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찌 이리 나태할 수가 있을까.
나는 분명 나태의 신이 가호를 내린 나태나태 인간일 것이다.
인간이 어찌 이리 나태나태 열매를 먹은 것마냥 목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 수가 있을까.
내가 이리 나태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지지 않고 불규칙적인 수면습관을 가진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키에 비해 많이 나가는 몸무게도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게임에 빠져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시간 제한 없이 하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누가 부르면 그 시간에 계획해둔 일이 있더라도 상관없이 약속에 가는 것도 필히 상관이 있을 것이다.
지금 나에겐, 목적의식이 없다.
내가 간절히 바라고 이루고 싶은 목표, 해내야만 하는 목표, 이걸 꼭 해내야겠다 싶은 목표가 없다.
삶의 이정표가 될 목표가 없다. 마치, 네비게이션 없이 달리는 차처럼.
물론, 나도 하고싶은 것은 많다. 1인 인디게임 개발도 해보고 싶고, 노래도 작곡하고 불러보고 싶고, 소설도 써보고 싶고,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다. 누가 들으면 터무니없는 목표라고 말할지도 모를 해보고 싶은 것들, 아무리 고개를 쳐들어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목표들을 보고 있자면,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해야할 지 감이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그저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것들을 상상만 하며 제자리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스키장에 다녀왔다. 일주일 전부터, 설레는 마음에 언제 오늘이 올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오늘 새벽 4시 반에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타러 갔다.
스키를 타는 것은 허벅지도 아프고, 리프트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것도 힘들고, 기다리고 올라가는 것도 지루했지만, 재미있었다. 버스를 3시간을 타고, 전철도 타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음에도 나는 오늘 스키장을 잘 다녀왔다고, 좋은 하루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즐겁고 보람찬 하루였다.
나는 목욕을 오래한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이루말할 수 없는 포근함과 편안함, 온몽의 피로가 풀어해쳐지며 긴장이 풀리는 감각 등이 몰려온다. 그러고 있으면, 이 따뜻한 물에서 도저히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나갈 이유를 못 느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따뜻한 탕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오늘은 목욕을 했다. 역시나 행복한 감각이 나를 덮쳐오며 내 몸의 피로를 풀어주었고, 나는 오랫동안 목욕을 했다. 물이 차가워진다 싶으면 뜨거운 물을 조금씩 틀어서 다시 따뜻한 탕을 유지해주기를 반복, 장장 2시간이 넘게 탕안에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아침에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버거워하면서, 오늘은 어떻게 그렇게 반짝반짝한 정신으로 일어나자마자 옷을 입고, 짐을 챙겨 버스를 타러 갔을까? 그리고, 지금은 왜 이 탕에 오래있는 게 좋지 않고, 나가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결과는, 목적의식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스키장에 가기 위해서는 4시 반에 일어나서, 내복과 긴 양말, 따뜻한 옷을 입고, 전날 챙겨놓은 짐이 든 가방을 들고 4시 50분에는 나가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였다. 미리 계획한 목표와 준비들은, 나를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게 했다.
반면, 목욕탕 속에 있는 나는 아무런 목적의식이 없었다. 아무 생각과 목표가 없으니, 주구장창 편안한 환경에서 쉬면서 일어날 의지조차 상실한 것이다. 아니, 사실 목표가 있긴 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어야지' 라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시작과 끝이 없고, 어느정도를 풀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고, 정해놓은 시간이 없는 흐지부지한 목표는 나를 뜨끈뜨끈한 지상낙원 같은 탕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없었다.
그런 차이인 것이다.
물론 결국 나오긴 했지만,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충격적이다. 욕탕에서 자면 체온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고 싶은데 욕탕에서 자면 안되니까 살기 위해 나온 것이다. 이렇게 분명한 목표가 생기니 바로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결국 인생도 다를 게 없다고 느꼈다.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면서 언젠가는 저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만 하고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분명한 내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한 내 행동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만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곰곰이 또 생각해 보았다.
내 인생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내가 어떻게 살든 행복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필요한 조건들이 있겠지만, 3가지 커다란 범위로 간추려 보았다.
즐거움, 만족, 평화 이 세가지가 나의 행복을 위한 조건들이다.
일을 하는 즐거움, 게임을 할 때의 즐거움, 친구와 농담을 할 때의 즐거움, 밥을 먹을 때의 즐거움, 잠을 잘 때의 즐거움, 무엇을 하든 즐겁다면 그건 곧 행복이다. 세상에 즐거움이란 감정이 없어진다면, 그만큼 삭막한 세상이 있을 수 있을까?
그 다음은 만족이다. 만족에는 굉장히 여러가지가 담겨있다. 성장에서 오는 만족감인 성취감, 내가 무언가를 해내고 얻는 만족인 뿌듯함, 가족과의 즐거운 저녁식사 후의 만족, 편안함, 이외의 여러 충만한 감각들이 모두 만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평화다. 평화롭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툼, 스트레스 같은 외부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한 힘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건강, 사랑, 우정, 감사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눈앞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킬 육체와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킬 건강한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을 하든 쉽게 지치지 않는 육체, 건강한 육체가 필요할 것이고, 남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평화에는 강인한 육체와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행복을 얻기위한 3가지의 큰 가치들을 정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나의 행동 우선순위였다.
