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21년의 마지막이라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이렇게 또 2022년을 맞이하는구나. 새벽 감성으로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2021년 한 해동안 이룬 것 없이 그냥 지나온 것 같았다. 2020년 개발자를 하겠다며 부트캠프를 다녔다. 내가 기획한 사이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프로젝트도 했다. 프로젝트를 끝낸 뒤에야 배웠던 내용을 어느정도 소화한 느낌이 들었지만 스로를 계속 의심했다. 취직을 준비하고, 면접을 보고, 몇 군데 회사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도. 내가 자질이 있을까? 너무 어려운 일을 고른게 아닐까?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들로 취직을 미뤄왔다.
/
그러다가 정말로 가고 싶은 회사가 생겼다. 영알못인 내게 모든 업무를 영어로 하는 회사는 너무 힘들걸 알지만 해보지도 않고 지나치고 싶지는 않아서 무작정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한 달이라는 인턴의 기회를 얻었다.
한 달동안 출퇴근하는 중에는 영어 강의를 듣거나 회사에서 준 책을 읽었다. 퇴근 후에도 내게 주어진 프로젝트를 위해 내달렸다. 그냥 잘하고 싶었다. 잘해내서 이 회사를 쭉 다니고 싶었다. 그 동안 해보지 않았던 것들, 몰랐던 것들을 익혀가며 낮이고 밤이고 쏟아부었고, 결과가 좋지 않을까봐 불안해서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
결과적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은 내게 최종 합격을 주지 않았다. 영어라는 언어는 내게 너무 높았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만족했다. 최선을 다했고, 기능을 구현하며 많이 배웠고, 분명히 내 스스로는 뿌듯하게 마무리를 했다. 처음에는 보상심리로 내게 일주일동안은 온전한 휴식만 주고 싶었다. 무작정 쉬다가 또 놀다가 또 뒹굴다가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낸 것 같다.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내가 과연 개발자로 나아가는 것이 맞는가 까지 고민하다 뭐라도 해야겠다싶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그러던 중 이전에 기획자로 일할 때 함께 일했던 프로그래머 분께 함께 일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면접 제안이 왔다.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개발이 내게 넘지 못할 벽 같아서, 기획과 개발 사이를 고민하고 있던 내게, 내 개발 실력으로는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좋아보이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오라니?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가뜩이나 어려워 죽겠는데 요거 참 잘 된일이 아닐까? 이게 바로 신의 계시?라며 백수 탈출을 꿈꿨다. 면접을 한번 보겠다고도 대답했었다. 면접이 붙는다면 연봉협상도 꽤 잘 될거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전화를 끝내고 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기획자였던 내가 왜 개발을 하려고 했는지가 떠올랐다. 곧바로 면접을 보지 못할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잘 끝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 아닐까 계속 고민했는데 결국엔 면접 제안을 거절했다.
/
아직도 개발은 너무 어렵다. 배우면 배울 수록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아진다. 내가 아직도 너무 얕은 곳에 있다는걸, 한참 부족하다는 걸 매번 느끼게한다. 그게 나를 너무 작고 볼품 없게 만들다가도 이건 다 배우면 저걸 배워야겠구나,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려준다. 1년동안 개발에 대해 배우면서 기획에 대한 생각도 함께 넓어졌다. 이렇게 내 시선들을 점점 더 넓혀나가고 싶다. 코드라는 글로 작동하는 기능들이 아직도 내겐 너무 신기하고, 에러때문에 으악! 어떻게해! 하다가 오타 고치고 잘 돌아가는 코드 보며 와! 역시 살기 좋은 세상! 외치는 일이 재미있다. 부트캠프에서 개발을 처음 시작했을 때랑 똑같았다. 할 게 너무 많아서,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너무 앞서나가고 있어서 내가 자꾸 뒤처지고 이 일에 대한 능력이 없다고 느낄 때. 친구가 내게 할게 많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만 집중해야겠다.
/
2022년이 된 지금의 나는 2021년과 똑같이 아직 직장이 없는 백수다. 그래도 2021년만큼 도전하고, 고통받지만 성장하는 2022년이 되기를. 스물여덟씩이나 됐지만 내가 더 자라기를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베풀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인스타그램에는 너무 두서없이 쓴 것 같은? 그리고 내가 올 한 해 동안 어떤 일을 보내왔는지 스스로 잘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고 느껴져서. 2022년이라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올 한 해만큼 또는 보다 더 잘 쓰기 위해 2021년을 글로 정리해볼까한다.
weeeating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미 완성된 사이트의 디자인과 기능을 따라했던 클론 프로젝트와 달리 내가 기획부터 배포까지 모두 하게 된 첫 프로젝트였다. 내가 시작한 프로젝트여서 자연스럽게 팀장이 됐고, 기획서나 디자인, 일정 신경쓸 것도 많았고 잘 끝내고 싶은 욕심도 컸다. 백엔드가 혼자라는 막중한 책임감? 부담감 같은 것들을 느꼈다. 특히 DB ERD 설계할 때는 이게 최선인가? 더 좋은 방법은 없는가? 혼자서 하다보니 혹시나 우물에 빠져 놓친 것이 있는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컸다. 그래도 나를 믿어주고 열심히 해준 팀원들 덕분에 함께 배포까지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로 이제 나도 현업에 가서 어떤 문제든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게됐다.
