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룰렛 여행기 이전, 속초에서 있던 일
어느 기분 더운 초여름 고등학교 동창 '우현'이가 놀러가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재작년 속초에서 낭만 넘치는 여름을 함께 보낸 탓이었을까, 그 말에 바로 가슴이 뛰었다.
우리의 속초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겠다. 그 당시 나와 우현이는 전역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고, 민수는 아직 군인이었다. 민수의 휴가 일정에 맞춰서 우리는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 꽤나 더웠던 6월 막바지였다.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분좋카 분위기 좋은 카페라는 뜻에 가서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오후에 바다에 갔을 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하루종일 덥고, 찝찝할 정도로 습했었는데 우리는 비가 올 것을 어느정도 예상 했을지도 모르겠다.

젊음을 즐겨보자!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저 외마디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는 당황해서 어서 나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녀석은 비는 오고, 우리 우산은 없고 어짜피 젖을거 타의로 젖지 말고 자의로 젖자고 말했다.
끄덕,
나는 나와 밖에서 당황하고 있던 민수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직 6월이라 그런가 물이 꽤나 차가웠지만 덥고 습한 하루여서 그랬을까, 즐겁기만 했다. 그때 우현이가 가방에서 물안경을 꺼냈다. 이 자식, 이건 언제 챙긴거야..? 바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런데 점점 비가 심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가 강해져서였을까, 천둥 번개가 심해서였을까, 우리는 위험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다급하게 나왔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
흠뻑 젖은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재정비 하고 그 다음 일정을 생각하자는 민수의 말에 우리는 숙소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뚜벅이 여행자라서 걸어가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는 점점 더 거새지고, 우리의 체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기엔 우리가 너무 흠뻑 젖어있어서 민폐일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서 그저 숙소로 서둘러 걸어갈 뿐이었다.
젊음은 얼어죽을, 진짜 얼어죽겠네
체온이 점점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질 즈음, 나는 한 곳을 발견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목욕탕이었다. 엄청 오래되어서 사람도 없을 것 같은 곳이었다. 일단 저기라도 들어가자! 하고 우리는 홀린 듯 들어갔다. 복도에 들어서며 우리는 귀신이 나오는거 아닐지, 좀비가 나온다면 어떻게 대처할지, 이런 정신 못차린 소리나 하면서 들어섰다. 흠뻑 젖은 생쥐같은 몰골을 한 우리를 보며 주인 아주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상에서 제일 따듯한
우리는 탈의실에 들어갔다. 탈의실에서 바로 탕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곳을 보며 얼른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탕 안과 탈의실 모두 역시 아무도 없었다. 새하얀 바닥에 약간 폭신한 감각이 들었다. 주짓수 도장에 깔려있는 바닥 같았다. 아무튼 서둘러 정비를 하고 우리는 목욕탕에 들어섰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계속 좀비나 귀신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목욕탕은 탈의실에서 보는 것보다 더 좁았다. 좁은 냉탕 하나와 온탕 하나만 있었고 그 흔한 온도계나 흔히 볼 수 있는 가운데에 보글보글 하는 효과도 없는 놀랍도록 조용한 목욕탕이었다. 우리는 홀린 듯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는 탕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적막이 흘렀다.
쉬지않고 떠들던 우리였는데, 일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세상에서 제일 따듯한 어머니 자연의 온기처럼, 은혜롭고 포근한 물이 내 턱밑에서 찰랑거렸다. 몽글몽글 피어 오르는 김을 얼굴로 느끼고,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 뱃속에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추위로 긴장하고 있어 닭살을 피어내던 입모근들 부터 모든 장기들과 실핏줄들을 비롯한 내 모든 신체가 긴장을 풀어내는 것을 느꼈다.
으어어어어어어어
한 5분은 지났을 때,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다. 다행이 나뿐만은 아니었다.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좀비 어쩌구 귀신 어쩌구 시작되었다. 이 순간은 앞으로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튼 재정비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나왔다. 비는 그쳤고, 우리는 뽀송뽀송한 상태로 숙소로 돌아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저녁
게스트 하우스에서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게스트들이 각자 먹을 것을 사와서 저녁에 나눠먹는 형식이었다. 우리가 군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어서 였을까 아님 자리를 잘못 잡아서 였을까, 재미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망치듯 나와서 무작정 또 걸었다. 결국 우리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식당에 들어왔다. 또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밤새 술과 안주를 즐겼다.
불꽃놀이 하자!
민수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술에 잔뜩 취해 폭죽을 사서 한적한 방파제로 향했다. 방파제에서 우리는 폭죽 놀이를 즐겼다. 꽤나 낭만적인 밤으로 기억하는데, 남자들의 밤을 그런 식으로 기억하는 것이 유쾌하진 않지만 술에 취해서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라고 합리화 하고 있다.

다음날이 되었다.
새벽 늦게 들어와서 그런지 아직 술기운이 남은 것 같았다. 퇴실을 위해 정리를 마치고 우리는 점심을 먹고 또 분좋카다시한번 말하지만 분위기 좋은 카페 라는 뜻이다.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언제 집에 갈지 회의를 하던 중에, 어떤 녀석이 또 모두가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차마 수줍어 꺼내지 못하던 말을 꺼내었다.
또 목욕탕 가자, 이번엔 좀 좋은대로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서로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핸드폰을 들어 뒤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바로 근처에 꽤나 규모가 큰 찜질방이 있었다. 이름이 무려 "속초 해수피아"였다. 우리는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속초 해수피아에서
나는 궁극적으로 정말 해수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가자마자 해수탕의 맛을 봤다. 바다의 맛이었다. 이과생들 아니랄까봐 해수를 끌어올 때 배관의 부식을 어떻게 방지할지, 따듯한 해수탕은 어떻게 온도를 따듯하게 만들지 이런 저런 또 실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서둘러 찜질방으로 향했다.

이 맛이지
찜질방에서 찜질도 찜질이지만 배고팠던 우리는 매점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 때의 순두부 찌개 맛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정체성을 찾은 것 같다느니, 집에 가기 싫다느니 이런 말을 지껄이며 찜질방에서 오랜 시간 있었다.
그 후에
찜질방을 나온 그 길로 우리는 바로 각자 집으로 향했다. 헤어지면서 하던 말은 '또 여행가자!' 가 아니라 '또 찜질방 가자'였다.
즉, 속초에서 우리는 정체성을 찾은 것이었다. 실제로 이후에 경기도 광주에 있는 황금 스파랜드에 가기도 하고 꾸준히 찜질방을 찾고 있다. 속초 여행은 자주 이야기 할 만큼 꽤나 인상 깊고 기억에 오래 가는 여행이었다. 사실 속초는 여러번 가봤지만 이렇게 찐하게 즐겼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편한 친구들과 함께여서 였을까, 아님 속초가 즐거웠던 것일까? 언젠가 또 여행을 갈텐데, 어떤 이벤트가 펼쳐질지 너무 궁금하다.
으어어어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