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테코에서의 첫 한달

포키·2022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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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0명 중에 100등이어야 했던 이유
100등이 아니었다?!

“그래, 아빠는 니가 될 줄 알았어. 이제부터 니는 100명 중에 100등이다. 알겠제? 재밌게 하고 온나, 재밌게!”

합격 소식을 아빠에게 전했을때, 아빠는 위와 같이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너무한데?’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저 말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과거의 나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움직이지 못할 때가 많았다. ‘들키는 것’이 늘 두려웠다. 게으름 피우는 나를, 기본적인 것도 몰라서 검색하는 나를, 허술한 중간 과정을, 내가 보는 나의 모습과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 사이의 갭을 들키기가 그렇게 싫었다. 그렇다고 그 마음을 좋은 결과물을 내는 데에 쏟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숨고 도망다니기 바빴다. 결과도 못내는 주제에 ‘완벽주의’라는 말도 과분하다 생각했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봐온 아빠기에 나에게 ‘100명 중에 100등’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신거다. 그 결과 나는 ‘새 학기에 제일 늦게 등교한 주제에 가방은 한 쪽으로만 걸치고 뒷문 드르륵 열고 쓰레빠 질질 끌면서 맨 뒷자리에 털썩 앉아서 교실 한 번 쭉 - 스캔하는, 대체 어디서 샘솟는지 모를 여유가 넘치는 학생’의 마음가짐을 장착할 수 있었다. 이 어이없는 처방의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테코의 첫 한달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해준 놀라운 효험, 지금부터 간증 들어갑니다.

우테코는 나를 숨어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테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는 미션이 거의 없다. 구현 미션의 step1은 페어 프로그래밍이고, 강의 후 진행되는 간단한 워크샵조차 랜덤으로 조를 짜서 함께 진행한다. 진행 뿐 아니라 회고도 마찬가지다. step2에서 각자 구현을 마친 후에는 step1에서 함께 했던 페어를 만나 회고를 진행한다. 팀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로 회고까지 팀원들과 함께 한다.

우테코의 캡틴 포비는 첫 날 OT때부터 ‘부족함을 빨리 드러내라’고 격려했다. 이 곳에서는 ‘잘하는 척’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비교 대상은 다른 크루가 아닌 어제의 나다. 그리고 그럴 수 있도록 미션 외에도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우테코 크루들의 학습 로그 플랫폼 ‘Prolog’에서는 학습의 ‘결과’가 아닌 학습의 ‘과정’을 공유한다. 내 생각의 흐름을 꿰뚫는 리뷰어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서는 나의 부족함을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다.

만약 아빠의 처방을 받지 못하고 들어왔다면 이 모든 상황들이 나에게는 무지막지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내 마음 속에서 100명 중에 100등이기 때문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설령 틀렸을 지 몰라도 지금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한다. Prolog도 벌써 4개나 올렸다. 이렇게 쓰는게 맞는지, 이런 걸 써도 될지, 이 내용이 틀리진 않았을지 걱정하기 보다는 일단! 열심히 쓰고, 냅다 올리고 있다. 정 아니다 싶으면 누군가 나한테 알려주겠지 하는 뻔뻔한 생각까지 한다.

나의 이런 변화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친구에게 맡겨둔 칭찬도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모두가 나의 스승이 된다.

첫 페어 때, 단축키를 잘 모른다고 했더니 페어였던 쿤은 단축키를 쓸 수 있는 곳이 있을 때 마다 나에게 알려주었다.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매트, 케이 등의 크루들은 블로그 플랫폼 별 장단점을 알려주었다. 호호가 게더 타운을 통해 모각코를 열어줘서 ‘모각코’라는 말도, 게더 타운이라는 플랫폼도 처음 알 수 있었다. 계획 어플을 동시에 4종류나 사용한다는 ‘파워 J 인간’ 주디에게는 계획 어플 추천을 부탁했다.

