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글또의 삶의 지또라는 채널에 참가하게 되면서이다. 나는 부캠에서 삶의 지도를 쓰며 글또를 알게 되었었고, 시작도 삶의 지도를 쓰는 일로 글또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었다. 그러니 글또를 마무리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중 하나는 삶의 지도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참가를 하였고 이렇게 또 한 번 삶의 지도를 작성해 봤다.
이번 삶의 지도는 지난번 글또 9기 참가를 위해 작성했던 삶의 지도 이후 1년 4개월 간의 시간에 집중을 해봐서 써보았다. 쓰다 보니 1년 4개월 동안 꽤나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내가 당시에는 몰랐던 수많은 것들을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러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이렇게 내 삶의 지도를 써보고 싶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경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게임이 좋아 공부보다 게임에 훨씬 많은 시간을 썼고, 부모님이 재수를 권할 때는 공부가 하기 싫다는 이유로 성적에 맞춰 대학교에 입학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택해왔다. 솔직히 내 선택에 후회가 없지는 않다. 그러니 앞으로는 나의 인생 목표는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선택을 하기이다.
내 인생의 목표는 후회를 하지 않을 선택이 아니라 후회를 줄일 선택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여러 문제에서 있어서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더 행복한 답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답을 찾아 나만의 가중치를 설정해 가며 내 인생의 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안 했었다. 정말 너무 안 했었다. 한 자릿수대 점수를 받아보기도 하고 전교에서 최하위권 등수를 받아보기도 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많이 남기는 한다. 그 당시에 그래도 공부를 적당히라도 했었으면 지금 하는 고생들이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부족한 학벌과 낮은 학점 등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부족한 영어 실력, 부족한 수학적 능력은 지금도 꾸준히 내 발목을 잡는 것 같다.
나는 학부 시절에도 여전히 공부를 안 했다. 정확히는 2학년 1학기까지 안 했다. 학점도 F만 면하기 위해 출석 일수를 계산하며 수업을 빠졌고 시험을 2일 남겨놓고 밤새 술을 마시기도 하며 지냈었다. 당시에는 그래도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자취도 하고 많이 놀면서 나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휴학하며 지난 학교생활들을 돌아보니 학창 시절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고3 막바지에 후회를 해놓고 또 반복을 하는 나를 보니 우스웠다.
2년의 휴학 기간동안 이때의 기억들을 되짚어보며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면 이번에는 잘못된 습관이라는 레거시를 걷어냄으로써 미래에 내가 할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글을 써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예전부터 책을 꾸준히 읽기도 했었고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었기 때문에 한 번쯤은 나의 글을 써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글이란 것은 그 글을 쓴 사람의 생각을 넘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자신의 창작물을 보여주는 것은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나의 결과물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글을 쓰려는 시도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도 없었고 재능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학습이 전혀 되지 않은 모델이 올바른 정답을 낼 수 없듯이 글을 쓰기 위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너무 쉽게 포기했었던 것 같다.
복학을 하고나서야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방대에 무스펙, 낮은 학점까지 가진 것도 없이 태어난 내가 할 줄 아는 것까지 없으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 아무 대책 없이 살아온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후회만 해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 레거시 코드가 문제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 할 일이 많아진다는 이유로 방치하면 그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결국은 행동을 해야한다.
그래서 그때부터라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학창 시절에 공부 습관을 잡지 못한 나였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공부 습관을 잡기 위해 몇 년 동안 즐겨왔던 게임 계정을 삭제해 버리고 나만의 공부 루틴을 정해서 하루에 최소 4시간 이상은 공부를 하기로 했다. 이때 당시에는 4시간 이상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지만 이게 어느새 단련이 되다 보니 공부 시간도 점점 늘릴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학기 중에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매일 저녁부터 밤까지 공부를 하고 방학 때는 자격증을 땄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발자에게 자격증이 큰 의미가 있나 싶지만 덕분에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 힘들었지만 나름 열심히 살았던 덕분에 이후의 부스트캠프에도 참가할 수 있었고, 부스트캠프를 참가한 덕에 글또도 참가할 수 있었고, 어쨌든 개발자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이 시기에도 최선을 다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살지는 않았던 것 같고 덕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 같아 다행이다.
