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글에 이어서 이번 글에서는 기존 금융 시스템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신용 창조(Credit Creation)는 은행을 통해 국가에 유통되는 화폐 총량이 늘어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은행의 신용과 예금을 통해 유통되는 화폐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에 신용을 창조한다는 표현을 쓰며, 또 다른 말로는 예금 창조(Deposit Creation)라고도 합니다.
만약 김코딩이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으로부터 1억원을 대출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1억원은 한국은행이 직접 발행한 돈이기 때문에 본원통화라고 부릅니다.
김코딩은 이 대출금을 시중은행인 A은행에 예금합니다. A은행은 김코딩에게 받은 예금액 1억원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다만, 김코딩이 급하게 예금한 돈을 인출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예금액의 20%는 지급준비금으로 따로 보관하고, 나머지 8,000만원을 가지고 대출을 해주게 됩니다.
지급준비제도: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예금의 일정 부분은 지급준비금으로 실제로 보관하고, 나머지 금액만으로 대출 등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가령, 은행이 100억원을 가지고 있다면, 이중 최소 10억원은 실제 현금으로 보유하고, 나머지 90억으로 대출을 할 수 있습니다.
박해커는 A은행으로부터 이 8,000만원을 대출하고, 대출금을 B 은행에 예금했습니다. B 은행은 이제 박해커의 예금액 8,000만원에서 20%의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6,400만원을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줍니다.
이애플은 B은행으로부터 6,400만원을 대출받고, 대출금을 C 은행에 예금했습니다. C 은행은 이 6,400만원에서 20%의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5,120만원을 가지고 대출을 해주게 됩니다.
분명 한국은행이 처음 발행한 본원 통화의 양은 1억이었는데, 현재 A은행, B은행, C은행에 예금된 금액은 1억 + 8,000만원 + 6,400만원으로 총 2억 4천 4백만원이 되었습니다. 시장에서 이러한 과정은 무한히 반복되기 때문에, 시중은행에 예금된 금액은 계속 증가할 것입니다. 이를 무한등비급수를 사용해 구하면, 본원통화 1억원에서 발생한 예금액은 총 5억원이 됩니다. 이렇게 본원통화 1억원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는 돈, 즉 통화량은 5억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원통화 1억원을 제외하고, 통화의 유통만으로 창조된 신용화폐는 4억원(5억원-1억원)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본원통화로부터 신용화폐가 만들어지며, 전체 통화량이 본원통화보다 더 많이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통화승수는 전체 통화량에서 본원통화를 나눈 값을 의미합니다. 중앙은행에서 본원통화 10억원을 시장에 풀었는데 통화량이 1000억원이라면, 통화승수는 100이 됩니다.
그렇다면, 통화량이 늘거나 줄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통화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시장에 풀리는 돈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통화량이 많아지면서 개인의 소득 역시 증가합니다. 일반적으로 수입이 많아지면 소비 활동 역시 증가합니다. 상품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그대로인 경우, 다시 말해, 총수요가 총공급을 넘는 경우 상품이 가지는 가치는 높아지게 됩니다. 상품의 가치가 올라가게 되면 상품의 가격 역시 올라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며, 이를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 합니다.
그러나 직장인의 급여는 언제나 물가와 비례해서 상승하지 않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같은 수입으로 더 적은 물건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부동산 등 자산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자산이 물가가 오를수록 증가하기 때문에 큰 타격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격차를 막기 위해, 화폐의 독점적 발행권을 가진 중앙은행은 신중하게 통화량을 조절하여 물가를 조절합니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과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에 대해 더 알아보기
경상일보, [풀어쓰는 時事경제] 수요견인 vs 비용인상 인플레이션
20세기 초 독일 제국은 해외로의 진출을 위해 3B 정책이라 불리는 팽창 정책을 시행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은 기존에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눈독들이던 기존 열강들로 하여금 위기를 느끼게 하였으며, 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으로 구성된 삼국 협상과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맺은 삼국 동맹은 모로코, 발칸반도 등에서 대립하게 됩니다.
3B정책: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가 펼친 제국주의 노선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이다. 3B는 독일의 베를린(Berlin), 터키의 비잔티움(Byzantine), 이라크의 바그다드(Baghdad)이며, 독일은 3B를 정복하여 독일, 동유럽, 발칸, 페르시아만을 연결하고자 했다.
