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코드에서의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한달...
커리큘럼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말들은 다들 많이 할테니 나는 좀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볼까한다.
좀 뜬금없지만... 2016년으로 돌아가 보자. 졸업유예 한학기를 남겨둔 2016년 초, 우연히 KOICA의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알게되었다. 고등학생때부터 막연히 가지고 있던 꿈(국제개발협력분야의 활동가)을 이루기 위한 최적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봉사단에 지원을 했고 그렇게 파견된 곳은 베트남의 달랏과 냐짱 사이의 한 시골마을이었다.
(저녁이 되면 이렇게 마을회관에서 베트남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한 달 간의 현지교육을 마치고 곧바로 CJ-KOICA의 CSV프로젝트에 투입되었는데, 그 프로젝트는 고추를 베트남 저소득 마을에 심고 이를 고춧가루로 만들어 농민들에게 지속가능한 소득을 창출 시켜주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다.(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꽤 이름을 알린 성공사례이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 1년간은 봉사단원으로 활동하고, 이후 반년간은 프로젝트 사후관리자 겸 CJ의 생산관리자로 활동했다.
(열심히 일하는 현지 직원들의 모습)
사실 갓 대학을 졸업해서 공장의 생산관리자로 일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고, 실제로 당시 CJ 공장 중에서 최연소 공장장이라는 이야기도 들렸었다. 생산관리자로 일하는 동안 직원들을 관리하고 생산공정의 초기 셋팅을 한다는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홀로 남겨져 매일같이 수백킬로의 냉동고추를 옮기고 매운 고춧가루를 뒤집어 쓰는 일을 반복하며 점차 지쳐갔다. 그건 아마 일 자체의 고됨보다는 타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국제개발협력 사업 특성상, 내가 가진 책임감에 억압되었던 것이 컸다.
그렇게 공장의 초기 시스템 세팅을 마치고 사업에서 철수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취준을 하기 전 나는 20대에만 할 수 있는 마지막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2주로 예정되어있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하버브릿지 밑에서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며 플랫화이트을 들이키는 온갖 여행자 허세를 부리던 그 순간, 나는 마음의 소리를 들어버렸다. 바로 호주에서 성공한 이민자가 되겠다는...!!!
호주에서 살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시드니에서 온갖 알바를 전전(많이 잘렸다는 말)하다가 Property Styling(속성 스타일 아니고 부동산 매물 스타일링)을 사업모델로하는 가구렌탈 스타트업의 Customer Manager라는 말도 안되는 직급으로 입사를 했다. 평생 할 영어를 6개월 동안 다 하고 호주 부동산 업계의 더러운 맛을 본 나는 그래도 끝장을 보겠다며 세컨 비자를 따기 위해 농장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진저비어로 유명한 분다버그에서 농장일을 시작했는데, 이때의 에피소드가 하도 많아서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이 되면 농장에 나갔다가 저녁이 되면 만화를 그리는 성실한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한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한국행이었지만, 호주에서의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깨닫게 된 소중한 1년이었고, 내 체력과 언어능력의 한계를 매일같이 깨부수며 스스로를 갱신한 시간이었다.
귀국 후 길지 않은 고민 끝에 본래 몸 담았던 업계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드니에서 마시는 플랫화이트의 맛은 기가 막혔지만, 역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프로파간다(업계 사람들은 이를 국개뽕이라고도 부른다.)를 못 잃어서가 컸다. 그렇게 KOICA의 인턴제도인 YP에 지원하여 국내의 한 NGO에 입사하게되었다.
작은 단체라서 그런지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 내 영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인턴이라는 신분으로 유럽연수에 통역 및 오거나이저로 따라가기도 하고, 우간다에는 사업형성조사 PM으로 출장을 갈 기회도 생겼다.
특히 우간다에서는 고위급 사람들을 만나 국가의 문제를 논하고 어떻게 이를 해결하고 개선해 나갈지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가 가진 경험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내 일에 큰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우간다 대통령 사위와 나...!)
그런데.... 2019년이 지나고 코로나가 터지고 말았다.
잡혀있던 미얀마, 우간다, 캄보디아 출장이 줄줄이 취소되고 해외사업팀 간사로 일하던 나는 국내사업과 홍보 그리고 홈페이지 제작, 디자인 같은 일에 투입되었다... 본업과 너무 다른 일을 해서 회의감을 느낄만도 한 상황. 그런데 사람일은 진짜 모르는게, 이게 또 어딘가 잠들어있던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향한 내 열정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때는 프로그래밍의 프자도 모르던 상황이라 아임웹이라는 웹페이지 제작 툴을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홈페이지가 작동되는 원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그 길로 국비학원에 등록해 HTML/CSS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너무 재밌는 것이 아닌가!!!!