100명 중에 100등은 ‘저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네...‘같은 생각 안해도 된다. 그냥 ‘와...이런게 다 있네. 세상 참 좋아졌다~’ 생각하면서 알아가면 된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고개를 돌릴 때 마다 배울 것 투성이다. 감사하게도, 누구도 나의 무지를 탓하지 않고 지식을 공유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페어와 실력이 차이나서 민폐가 될 것 같아요’라는 한 크루의 말에 포비는 페어에게 설명을 요구하라 말했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메타 인지도 높아질 수 있으니, 전혀 민폐가 아니라고 한다. 오케이. 더 당당해지기로 한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장점이 발견된다.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호호의 모각코는 그 날 학습한 내용을 공유하고, 각자 학습한 뒤 끝나기 전 짧게 각자 회고를 나누는 순으로 진행된다. 첫 모각코에서 나는 ‘IntelliJ 단축키 학습’을 목표로 설정했다. 다들 어려운 공부 할 때 단축키를, 그것도 프리코스에서부터 썼던 IntelliJ의 단축키를 이제서야 공부하는 게 민망했지만 또 다시 ‘100명 중에 100등’을 되뇌이며 당당하게 나의 학습 목표를 밝혔고 그날 꼬박 4시간을 단축키만 공부했다.

조금 우스워보일 수도 있을텐데, 크루들은 오히려 나에게 단축키 공유를 부탁했고 데일리 스크럼에서 단축키를 주제로 이야기 할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내가 학습하며 참고했던 자료들을 공유했더니 필즈가 shortcut 하나로 깊이있는 공부를 했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나는 스스로 학습 요령이 없어서 냅다 공식 사이트를 찾아갔고, 단축키를 써 보질 않아서 뭘 많이 쓸 지도 몰라서 키맵에 있는 키를 다 훑어봤고, 그 와중에 또 모르는 용어도 참 많아서 그 용어들 뜻 부터 이해하다 보니 그렇게 된건데, 그 것을 ‘깊이있는 공부’라고 말해주니 이 부분은 내 학습 방식의 장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별별걸 다 찾아봤다.

나는 항상 남들에게 ‘모든 장단점은 하나의 특성으로 모인다’고 말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내 단점은 가리기 바빴다. 가림막을 걷어내자, 내가 느끼는 단점이 다른 시선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뿌듯함의 농도가 진해진다.

  1. 저녁에 만나기로 한 친구의 생일이 오늘임을 만나기 30분 전에 알아버린 상황. 통장엔 3만원 뿐, 오늘 가기로 한 식당의 객단가는 1만원 중후반대, 돈 들어오려면 일주일은 걸린다. 급한 대로 눈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서 2000원짜리 열쇠고리 하나를 산다. 그래도 구색은 갖춰야할 것 같아 포장비 1천원을 지불하고 예쁜 리본 박스에 담았다. 친구는 박스가 너무 예뻐서 기대가 된다며 당장 열어보고 싶다고 했지만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한다. 밥을 다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박스를 열어봤을 친구의 얼굴이 상상되지 않는다. 사실 상상된다. 불안하고, 후회되고, 괴롭다.
  2. 같은 상황, 눈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서 포장비 1천원을 지불하는 대신 3천원짜리 동전지갑을 하나 산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건넸지만 친구는 미안해하지 말라고, 마침 주머니에 동전이 많아서 곤란했다고 말해준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친구의 패딩 주머니에서 딱 봐도 3800원은 될 것 같은 동전이 짜르르 쏟아진다. 가득 찬 동전 지갑을 짤랑짤랑 흔들어 보이며 웃어주는 친구. 듣는 동전 지갑도, 선물 준 나도 기분이 좋다. 나를 위해 기뻐해주는 친구에게 고마움까지 더해진다.

과거의 나는 매일을 1의 기분으로 살았다면, 지금의 나는 2의 기분으로 살고 있다. 포장된 나를 보여주었을 때는 아무리 좋은 평을 들어도 기쁘지가 않았다. 오히려 ‘들킴’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포장지를 벗고 사람들 앞에 서 보니까, 내 생각보다 나를 향한 평이 좋다. ‘진짜 나’에 대한 칭찬을 받았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더 진하다. 그런 좋은 말을 건네고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참 고맙기까지 하다.

게다가, 100명 중에 100등이 아니라 79명 중에 79등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순위 21등 상승한 기분, 오히려 좋아!

사실 애초에 등수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100명 중에 100등’ 맨날 되뇌었더니 정말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100ㅁ... 아니, 79명 중에 79등이다. 등수나 체면 따위 신경쓰지 않고, 내 성장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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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유를 찾고 싶은 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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