독일은 이 과정에서 외교적,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었으며, 이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1차 세계대전(1914년 7월~1918년 11월)에 참전합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삼국 협상과 삼국 동맹
당시 독일은 10개월만에 끝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처럼 1차 세계대전 역시 단시간에 끝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전쟁 비용을 세금이 아닌 국채 발행으로 충당했습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와 같이 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 배상금을 통해 전쟁비용을 만회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장기화 되면서, 독일 정부 지출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에 발발해 4년 뒤인 1918년 11월에 종전합니다)
전쟁 발발 전 독일의 1년 예산은 23억 마르크였으나, 1914년 10월 마른 전투 직후 한달간 지출은 12억 마르크였으며, 전쟁 막바지인 1918년 10월에는 한달간 48억 마르크를 지출하였습니다.
독일 정부는 이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채권과 어음을 남용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독일 정부는 심각한 적자 상태에 빠졌고, 갚아야 하는 부채는 약 1,500억 마르크였습니다.
또한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었기 때문에 승전국들은 독일에게 전쟁배상금으로 1,320억 마르크를 부과하였고, 1,320억 마르크는 독일의 2년치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수준의 큰 돈이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부채와 전쟁배상금, 그리고 전쟁으로 파괴된 사회기반 복구 비용과 자국민 보상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채권을 발행하여 독일 중앙은행(라이히스방크)이 인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은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인수하기 위해 마르크화를 과도하게 발행했습니다.
한 여성이 화폐를 땔감으로 쓰고 있는 모습.
1920년대 독일은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해 나무를 베어 땔감을 마련하는 비용보다 화폐를 태우는 비용이 더 낮았기 때문이다.
전시에 모든 자원이 전쟁에 투입되어 전쟁 직후에는 상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 발행량을 과도하게 늘려 재정을 조달하자, 시장 전체 통화량이 급등하고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1921-1923년 독일의 통화공급량과 인플레이션 그래프
독일 국민들은 앞으로도 물가가 빠르게 상승할 것이라 예상하고 물가가 더 상승하기 전에 돈이 생기는대로 물건을 구입하였습니다. 또한 물가가 상승할수록 화폐가치는 하락하므로 기업들은 투자하여 돈을 벌기보다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 비화폐 자산을 늘리는 데 급급하였습니다. 결국 시장 전반적으로 투자는 줄고, 많은 기업들이 부도나게 됩니다.
당시 독일은 금본위제로, 화폐는 금으로 상환할 수 있는 일종의 권리보증서였습니다. 그런데, 금 보유량과는 무관하게 화폐를 많이 찍어내다 보니 화폐의 가치가 폭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금본위제: 각국의 통화 가치와 금의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관계를 유지하는 통화 시스템. 각국은 보유 금 총량에 따라 통화 공급량 결정. 그리고 통화 공급량에 따라 물가 수준도 결정되었다.
1918-1923년 독일 달러환율.
1918년 달러당 환율은 100마르크이었으나, 5년뒤 1923년에는 10경(100,000,000,000,000,000)마르크까지 치솟았다.
외환거래자들은 마르크화의 화폐 가치가 떨어지자 마르크화를 팔고 다른 안정된 통화를 매입하려 하였습니다. 독일 내 외국인의 자산이 독일에 빠져나가자, 마르크화의 환율이 절하되었습니다. 환율이 절하되자 수입물가 역시 상승했고, 이것 역시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환율 용어 정리
- 통화량이 많아지게 되면, 통화의 가치가 하락(환율의 평가절하)하게 됩니다. 기존에 1달러가 1000원이었는데, 시장에 원화의 통화량이 많아지면 1달러 당 환율이 1100원이 될 것입니다.
- 반대로, 무역 수출이 잘 되어 달러를 많이 벌게 되면, 시장에 달러가 많아지니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고, 그에 반비례해 통화의 가치가 상승(환율의 평가절상)하게 됩니다. 1달러의 당 1100원이었던 것이 1000원이 될 것입니다.