나에게 있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굉장히 기억에 남는 월드컵이다. 사실 이전에도 축구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축구 경기를 챙겨보거나 특정 팀을 응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게임이라는 취미를 버리고 새로운 취미를 찾던 시기라는 점에 더해 주변 친구들이 축구를 좋아한다는 점 그리고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루카 모드리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점들은 내가 월드컵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당시 새벽에도 일어나 이런저런 경기들을 챙겨봤는데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대다수가 탈락을 예상했지만, 강호 포르투갈을 잡아내고 16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독일과 스페인을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 일본, 아프리카 최초로 4강에 진출한 모로코 등 많은 이변도 재미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2회 연속 우승을 노리는 프랑스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리오넬 메시의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해내지 못한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하나가 된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이었다.
당시 경기는 음바페의 해트트릭과 메시의 멀티골,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의 선방쇼 등이 어우러지며 연장전을 넘어 승부차기까지 갔었고 결국 아르헨티나와 메시의 승리로 끝이 났다. 메시를 보며 자라났던 선수들이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메시와 함께 조국에 36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선사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축구에 빠져들게 되었고 지금은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직관도 가고 새벽에도 일어나서 경기를 보게 되었다. 나의 인생이라는 저장소에 축구라는 브랜치가 새로 추가된 것이었다.
졸업 직전부터 부캠 초기 시절까지는 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시기였다. 살면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당시 친구와 함께 미국 여행을 다녀온 뒤 들었던 그 소식은 나도 내 주변인의 잘못도 아니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소식은 한동안 내 인생을 집어삼켰었고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집이란 곳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나는 정말 힘들었고 이 것을 어디서부터 디버깅을 해야하고,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할지 감조차 잡히지않았었다. 그저 어떤 문제가 있고 어디선가부터 무언가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지만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아니 애초에 해결은 가능한 일인가 싶은 느낌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었는데 이 일이 너무 아프게 다가와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 그때만큼 아프지는 않으니 정확히 어떤 일이었는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쁜 일이 있었다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일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 더 확고해지기도 했고 가치관이 바뀌기도 했다. 또 앞으로도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나쁜 일들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지고 버틸 만해질 거라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일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대학교를 졸업 후 바로 부스트캠프 AI Tech 5기 NLP Track에 입과 했다. 졸업 전 AI 분야에 관심이 생겨 좀 더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선발이 되었다. 나를 좀 더 다양한 데이터로 제대로 학습시킬 수 있는 기회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많은 기대를 안고 참가를 했었다.
하지만 부캠 생활은 쉽지 않았다. 공부해야 할 양도 굉장히 많고 어려운 내용들도 너무 많았었다. 거기에 당시 개인사도 있다 보니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부캠 초기에는 정말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아서 차라리 공부를 하며 안 좋은 일을 잊으려고 했었다. 매일 같이 7시까지 부캠 일정을 소화한 후 12시가 넘을 때까지 과제를 하고 알고리즘 문제를 풀고 강의를 복습했다.
부캠이 만약 팀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정말 중간에 포기를 했을 것 같다. 사실 3월이 지나고 4월에는 정말 퇴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었는데 팀원들이 있어서 계속해서 부캠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부캠 생활도 점점 익숙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져 갈때쯤 새로운 팀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더 이상 기존 팀원들과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게 아쉽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열심히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새로운 팀원들과는 함께 공모전을 준비해서 수상까지 성공을 했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았다.
돌이켜보면 부캠에서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건 팀원들과의 앙상블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각자가 가진 가중치와 편향을 서로서로가 보완해주고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힘을 합쳤고 그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부스트캠프를 수료한 후에는 사회로 나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당시 시장이 좋지않다는 말이 계속해서 나왔었다. 게다가 연초에 발생했던 일이 이때까지도 나를 종종 괴롭혀왔기 때문에 한 번씩은 취업을 위한 공부도, 준비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만 신경쓰고 연연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2024년에는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에 돌입해서 자격증도 따고, 대회에 나가서 수상도 해보며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이제서야 나라는 사람을 사회에 내놓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것이었다. 준비가 끝나고 사회로 나가더라도, 이미 서비스 중인 프로젝트들에 꾸준한 유지보수와 개선이 필요하듯이 나라는 인간 자체도 그런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다가 2024년 8월 인생 처음으로 취업에 성공을 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피해야 한다는 말이 많은 공공 SI 기업이라 고민을 좀 했었지만 나름 회사 규모가 있다는 점, 그리고 더 중요한 결국 커리어를 시작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사를 결심했다.