눈에 딱딱 그려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화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고, 이렇게 맛만 본 웹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일 준비를 했다. 하지만 알아보면 알아볼 수록 국비학원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만 확고해졌다. 나는 비전공자 개발자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취업개론이라는 수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름처럼 비전공자가 개발자로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주는 강의였는데, 이 강의를 들으며 부트캠프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큰 비용에 깜짝 놀라며 곧바로 검색창을 닫았지만, 혼자 웹개발을 공부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절실함은 점차 커져갔다.
그리고 나는 고민 끝에 위코드에 등록을 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 과거를 쭉 털어 보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한다. "되게 다른 일을 하려고 하시네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국제개발협력과 프로그래밍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 중 몇가지를 추려보자면 아래와 같다.
국제개발협력은 기후변화, 기아, 빈곤, 교육 불평등 등 세상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일이다. 처음으로 프로그래밍을 접했을 때 떠오른 생각은 바로 "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였다. 세상이 직면한 크고작은 문제들을 프로그래밍이 어떻게 해결했나를 생각해보면 꼭 우주의 탄생일화를 보는 듯한 막연한 공포감마저 든다.
국제개발협력에는 PDM(Project Design Matrix)이라는 것이있다.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의 성과를 관리하는 지표. 즉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지표인데,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라면 사업계획서에 꼭 포함시켜야하는 지표 중 하나이다. 한편 프로그래밍은 단 한 줄의 코드라도 줄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밀리세컨드 단위로 속도를 측정해가며 속도를 단축시키려 한다. 프로그래밍 자체가 고효율을 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하다.
웹 접근성은 장애를 가진 사람과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 모두가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사이트가 올바르게 설계되어 개발되고 편집되어 있을 때 모든 사용자들은 정보와 기능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
-위키백과-
국제개발협력은 소위 불쌍한 사람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회를 선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밍은 어떤가? 웹 개발만 보아도 장애인, 노인, 어린아이 등 모든 사람들이 웹에 접근할 수 있도록 웹 접근성을 지녀야 한다. 김치앤칩스 36호에 따르면 디지털포용성은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이 업계가 목표로 하는 건 그 무엇보다도 포용적이고 민주적이다. 그리고 이 멋진 기술은 웹에 접근하는 모든 이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왜 하필 나는 국제개발협력과 프로그래밍 중 프로그래밍을 택했을까? 내가 기술덕후인 것도, 성과내는 것도,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도 한 몫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먼저 나는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해결하고 싶었다. 국제개발협력은 너무도 많은 이해관계자의 이해관계에 얽혀있어 프로젝트의 리스크 관리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명확히 찾아내는 것도 너무도 힘들다. 반면 프로그래밍은 버그를 만든 사람도 명확하고 고칠 방법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 명확성에 큰 매력을 느꼈다.
두번째로 나는 가치중립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수혜자와 밀착하여 사업을 꾸리고 실행하는 일도 보람차긴 했지만, 때로는 좋은 일을 한답시고 순진한 사람들을 자낳괴(!)로 만드는게 아닌가 싶고, 내가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반면 프로그래밍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명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니 더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걸 다 제끼고(?) 프로그래밍은 너무나도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다...!!!! 내가 해본 모든 일 중에 가장 그렇다.
위코드를 시작하고 2주가 지났을 때 퍼포먼스 코치와의 면담이 있었는데, 동기들과 비교되어 힘들다는 내말에 코치님은 지금 해야할 것은 남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어떤 개발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일러주셨다. 단순히 재밌어서 시작한 코딩이었지만,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프로그래밍에 매력을 느낀 그 순간부터 나는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었는지 알고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개선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코드 한줄을 쓰더라도 더 나은 코드를 쓰고, 한 기능을 구현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기능을 구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웹을 만들고, 그 웹이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앞으로 남은 두 달이라는 훈련기간 동안 얼만큼 더 성장해서 멋진 개발자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하면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열심히 해서 꼭 내 꿈을 이루는 그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아니 소미님.. 이렇게 글을 잘쓰시다니.... 글선생님으로 모시고 찾아가야겠내요.. ㅎㄷㄷ(제 메인에 떠있어서 우연치 않게 들어오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