1923년 11월 15일 독일 정부는 마르크화 발행을 중단하고, 새로운 화폐인 렌텐마르크화를 발표하였습니다.
렌텐마르크화: 토지와 건물에 의해 가치가 뒷받침 되는 토지 저당 증권 형태의 화폐.
5 렌텐마르크 지폐.
독일 정부는 새로운 화폐의 발행량을 24억 렌텐마르크로 한정하였으나, 당시 독일에서는 화폐가 뗄감으로 쓰일 만큼 국민들의 화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독일 정부가 약속한 24억 렌텐마르크는 당시 독일의 경제 규모에는 너무 작았기 때문에 지방정부, 은행, 대기업 등에서 발행 한도를 늘리라는 압박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독일 정부는 약속한 발행 한도를 지켰습니다.
독일 정부가 자신들이 발표한 정책을 지키자 국민들의 화폐에 대한 신뢰도 점차 회복되었고, 화폐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자 국민들은 상품을 사고 팔때 렌텐마르크화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렌텐마르크화가 화폐로서 자리를 잡으면서 초인플레이션 역시 진정되었습니다.
1999년 우고 차베스는 대통령에 취임 후, 볼리바르 혁명(Bolivarian Revolution)이라 불리는 복지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볼리바르 혁명을 통해 차베스는 공공학교와 보육시설을 늘리고, 빈민층을 위한 무상의료시스템을 도입하고,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복지 정책이 가능했던 이유는 베네수엘라가 전 세계 원유매장량 1위, 석유수출량 5위권의 원유 강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차베스는 복지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화폐 발행량을 늘렸으며, 복지 정책에 대한 재원은 원유수출로 조달하였습니다.
차베스의 복지 정책 중 하나는 물자 수입정책이었습니다. 물자 수입정책은 국가 주도로 물자를 수입해, 정가 이하로 국내 시장에 파는 정책입니다. 국가 주도로 국민들에게 싼 값에 좋은 품질의 수입 물품을 제공하는 것이 물자 수입정책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파는 수입 상품의 가격이 너무 싼 나머지, 국내에 있는 각종 제조업 산업들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립니다. 결국, 국가 경제가 원유수출 하나에 의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을 기준으로 국가 수출의 96%를 원유산업이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가 성립되게 됩니다.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복지정책을 사용하는데 쓰이게 되고, 그 외 산업이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에, 원유산업이 조금만 휘청하면 국가 경제가 함께 휘청이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농업・제조업 등을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시도했으나, 수출의존도가 높은 석유산업이 발전한 국가의 특성상 다른 산업이 발전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베네수엘라의 2019년 수출산업의 90%는 원유(Crude Petroleum) 및 정유(Refined Petroleum) 수출이다.
차베스는 정치적으로 반미를 표방하였기 때문에 미국에게 베네수엘라는 골칫거리였습니다. 미국은 국외 베네수엘라군과 고위관직자의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 비자 제한 등 제재를 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베네수엘라를 정치・경제적으로 압박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2014년 국제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인해 미국이 셰일 가스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확대한 것 역시 베네수엘라 경제에 큰 타격이 되었습니다. 국제 유가가 오르자 그동안 채산성이 맞지 않았던 셰일가스 생산이 가능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너도나도 석유 생산을 늘려 국제 유가를 떨어뜨리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저유가 기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원유 가격이 폭락하자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 역시 하락세를 겪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셰일 가스 개발을 기점으로, 점차 베네수엘라산 석유 수입을 줄여 2013년을 기점으로 기존 수입량의 80%를 줄였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경제제재 역시 베네수엘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수입 그래프.
꾸준히 하락하던 베네수엘라 원유 수입양이 미국이 셰일 가스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던 2014년을 기점으로 크게 폭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14년부터 차베스의 뒤를 이은 마두로 정권은 국고를 채우기 위해 화폐를 무한정으로 발행하기 시작합니다. 통화량이 급격히 증가하니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는데,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한 기업과 산업이 이미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제어하는데 실패합니다.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 차트.
