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회고,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yc999·2021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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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필수 타이밍은 선택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사실 회사도 MZ세대의 신입사원이 그 정도의 충성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느꼈다. 신입사원 연수 시절,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뽕을 가장 잘 주입할 수 있는 그 시절에 평생 직장이 아닌 평생 경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교육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아 이제는 회사도 요즘 것들이 평생 한 직장에서 몸 바쳐 일할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나보네?'라고 생각했다. MZ세대에 대한 회사의 이해는 실로 적절한 것이여서 나는 최종합격 통지를 받자마자 '오 취직개꿀, 몇 년 다녀야하지?'라고 생각했다.

부서에 적응이 끝나고 종종 사원들끼리 술자리가 생겼다.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불신에 대해 토로하는 시간은 언제나 빠지지 않았다. 담당업무가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처리 방식이 너무 답답하다, 트랜디한 기술 스택을 다뤄보고 싶다, 실제 서비스로 배포까지 직접 해 보고 싶다, 보상 방식이 너무 치사하다 등의 이야기들이 나왔다. 하지만 대화의 마지막은 항상 밋밋하게 끝났다. "아, 그래도 이직할 회사가 마땅히 없네..." 그렇다 대기업을 다닌다면 무난하게 높은 수당 뿐만이 아니라,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현금성 복지와 사회적인 인지도가 따라온다. 사회적인 인지도는 보통 내가 사용하는게 아니라 부모님의 자식 자랑 카드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부모님의 평안이 나의 평안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좋은게 좋은거다.

회사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회사의 당근이 퇴사 욕구를 억누를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였기 때문에 참고 다니는 나날이 몇 년 흘렀다.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농담은 사실이였다. 능력있고 모험적인 사람이 가장 먼저 퇴사를 했다. 퇴사하고 떠나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감상은 사람마다 달랐다.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덤덤한 사람도 있었으며,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런 감상들을 고루 느끼다가 어느날 퇴사 욕구를 행동으로 옮겼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찬찬히 세어보니 입사이후 일이 바뀐 횟수가 꽤나 많았다.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면 프로젝트가 접히는 위기가 항상 있었다. 일이 바뀔 때 마다 기술 도메인이 휙휙 바뀌었다. 맨 처음에는 라즈베리파이를 만졌고, 그 다음에는 AutoML, Kubernetes, MEC, Microservice 등 깊이있게 배웠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돌이켜 보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좋은 경험들이였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고 허투루 하면 안되겠다는 마음가짐을 배웠다. 조직의 역할분담 이슈로 실제로 서비스를 운용하거나, 배포까지 나가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이제는 정말 이직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주변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하나 걸리겠지

실로 띵가띵가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직 과정이였다. 환승이직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재직중에 천천히 이력서를 가다듬고 모든 채용공고를 읽어 보면서 지원 가능한 포지션이거나, 관심이 가는 분야에 지원서를 넣었다. 재미있어 보인다면 내 기술적인 역량과 경력과는 맞지 않아도 일단 넣어봤다. 기본적인 경력기술서를 큰 틀로 가지고, 채용공고 별로 세부 내용이나 배치 순서를 바꿔가면서 내용을 조금씩 가다듬어서 지원했다. 내 이력서를 처음 읽는 사람은 엔지니어가 아니라 리크루터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나중에는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이력서가 좋겠다는 생각에 기술적인 내용도 최대한 풀어서 기술했다. 서류전형은 큰 문제가 아니였다. 문제는 내가 코딩테스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간만에 만져보는 코딩 테스트는 마냥 만만하지 않았고 코딩테스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 구직 또는 이직을 하고 싶다면 코딩 테스트는 기본기다. 시동을 거는 방법을 모른다면 운전면허 시험조차 볼 수 없는 것 처럼 기술면접보다 더 기본이 되는 것이 코딩 테스트라는 것을 느꼈다.
코딩테스트는 어느정도 반복 연습을 통해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문제는 기술면접에 있었다(인성면접은 문제가 없었다😎). 내가 쌓아온 기술 스택은 시장에서 크게 인기있는 내용이 아니였다. 그래도 점점 내 포지션을 필요로 하는 회사들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내 경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국 하나가 걸렸다.

어디로 이직했나?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다. 대기업에서 이직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 중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는 사람의 비율은 극히 적다. 솔직히 내 주변에서는 내가 첫 케이스다. 사실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고 싶다는 분명한 동기가 있던 것은 아니였지만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는, 헤드헌터에게 먼저 연락이 왔을 때 모험심이 끓어올랐고 상장에 대한 기대감이 큰 역할을 했다.

이직하면서 아쉬웠던 점

이직은 사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결심이자 이벤트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크게 영향을 주는 이벤트 치고는 심혈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이력서를 뿌렸고, 기술면접조차 보지 못하고 떨어지는 케이스가 많았다. 최종합격을 하고 연봉협상을 할 때도, 최대한 유리하게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쥔 패가 많아야 한다. 구직자가 가질 수 있는 패 중 하나는 "나 이 회사 아니여도 갈 곳 있는데?"이다. 다시말해서 두 곳 이상의 회사에 한꺼번에 붙은 뒤 협상을 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가져가는 것을 목격했다.
회사의 업무 환경에 대해서 최대한 알아보는 것도 필요했다. 이건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채용 담당자에게 물어보면 다 설명을 해 준다. 회사 설명에서 종종 누락되지만 미리 물어보면 좋은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인사담당자에게

  • 야근비 나오나요? -> 포괄임금제를 운영하는지는 알아둬야 한다.

  • 식대는 지원 되나요?

  • 매월 적립되는 장비 지원비용이 있나요? -> 맥북 뿐만이 아니라 키보드, 마우스도 소모품이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장비지원금이 나와야 편하다.

    기술면접관에게

  • 개발 항목은 어떻게 정해지나요? -> 기획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합지졸처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최종 산출물을 내다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합니다"따위의 답변이 돌아온다면 더 캐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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