행동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에는 많은 생각이 필요했다.
우선, 가족, 가족은 우선순위에서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는 애매한 순위였다. 부모님의 바람만을 위한 인생을 산다면, 과연 그것이 나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내 인생이 아니라, 부모님의 인생을 대신 산 것이리라. 효도를 했다는 것에 대한 보람은 있을 지라도, 결국, 그 인생은 분명 후회로 점철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을 아예 우선순위에서 빼버린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을 후순위로 계속 미루다보면, 분명 해주지 못한 것들이 두고두고 후회될 것이다. '계실 때 더 잘할 걸...' 하고 말이다. 효도는 결국 계실 때 해주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행동 우선순위 1위를 '가족의 안녕' 으로 정했다.
내 인생을 살되, 우리 가족의 건강, 행복 등을 우선시 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돈을 많이 벌어도, 우리 가족의 불행해진다면 나도 불행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돈이다. 정말 생각을 많이 했지만, 돈이 없다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혹자는 말한다,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고. 근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분명히 행복해질 수 있다. 좋은 집에서 살고, 맛있는 밥을 먹고, 해보고 싶은 것을 하고,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고 이런 것들에는 모두 돈이 들어간다. 돈이 없으면,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움 집에서 살고, 매일 라면으로 밥을 때우고, 무언가를 하기도 어렵다. 돈이 있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겠지만은, 돈이 없다면 불행이 아주 가까울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 우선순위 2위는 '돈' 이다. 돈을 벌기 위한 궁리를 끊임없이 하고, 수행하고, 돈을 쓰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자기 개발' 이다.
그것을 아는가? 세상은 인성이 좋고 성격 좋은 사람보다는 목소리 큰 사람의 말을 더 잘 들어준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의 요구조건을 더 잘 들어준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입김이 센 사람이 있는데, 바로 강한 사람이다. 여기서의 강함이란, 육체적 강함도 있겠지만, 나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분야에서의 전문성, 지식을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는 교수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겠다. 대학교에서는 교수의 목소리가 크지 않더라도, 모두가 귀 귀울여 교수의 목소리를 듣는다. 교수는 해당 분야에서의 지식과 전문성으로는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현재도 끊임없이 연구하며 그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수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진실이자 배워야 할 교본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렇듯, 자신만의 힘을 갈고 닦아서 자신의 강함을 채우는 것, 그것이 자기 개발이다.
나의 강함, 나의 가치를 쌓으면, 내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어디에서든 인정을 받고, 일자리를 구할 때도 많은 돈과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로는.......사실 정하지 못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을 어떻게 정형화해서 우선순위를 정핧 수 있을까.
AI라면 근시일 내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사람이다.
현재, 새벽 1시쯤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벌써 4시 22분이 넘어간다. 아이 피곤해.
그래서, 몇 가지만 더 얘기하고 마무리하자면, 이 세가지의 우선순위 아래에 확실히 있는 것들이 있다.
바로 생각나는 것은 '교우관계' 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 자신만 중요하니 주변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거들떠도 보지 말아라' 같은 게 아니다.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내가 오늘 해야할 자기개발 계획이 있는데 덜컥 친구가 게임하자고 전화왔다고 게임을 하러가고, 이번주에 지출을 이만큼만 써야 하는데 친구와 밥먹는다던가 놀러간다던가 하면서 무리한 지출을 하고, 하는 것들을 자제하자는 것이다.
자신만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자기개발 > 친구와 놀기', '지출 계획 > 친구와 놀기' 등으로 실행하라는 것이다. "오늘은 해야만 하는 계획이 있으니 다음주 언제 놀자." 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은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만, 친구가 돈 벌어주고 밥 먹여주지 않는다. 너가 무엇을 해야한다고 진지하게 말한다면, 그 친구도 이해할 것이다. 만약, 너의 계획과 목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친구라면 진정한 친구인지 다시한 번 생각해보자. 정말 함꼐하고 싶어서 징얼거리는 어린아이같은 친구인지, 너를 별로 존중하지 않는 친구인지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길게 말한 것은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시간으로 컨트롤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할 것이 많은데, 내 시간이 없다면 언제 그것을 하겠는가?
내일? 내일도 내일로 미루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는가? 당장 오늘의 내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익혀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돈이 친구보다 중요하다? 라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친구도 없다. 매번 돈이 없어서 얻어먹는 사람과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을까? 그저 매번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잘 저울질을 하길 권할 뿐이다.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당장은 없다.
이외의 모든 상황이 아마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뭐 살아가다 떠오르면 또 적어놓으면 되겠지 싶다.
나는 사실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이것도 그냥 일기처럼 간단하게 쓰려고 킨 것이다.
어느세 5시가 다 되가지만, 일기 쓰는 것도 생각보다 재밌다.
굿 밤이다. shi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