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정지우

윰이다·2022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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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가장 깊은 우울로 떨어뜨리는 때는 언제일까 . 그것은 내 삶에 어떠한 화려한 이미지도 없는데, 가까운 친구들의 소셜 미디어나 프로필 사진 등 온갖 화려한 이미지들로 치장되어 있는 걸 볼 때 일 것이다. 제주도, 일본, 동남아, 유럽의 풍경 그리고 이태원, 연남동, 청담동 따위의 핫한 카페 그리고 한 끼에 몇 만원 쯤 하는 음식 사진 같은 것을 볼 때 급속도로 우울한 마음이 들고, 스스로도 어서 그러한 ‘이미지’에 속하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세대의 감각에는 그러한 ‘환각적인’ 이미지에 제 때 도달해야만 안심이 된다. 그러한 이미지에서는 너무 멀어지지 않아야만 박탈감을 방어할 수 있고, 제대로 살고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타인이 속해 있는 화려한 현재의 이미지, 특히 소비 위에 눌러앉은 그 현란한 행복이야말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소외감을 선사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천천히 현실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란 온갖 문학의 반복되는 청춘의 서사이다. 하지만 그 동일성에서 말하고 싶은 증언이 있다. 우리는 유혹에 취약한 세대로 자라나,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환상을 주입 받았고, 앞으로도 결코 그러한 유혹 혹은 환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채로,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점점 적어지는 치열하고도 열악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리라는 점이다.
우리는 소비자로 자랐다. 꿈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배웠다. 모든 선택 가능한 것들이 마치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깝다고 믿었다. 우리의 꿈은 드높다. 화려한 소비에 대한 열망, 멋진 삶에 ㄷ한 이미지는 결코 우리 안에서 떠나가지 않은 채로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우리는 자기만의 삶을 찾기 위해 평생 고투할 것이다.

‘현실들이 우리를 몰아세울 것이고, 그럼에도 우리는 해안절벽 끝에서 꿈꾸는 사람처럼 저 화려함을 꿈꿀 것이다. 그리고 절벽에서 하나둘 떨어져가는 동안, 누군가는 다시 조심스레 현실을 챙기며 엉금엉금 지상으로 기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여전히 우리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한마리 불나방이 되어 날아간 곳들에서 내가 본것은 삶은 아니었다. 서로의 선의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도 아니었다.
도리어 그 모든 곳은 삶을 몰아내고, 박멸하고, 표백해 만든 어떤 ‘깨끗한’ 공간이었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깨끗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세계, 한나절의 커피 값을 지불하면 얻을 수 있는 세계였다. 사람들이 머문 곳이 아닌, 잠시 왔다 떠나는 그 무수한 소비의 거리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으면서 우리는 삶을 사는 대신 삶을 소비한다.
자본은 누군가의 삶의 공간이었더 닉존의 거리들로 쓸어내며, 그 위에서 소비의 잔치를 벌인다. 오래된 거리가 뜨는 거리가 되면 사람들은 또 하나의 깨끗한 거리가 생겼음에 즐거워 하며 찾아가 사진을 찍고 자신의 행복을 자랑한다. 분명 세상은 더 개발되고 깨끗해지고 정돈되고 ㅣㅇㅆ는데 정작 삶이 있어야 할 공간은 사라지고 있다.
되돌아보는 삶에서 종종 마주하는 기억들에서, 자주 내가 삶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무엇이 내 삶을 내 삶이게 하고 나를 나이게 하는지 이해하고 싶을 때가 있다.

늘 바라는게 있었다면 삶을 정확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을 정확하게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많은 순간들이 무엇을 보는지 모른채, 무엇을 위하는지도 모른 채 흘러간다. 나는 내가 사는 거리를, 또한 내가 살게 될 거리를 보다 정확하게 응시하며 나아가고 싶다.

삶의 정답이라는 것도 그리 어려운게 아닐 수 있다.
우리는 그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강물 같은 선의를 서로에게 보낼 수 없어서 그토록 단순한 삶을 살 수 없어서 인생에 복잡한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의 조건은 나아가 들어갈수록 많아진다. 땅바닥을 지나가는 개미 행렬이나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 한장, 슈펴마켓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하나면 행복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온갖 부가적인 결핍들이 더해진다. 내가 속한 공간이 불만스럽고, 소비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디어의 화려한 이미지들이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의 삶은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쌓아가는 과정 같지만, 실은 더 많은 결핍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 결핍의 홍수에서 누가 더 자신을 가까스로 유지하는 가 하는 경쟁이다.
정신없이 삶을 살아가다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한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얻으려 이렇게 발버둥 치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그저 지금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선의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삶에서 남는 것은 그저 사랑하는 이와 산책을 나섰다 돌아와 수박을 잘라 먹던 저녁 정도가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우리의 삶이 그런 소소한 것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서로에게 보내는 선의로 뒤엉켜 그 속에서 기억들을 쌓는, 그리하여 삶의 기억이 외고, 거리의 역사가 되는 동네가 이 땅에서 자리 잡길 바란다. 우리가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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