2017년 7월 약 1000%의 물가상승률이 1년 후인 2018년 6월 40,246%까지 치솟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두로 정권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실시합니다. 그 중 하나는 2018년 8월 두번째 리디노미네이션입니다. (첫번째 리디노미네이션은 2008년 1/1000 화폐개혁입니다)
리디노미네이션: 화폐의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액면가를 동일한 비율로 낮추는 화폐 단위의 변경. 5만원이 5천원으로, 1만원이 1천원으로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기존화폐인 볼리바르 푸에르테(Bolivar Fuerte)의 액면가를 십만분의 일로 절하한 볼리바르 소베라노(Bolivar Soberano)를 공식 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8월 초에는 상업거래에서 기존화폐(BsF)와 신화폐(BsS) 가격을 병기했으나, 2일부터는 금융계좌 잔액, 가격 표시 등 모든 분야에서 신화폐(BsS)단일화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두로의 군부독재정권 하에서 지방정부의 각종 인사는 친마두로 세력이 장악하고, CLAP(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무상지원 프로그램)의 최고 관리자들이 식품을 빼돌리는 등 마두로 정권의 재정건전성은 매우 불투명했습니다. 정부의 부정부패 및 기존 인플레이션 정책의 실패로 인해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급진적인 리디노미네이션 역시 불신하였습니다. 또한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기존화폐와 신화폐의 가치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화폐 계산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했으나, 물가상승률이 수시로 변동되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은 가중되었습니다. 2018년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169만 8488%에 육박하면서, 리디노미네이션은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키우는 역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마두로 정권은 국제 유가 하락으로 인한 재정적자를 화폐 발행으로 충당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통화량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엔 이미 기존 국내 산업이 무너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베네수엘라 시장 경제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국내 생산이 전무한 상태이다 보니 기초 물품과 식량 부족은 극심했고, 유가 하락으로 인해 정부의 해외 물품 수입 역시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기초적인 의식주 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정부는 인플레이션 상황 타계에 대한 미진한 모습을 보이자, 정부에 대한 신뢰는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앞선 리디노미네이션처럼 오늘날의 베네수엘라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국민들은 화폐에 대한 신뢰 역시 잃었고, 시장에 더이상 화폐가 유통되지 않아 정상적인 시장이 마비되는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대부분의 상점은 암시장화 되었으며, 암시장에서는 미국 달러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화폐는 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입니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통해, 국가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시장이 마비되면 이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에게로 향하게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 베네수엘라의 현재 상황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 경제를 뒤흔든 글로벌 금융 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되돌아보면 대공황과 비교하여 굉장히 빠르게 경기가 회복되었는데, 미국의 정책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또한 해결과정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구제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다음의 사례를 통해 알아봅시다.
세계금융위기의 상징이 되어버린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미 주택시장에서 불길한 징조가 시작됩니다. 집값의 하락으로 주택의 담보가치가 떨어지고, 이로써 새로운 대출 상품의 한도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이용자들은 이율이 낮은 새로운 대출로 옮겨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저소득층 주택담보대출의 상환률이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주택압류가 덩달아 증가하기 시작하고, 경상수지와 재정적자 역시 증가세로 변화하면서 무역과 재정 양쪽에서 신음이 조금씩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금융기관의 탐욕은 이를 무서운 재앙으로 만들었습니다.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은 단기간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고 다시 빌려주는 방법을 사용하고자 MBS라는 파생상품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MBS(Mortgage-Backed Security): 주택을 담보로하는 채권
은행이 MBS를 투자자에게 팔면서 전체 이자보다는 적지만 짧은 시간안에 수익을 남기고 투자자는 시간이 오래걸리지만 원금과 이자를 얻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 공식이 성공하려면 집 값이 지속적으로 우상향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야 하는데 주택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해 MBS와 관련된 금융상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금융기관은 모두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유동성 위기: 돈을 낼 여력은 있지만 단기적인 위기로 현금이 떨어진 상태
주택담보대출 관련 자산이 많았던 베어스턴스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베어스턴스는 MBS 증권을 담보로 최대 만기가 90일인 단기 자금을 빌려 다른 자산에 투자를 하였는데 이 금액이 무려 1,000억 달러(한화 약 100조원)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주택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MBS의 가격이 하락되었고,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은 추가로 담보를 맡기거나 혹은 돈을 갚으라는 압력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갚지 못한 베어스턴스는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경영권을 JP모건 체이스에 넘기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거래의 성사를 위해 뉴욕연방은행이 JP모건 체이스에 290억 달러의 저리 대출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금융 위기 시작의 징조였습니다.
