액이다. 후불제 부트캠프의 수강비는 웬만한 대학 등록금을 넘어선다. 사설 학원에서 대학 강의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주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설령 그런 학원이 소수 존재 한다 하더라도 개발 입문자가 스스로 옥석을 가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부트캠프의 교육을 싸잡아서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히 말해줄 수 있다. 온라인 교육으로 수백만원의 가치를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인터넷 강의는 좋은 무료 자료가 너무 많다. 좋다는 말로도 부족한 자료들이 다 공짜다.


(한글 자막까지 달린 MIT 강좌가 공짜다)


(MIT 강좌는 너무 이론적으로 느껴지는가? 네이버 출신 개발자의 웹 프로그래밍 강좌도 공짜다.)

이런 무료 인터넷 강의들과 부트캠프 온라인 과정의 차별점은 강사가 질문을 받아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개발 입문자가 제스처나 그림에 의존하지 않고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온라인을 통해 전달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논리를 정돈하다보면 답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이런 강의에 2년치 월급의 17퍼센트를 내는 것은 정말 말리고 싶다. 정 후불제 교육을 원한다면 오프라인 교육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좋은데 취업 했으니 된 거 아니냐고?

혹자는 "교육비를 지불한다는 것은 연봉 3000만원 이상의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는 것이니 윈윈 아니냐?"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가르친 학생이 취업을 못할 경우 돈을 받지 않겠다는 진정성에 감동 받을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 방식과 소득공유 조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1. 채용 플랫폼 사람인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평균 초봉은 2800만원 선이다. 중소기업에서만, 직군을 따지지 않고 낸 평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발자 초봉 3000만원은 오히려 평균 이하라고 봐야한다.
  2. 후불제 부트캠프는 소득공유를 할 의사가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게 아니다. 대체로 선발 시험을 보거나 성취도 미달자를 강제로 중도 탈락시킨다.
  3. 초봉이 3000만원 미만이더라도 끝이 아니다. C학원 기준 6년 안에 연소득이 3000만원 넘어가면 내야 된다.

즉 엄격한 선발 조건을 통과해놓고도 6년 동안 중소기업 초봉 평균도 넘어가지 못하는 이변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비싼 이자 붙은 교육비를 무조건 내야 한다는 소리다. 안 내는게 더 어렵겠다.

이런 꼴을 당하기 싫어서 개발을 때려치면 어떻게 될까? 다른 직종에 취직하더라도 연봉 3000 만원이 넘으면 소득 공유 의무가 생긴다. 얘기 끝.

(누가 보면 좋은 건 줄 알겠다.)

마치며

교육비를 후불로 받는 것은 학원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초과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적당히 해야한다. 소득공유 후불제라는 이름을 붙여봤자 결국 학원비를 나중에 할부로 내라는 얘기이다. 아무리 본인이 동의했다하더라도, 법정 이자를 훨씬 초과하는 비용을 낼 가능성이 있는 계약이 과연 합당할까? 언론에서는 소득공유 후불제를 교육비 부담을 덜어준 혁신인 것 처럼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고액 채무자를 양산하는 위험한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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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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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6일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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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7일

사실 전에도 비슷한 글을 봤고, 이번에 작성하신 글에 대해 정말 공감하고 갑니다.
막 개발에 입문해서 잘 모르고,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저러는게 참 마음 아프네요..
뭐 후불제 부트캠프라는 것을 이미 고지 했다지만, 조금만 더 찾아보면 다른 방법으로 학습할 수도 있고 다른 좋은 곳도 많을텐데요.
실상은 정말 극소수일텐데 잘 모르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어디어디 취업했다." 이런 걸 보면 당연히 혹하게 될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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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일

인정,, 너무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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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3일

안녕하세요. 한겨레21 기자 류석우라고 합니다. 코딩 부트캠프 취재를 하는 와중에 선생님 글을 우연히 읽고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혹시 소득공유제나 부트캠프와 관련해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메일로 답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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