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테크코스 한달 생활기

포키·2022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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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테크코스에서는 매 레벨마다 한 편의 글을 쓰고 상호 리뷰를 통해 퇴고를 거친 후 완성하는 것이 수료 조건이다. 아래는 Level1 글쓰기 미션을 통해 작성된 나의 한달 생활기(라 쓰고 우테코를 통해 겪은 내 삶의 변화라 읽는다)

“인생은 cherry-pick이 안되니까.”

리버, 더즈, 범고래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영화 어바웃 타임에 대해 이야기하다 지어진 문장이다. 그날은 첫 PR 마감 하루 전이었다. 우리는 미션을 제쳐둔 채 서로의 인생 영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곳, 그 사람들, 그때가 아니면 지어질 수 없는 순간.

나와 리버는 MBTI P로 끝나는 사람들인 죄, 끝내주게 회식을 즐겨버린 죄로 금요일부터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감 1분 전에 결과가 출력되지 않는 블랙잭 프로그램으로 겨우 PR을 날렸고,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코딩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살짝 울 뻔도 했다. (울지는 않았다. 포키는 가오가 센 편이다) 회식 가지 말걸. 아니 그 전에 열심히 해 둘걸. 후회가 무거웠다. 그런데 며칠 후에 열린 글쓰기 첫 강의 미션이 한 문장 짓기라니. 목요일의 술자리 덕에 고민 없이 위의 문장을 써서 낼 수 있었다. 이로써 목요일의 회식은 가치 있는 시간이 되고 후회의 무게는 덜어진다. 자기 합리화 아니냐고? 그럼 잠깐, 나의 옛날이야기를 꺼내 보겠다.

나에게도 후회에 짓눌리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온 학교가 나를 말렸음에도 음악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별안간” 음악 입시를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과의 독대 끝에 학교 수업 대신 입시에 투자할 자유 시간을 쟁취하기도 했다. 그 덕에 무사히 작곡과에 진학해 졸업도 했지만 보다시피 음악 안 하고 있다.

졸업 후에는 딥하우스에 빠져서 별 수익도 없이 2년여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언더그라운드 하우스씬에서 아마추어 디제이로 활동하며 제 2의 Peggy Gou가 되는 상상도 무한으로 즐겼다. 그러나 보다시피, 지금은 개발 하고 있다.

한때는 이런 과정들이 다 채우고 비워내는 일의 반복인 줄만 알았다. 왜 나는 사랑하는 것을 늘 내 손으로 떠나보낼까? 다른 사람들은 장기 연재하는 동안 왜 나 혼자 미완성 콘티만 계속 끄적이고 있을까? 자책도 참 많이 했다. 내 삶이 부러진 시간의 파편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비워진 적 없다.

데일리 크루들과 처음 오프로 만난 날, 한 크루가 작곡한 곡을 들려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딱히 발매되거나 보관되어 있는 음원이 없어서 들려줄 수 있는 형태로 남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말하는 그 순간에도 자책했다. 자격지심에 말이 날카롭게 나갔던 것도 같다. 그날 집에 오는 길에 핸드폰에 남아있던 자작곡 합주 녹음본을 발견했다. 이번엔 진짜 울 뻔했다. (그러나 절대 울지 않았다. 아빠가 밖에선 울지 말라 했다)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제일 미안했다.

디제이 시절, 디제잉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외로이 주장했었다. 그 주관 하나 믿고 여러 공연을 기획했다. 그러나 공연 기획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부족했고 이를 메꿀 수 있는 자본도 내게는 없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을 모아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코로나 이후 없던 일이 되었다. (이땐 좀 울었다) 설득력 있게 표현할 기술도 없으면서 빡빡 우겨 대기만 했던 게 흑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경험이 우아한테크코스 지원서를 채워줬고, 나에게 새로운 10개월의 경험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살아낸 모든 시간은 켜켜이 쌓여 지층을 이룬다. 떠나가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나의 토양으로, 또 자원으로 남아있다. 미련으로 질척대고 많은 것을 떨어뜨렸다 해도 좋다. 그건 마음을 다했다는 뜻이니까. 그럴수록 더욱 비옥하거든. 또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되더라도 이 모든 것들이 양분이 되어 줄 거거든. 지금 내가 선물같은 한 달을 보낼 수 있었던 것 처럼.

한 달을 함께 살아낸 모든 크루들에게

우테코의 한 달 중 단 하루 한순간이라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었는가? 온 마음 다한 순간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우리, 지금까지의 시간을 후회하지 말자. 대신 끊임없이 feat하고, fix하고, refactor하자.

왜?

“인생은 cherry-pick이 안되니까!”



Special Thanks To: 글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고 좋은 피드백을 전해준 모든 4기 크루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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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유를 찾고 싶은 포키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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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6일

헉 지나가다 봤는데 포키의 글이였다니!?
완전 멋있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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