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를 시작한 지 갓 1년이 지났다. 짧은 검력이지만 그동안 검도를 통해 배운 것이 많다. 단순히 검도의 동작이나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바가 <객체지향언어>라면 검도는 <과정지향운동>이라고 감히 논할 만큼 나는 검도를 통해서 과정을 중요시하는 자세를 견지하게 되었다.
검도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은 상대를 타격하는 그 자체보다 타격하기까지의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검도의 한판(득점) 기준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검도에서 한판의 기준은 꽤 까다롭다. 우선 죽도의 타격부위(선혁
과 중혁
사이)로 격자부위(머리, 손목, 허리, 목)를 정확히 타돌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기준만으로는 한판이 성립하기 어렵다. 그냥 상대보다 먼저 타격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다. 검도에는 기검체일치
라는 개념이 있다.
기는 의욕과 기력을 뜻하며 검은 검의 적절한 사용을 뜻하고, 체는 공격 동작에 요구되는 신체 각부의 근육의 힘과 죽도 쥐는 힘, 타격, 그리고 신체 이동을 뜻한다. 이와같이 기·검·체는 지극히 타이밍에 일치하고 또한 리드메칼한 공격행동이다. 이 기검체 일치야말로 검도의 기본 출발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기검체
에서 죽도로 격자부위를 타돌하는 것은 검
에 지나지 않는다. 유효격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기
와 체
도 갖추어야 한다. 즉 1. 상대를 찌를 듯한 기세
로 2. 강한 타돌
과 함께 3. 몸
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 검도에서 한판의 기준이다.
물론 심판이 기를 들어야 득점으로 인정이 된다^^;
본인은 한판이라고 생각해도 심판이 기를 들지 않으면 인정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기검체일치에서 검
은 격자부위를 정확히 타격했는지 보면 되고 체
는 타돌시 몸의 중심이 이동하는지 보면 된다. 그런데 기
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걸 무슨 수로 판단한단 말인가?
검도에서 과정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기세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와 대련하는 과정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일족일도(一足一刀)--한 발 들어가면 상대를 타돌할 수 있는 거리--에서 상대를 압박하고 자세를 무너뜨려 타돌하는 것, 이것을 만들어 친다
또는 이기고 친다고 말한다. 쳐서 이긴다
가 아닌 이기고 친다
는 명제가 검도에서는 성립한다.
글만 보면 기세의 의미가 와닿지 않을 수 있어서 시합 영상을 첨부한다.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는 검도 종주국인 일본에서 열리는 가장 권위있는 대회로 수준이 매우 높다. 영상은 제69회 결승으로 HOSHIKO 선수(백기)의 충실한 기세를 느낄 수 있다.
풀영상 --> 제69회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결승(2분 50초
와 4분 40초
)
나는 검도에서 과정을 중요시하는 이 자세가 개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믿는다. "구현만 하면 그만"이 아니라 왜 이 기술을 사용했는지, 무슨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술 블로그에서 첫 글의 주제로 검도를 다룬 것은 바로 이런 뜻을 명확히 하고 다짐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발자를 지향한다.
평생검도(平生劍道)라는 말이 있다. 검도는 나이와 상관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자 평생 수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왜일까? 일차적으로는 기본기를 배우고 다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지만 검도의 본질은 무엇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다. 어떠한 것에도 동요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은 단기간에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평생 수련하면서 추구해야 할 숙제인 것이다. 또한 <상대가 있기에 나도 성장한다>는 마음으로 시합 전후로 상대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도 검도가 무도(武道)로 불리는 이유다.
나는 검도의 이런 정신수양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런 정신이 개발 분야의 문화와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트렌드로 인해 평생 공부해야 함은 물론이고 "상대를 통해 성장한다"는 마음은 <협업>과 <코드 리뷰>에서 잘 드러난다. 이쯤되면 "평생검도"에서 검도를 빼고 "개발"을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평생검도! 평생개발!
꼭 검도나 개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나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사람들을 통해 성장했다. 가족, 친구들, 교수님, 학생 식당 아주머니, 청소 아주머니, 인강 강사님 등등 그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인생은 과정의 연속이다. 검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과정에서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의 인생도 성취 그 자체보다 그 과정에 집중하길 바란다(물론 둘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