JP모건 체이스. 투자은행가였던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이 설립한 은행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중 하나. 오늘날 뱅크 오브 아메리카, 씨티, 웰스 파고와 함께 미국의 4대 은행.
이제 부도 공포에 휩싸인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전세계에 뿌려놓았던 투자금을 달러로 바꿔 회수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급격한 환율 상승과 더불어 유가 상승까지 겹쳐 비상이 걸렸는데 국내 은행들의 달러 채무 만기가 몰려있는 9월 위기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불안감을 고조 시켰습니다.
1850년에 설립되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와 더불어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브라더스는 주요 사업이 부동산 영역인 만큼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금융기관보다 높았습니다. 이로 인해 리먼은 모기지를 대량으로 인수하여 MBS로 만들어 큰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늪은 베어스턴스와 마찬가지로 MBS를 담보로 단기 자금을 빌려 다른 자산을 사들였던 리먼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리먼브라더스는 그 동안 세계 각국에 자신의 지분을 팔기위해 노력했고 이 중에는 대한민국의 산업은행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2008년 9월 9일 지분 투자 의사를 철회하였고, 주가는 14달러에서 7.7달러까지 약 50% 가량 하락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곳은 영국의 바클레이즈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 뿐이였지만 이 둘 역시 미국의 지원 없이는 인수에 부정적이였고 리먼에게는 파산의 그림자가 점점 짙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리먼이 파산된다면 거미줄처럼 얽혀있던 다른 금융사에도 큰 타격에 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각 금융사들은 리먼의 자산가치가 얼마인지를 파악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리먼을 인수하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최후의 2인으로 남아있던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리먼의 부실자산 규모가 700억 달러가 넘는다며 리먼 인수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총 440억 달러에 리먼 다음으로 파산 가능성이 높았던 메릴린치를 인수한다고 발표합니다. 이제 리먼의 생존 여부는 영국의 바클레이즈에게 넘어갔습니다.
미국 재무부 장관인 헨리 폴슨은 금융기관들이 330억 달러를 각출하여 리먼의 부실자산을 인수해달라고 하면서 바클레이즈가 리먼을 인수할 것이라는 한가닥의 희망을 버리지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재무부 장관이었던 알리스테어 달링은 폴슨 장관에게 리먼브라더스의 인수 거절 의사를 밝혔고, 이제 인수라는 선택지는 옵션에서 지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바로, 파산 보호신청이었습니다.
하루 수십억 달러를 거래하던 리먼브라더스의 현금 유동성은 결국 제로가 되었고,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새벽 2시경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보호신청서가 제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여파는 미국 금융가를 시작으로 전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리먼의 파산소식이 알려진 후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전영업일보다 500포인트 이상 떨어졌으며 리먼 다음으로 파산 가능성이 높았던 AIG의 경우 전일 대비 주가가 50% 이상 하락하였습니다.
그리고 투자자들의 자금이 금융기관의 채권이 아닌 국채로 몰려드는 바람에 미국채의 1개월물 금리는 1%이상 급락. 기업 어음의 금리는 폭등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감원과 함께 투자를 유보하는 나비효과가 일어나면서 전 세계가 금융위기의 늪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연준(연방준비제도)은 금융위기를 해결하기위해 많은 정책을 쏟아냅니다. 그 중 유명한 정책이 바로, 양적완화입니다.
양적완화란, 기준금리 수준이 이미 너무 낮아서 금리 인하를 통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중앙은행이 다양한 자산을 사들여 시중에 통화를 늘리는 정책.