본격적으로 취준에 뛰어들었다. 노션에 이력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로켓펀치, 원티드, 사람인 등 모든 취업 관련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내가 가고 싶은 회사들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고 지원을 넣었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것보다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를 다니고 싶은 게 가장 컸다. 과거 게임 기획을 하며 게임을 출시하고 내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의 리뷰들을 보았을 때의 그 기쁨과 짜릿함.. 이 지구 상에 있는 행복한 감정은 다 얻은 기분. 그래서 고객사가 아닌 고객이 있는 B2C나 C2C 서비스를 하고 싶었다. 내 성격에 어디서든 열심히 할 거라는걸(..자랑같지만 진짜인걸) 잘 알고있지만 더 재미있게 일하고 싶었던 마음이 큰 것 같았다. 그래서 배울 것이 더 많은 회사! 내가 할 수 있는게 더 많은 회사! 할 것이 더 많은 회사! 더 다니고 싶은 회사! 더 가고 싶은 기업!을 계속 계속 찾아다녔다.
그리고 가고 싶은 회사 중에 한 곳을 찾아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됐다.
'슬리드'라는 스타트업에 한 달동안 인턴으로 출근했다. 영어로 일하는 것은 새롭지만 정말 ..고난이도...의 경험이었다. 어제보다 한 마디라도 더 해본 날의 퇴근길은 뿌듯했고, 어버버거리며 제대로 말하지 못한 날의 퇴근길은 슬펐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기억하는 대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이 한 달은 새롭고, 즐겁고, 신기하고, 뿌듯함과 동시에 불안함이 있었던 날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때문에 프로젝트를 끝낸 날에는 드디어!(ㅋㅋㅋㅋ)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뿌듯하면서도 아쉬움도 있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우연히 velog에서
구글코리아 면접 후기 포스트를 보게 됐다.
🌮 근처에서 제일 맛있는 타코집을 찾아보세요
예를들어 문제로 면접관이 근처에서 제일 맛있는 타코집을 찾아보세요라고 문제를 냈다고 하자.
이에대한 나쁜 응답과 (구글에서 가이드하는)좋은 응답은 아래와 같이 나뉜다.
나쁜 응답: 네이버지도 켜서 타코라고 검색하고 거리순으로 필터링한 후 맨위에 뜨는 집부터 보면서 별점이 높은걸 골라요.
좋은 응답: "근처"의 범위에 대해서 더 설명해주세요.
"맛"은 주관적일텐데 맛있다의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하나요?
타코집은 메뉴에 타코가 있으면 전부 타코집이라고 가정해도 되나요?
(대답을 다 듣고) 그러면 ~한 ~를 찾으면 되는거군요.
제 생각에는 ~해서 ~하면 될 거같은데 제가 놓친게 있나요?
아 그러면 A방법으로 찾는방법과 B방법으로 찾는 방법이 있어요.
A방법은 ~해서 ~한 장점이 있고 ~한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B방법은 ...
(면접관이 B방법이 좋을것 같으니 B로 구현을 시작해보라고함)
나쁜 응답과 좋은 응답을 보며 주어진 요구 사항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면서 내가 원하는 답임과 동시에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대해 접근하는 것을 보며 '내가 그 때 이런 식으로 접근했더라면, 혼자서 고민하는 것을 더 줄이고 내가 더 구체적으로 질문했더라면?' 이라는 배움을 얻었다. 이 한 달동안의 경험이 없었어도 저 글을 읽고 아,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했을 수는 있어도 이렇게까지 깊이 공감하고 깨닫지는 못했을 것 같다. 슬리드를 시작하기 전 주변에서 걱정도 있었고, 나 역시도 영어..?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 새로운 경험! 꼭 가보고 싶었던 회사! 좋아!...영어? 힘들 수는 있지만 나에게 더 좋을 수 있어! 이걸로 내가 새로운 시각을 갖게될거야!" 를 외치며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지금의 나는 진짜로 개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걸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맞는가? 그냥 시작했으니까 해야지 뭐 어쩌겠어의 마음따위는 아니고? .. 개발은 나에게 정말 좋은 도구 같다. 계획하고, 구상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을 좋아하는 내게 실행으로 옮겨줄 수 있는, 구체화시킨 기획을 실체화 시켜주는 가장 좋은 도구. 그래서 이 일에 대해 자꾸 욕심이 생긴다. 더 많이 알고싶어지고, 더 많이 배우고 싶어지고. 그리고 멋지잖아! 영어같지만 컴퓨터 언어인 파이썬 코드! 컴퓨터와 내가 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잘할 수 있는 가?에 대한건 아직 모르겠다. 적성이 잘 맞는가? 찰떡인가도 아직 이 시간들로는 부족하다. 하고 싶은 의지는 분명하다. 이걸로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네. 나는 다시 시작해야한다. 깃허브 잔디도 다시 깔아주고, 얻은 인사이트들을 정리할 곳도 마련해야한다.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이렇게 슬럼프를 지나오게 되었다.
가고 싶은 회사가 생겼다. python 대신 javascript를 배우고 있다. NodeJS를 배워서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했다. NodeJS라니... python django만 쓰던 내가 nodeJS라니! ..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를... 회원가입/로그인은 잘 만들 수 있을까 염려는 되지만 일단 해보고 있다. 기획도 틈나는 대로 짜고 있다. 이미 두 번 정도 엎었다. 사이드 프로젝트인데.. 그냥 하지 뭐, 싶다가도 자꾸 욕심이 생기고... 이용자들도 많이 만들고 싶고... 그럼 마케팅도 배워야할 것 같고.. 그럼 창업까지 욕심날 것 같... 일단 눈 앞에 놓인 NodeJs부터..!
2022년이 된 지금의 나는 2021년과 똑같이 아직 직장이 없는 백수(취준생!)다. 그래도 2021년만큼 도전하고, 고통받지만 성장하는 2022년이 되기를. 스물여덟씩이나 됐지만 내가 더 자라기를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베풀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