정부의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동원해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무제한으로 매입하면서 시중에 통화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결국 쉽게말해, 대량의 화폐를 발행하며 급한 불을 끄고 경제 회복을 달성하면 공급했던 과잉 유동성을 서서히 회수하여 지나친 물가 상승을 방지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이로인해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빠르게 원상복귀하며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까지 번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통화 공급량 그래프.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유동성 공급이 급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표면적 경제는 점차 회복이 되었지만 대량의 화폐발행으로 인한 경제회복은 일반인들에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월급은 받는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물가상승으로 인한 문제가 있었고, 찍어낸 달러로 인해 환율이 요동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달러 의존도가 높은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의 경우 페소가치가 하락하면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는 중앙화된 단일기관의 정책 여파로 다수의 사람에게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자산의 가치의 가장 기본적인 잣대인 화폐에 대한 신뢰도를 잃으면서 사람들은 중앙기관의 정책이 자산에 영향을 주는 것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비슷한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 중에는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있었습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9년 2월 11일 비트코인 백서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전통적인 화폐가 가진 근원적인 문제는 그것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신뢰 기관 자체이다. 중앙은행은 통화가치가 하락하지 않도록 신뢰를 줘야 하지만, 법정 화폐의 역사는 그런 신뢰를 위반하는 사례로 가득하다. 은행들은 우리의 돈을 보관하고 그것을 전자적으로(electronically) 전송하기 위한 신뢰를 줘야 하지만, 그들은 겨우 얼마 안 되는 준비금을 남기고 신용 버블의 기복 속에서 그것을 대출해준다. 우리는 우리의 개인 정보를 가진 그들을 믿어야만 하고, 신원 도용자들이 우리 계좌를 유출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신뢰해야 한다. 신뢰 기관의 엄청난 간접비(overhead cost)로 소액 결제는 할 수가 없다.
-사토시 나카모토, Bitcoin open source implementation of P2P currency, P2P foundation-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수비용을 채권과 어음으로 충당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종전 직후 독일은 심각한 적자 상태였으며, 패전 책임으로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내야 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채권을 발행하여 독일 중앙은행이 인수하도록 했습니다. 중앙은행은 채권을 인수하기 위해 마르크화를 과도하게 발행했습니다. 시장에 통화량이 급격하게 증가하자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고, 동시 환율이 절하되어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었습니다. 화폐의 가치가 뗄감보다 떨어질 정도로 낮아지자, 독일 국민들의 화폐에 대한 신뢰 역시 떨어졌습니다.
독일 정부는 새로운 화폐인 렌텐마르크화를 발표하였고, 이 새로운 화폐의 발행량을 24억 렌텐마르크로 한정하였습니다. 독일 정부가 약속한 발행량을 엄격하게 지키자 화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회복되었습니다. 이후 렌텐마르크화가 화폐로 자리잡자, 초인플레이션은 빠르게 진정되었습니다.
차베스 대통령은 볼리바르 혁명이라고 불리는 과감한 복지정책을 펼쳤으며, 그 재원은 원유 수출로 조달하였습니다.
물자 수입 정책은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좋은 품질의 수입물품을 싼 값에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파는 수입 물품의 가격이 너무 싼 나머지 국내 제조업이 경쟁할 수 없게 되었고, 대부분의 산업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 전체가 원유 수출 하나에 의존하는 기형적 형태로 변했습니다.
또한 2014년부터 미국이 본격적으로 셰일가스를 생산하면서 OPEC 회원국과 치킨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2014년부터는 저유가 기조가 이어졌으며, 원유 가격이 폭락하자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 역시 하락세를 겪었습니다.
마두로 정권은 국고를 채우기 위해 화폐를 무한정으로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통화량이 늘어나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는데, 이미 국내 기업과 산업이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마두로 정권은 인플레이션을 제어하는 데 실패합니다. 약 세번에 걸쳐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지만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키우는 역효과를 불러왔습니다.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집값 하락으로 주택의 담보가치가 떨어지자, 저소득층 주택담보대출 상환률이 급격히 감소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MBS 파생상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금융 기관은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전세계의 금융 회사들은 투자금을 달러로 바꾸어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요 사업이 부동산 파생상품이었던 리먼브라더스는 자신의 지분을 팔기 위해 노력했으나, 리먼의 자산가치는 생각보다 더 부실했고, 결국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는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여파는 미국 금융가를 강타했고,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투자를 유보하게 되면서 전세계가 금융위기의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미 연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통화량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미국 경제는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임금이 물가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게 되면서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미 연준이라는 단일 기관의 정책이 화폐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자, 사람들은 중앙기관의 정책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것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비트코인이 등장한 배경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을 소개하기 전,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알아볼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