입사 후 나는 일산에서 처음으로 업무를 시작했었다. 교육 관련 웹페이지 SM 업무를 맡았었는데 사실 나는 입사할 때 원래 LLM 엔지니어로 입사를 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예상을 못 했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AI 사업에 투입하기 위해 나를 뽑았는데 그 사업이 엎어져서 그랬다고 한다…) 업무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보니(나는 원래 파이썬을 주 언어로 썼었는데 당시에 갑자기 자바를 쓰라고 해서 자바로 업무를 했다…) 현타도 많이 오고 커리어가 시작부터 꼬이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사람들은 모두 좋았기 때문에 나는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는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워라밸도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도 퇴근 후 개인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기는 커리어에 대한 불안함은 있었지만 나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실제 서비스에 반영해보고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동작하는 지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그렇게 업무에도 익숙해지던 무렵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배정되어있던 프로젝트가 재계약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내가 속해있던 프로젝트는 10년째 현재 근무중인 회사에서 맡아왔던 프로젝트였고 이번에도 문제 없이 재계약을 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12월에 갑자기 재계약 실패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다. 나는 출퇴근을 위해 집도 근무지 근처로 옮긴 상태였는데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원래도 커리어를 위해 이직을 생각하고 있던 상태였는데 이 일이 생긴 후로 이직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적극적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다. 만약 이후로도 이런식으로 근무지가 바뀌게 되고 그럴때마다 업무량도 바뀌게 된다면 언젠가는 이직을 준비하는 것조차도 힘든 시기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물론 이직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도 좋지 않고 내 능력도 월등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시도하다보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알고리즘 문제를 풀 때도 수많은 테스트 케이스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한다. 이직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류 전형, 코딩 테스트, 면접 등 여러가지 테스트 케이스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언제가는 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사실 12월에는 이미 내가 상당히 지쳐있던 상태였는데, 갑작스러운 근무지 변경이라는 일까지 생기니 갑자기 번아웃이 심하게 찾아왔었다. 매일 퇴근 후 읽던 논문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일주일에 2~3문제씩은 풀던 알고리즘 문제들도 풀기 싫어졌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이걸 하는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을 갈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었다.
그래서 정말 해야 할 일들만 하고 아무것도 쉬었던 것 같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것들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보고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냥 쉬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었지만 그 과정도 미래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 생각하며 편히 쉬었다.
그 기간동안에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만났을 때였는데, 그 친구가 내가 쓴 글을 보며 “너는 이 일을 좋아하는 것 같아. 이 글을 쓸 때도 재미있어했을 것 같아”라고 했었다. 이 한마디가 내가 왜 그동안 매일 퇴근 후, 주말까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을 친구를 통해 다시 기억할 수 있었고 이것이 많은 힘이 되었었다. 이런 친구의 한마디와 별생각 없이 편히 쉬면서 보냈던 시간들을 통해 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개발을 하다보면 내가 개발 과정에서 미처 놓친 무언가를 주변 사람에 의해서 깨닫게 되고 더 좋은 코드를 짤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와 비슷하게 이번 일은 내가 놓친 나라는 사람의 특성을 주변 사람에 의해서 깨닫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였던 것 같다.
부스트캠프가 끝나고 2달 후인 2023년 10월 글또 9기에 참가를 했다. 사실 당시에는 취준생이라는 압박감과 금전적인 부담감에 글쓰기 외에는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었고 그게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그리고 그런 아쉬움을 안고 지난 2024년 10월 글또 10기에 참가를 했다.
글또 10기에 참가하는 나는 더 이상 취준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9기 때보다는 훨씬 심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이런 저런 활동에도 참가를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솔직히 실수도 했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내 가벼운 언행으로 상처를 주기도 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했던 적도 있었다.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이런 실수들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알고 있다. 고맙게도 이런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며 기술적인 것을 넘어 인간적인 성장을 도와준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다. 그리고 나로 인해 좋지 않은 감정을 느꼈던 분들이 내 글을 혹시 보게된다면 이렇게 뒤늦게라도 비겁한 사과를 남기고 싶다.
글또 10기 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고 연락을 이어가 고 싶은 사람도 몇몇 생겼다. 사실 나는 글또가 끝나면 글또에서 만난 사람들 중 대부분은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남은 사람들 중 대부분도 우연한 기회에 어쩌다 마주치는 정도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매우 적은 비율이라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행운인 것 같고 나라는 소스를 많은 사람들의 피드백을 통해 디버깅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나는 사실 처음에는 온라인에서의 인연이 그렇게 기억에 남을까 싶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고 꾸준한 교류가 되니 온라인의 인연과 오프라인의 인연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인연이 된 느낌이다.
물론 글또가 끝나고 나면 연락이 뜸해지고 서로가 서로의 기억 속에 묻혀 잊혀져가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연이 이어지는 중에는 그 사람들의 머릿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고 설사 기억 속에 묻히더라도 좋았던 기억 중 하나로 묻히고 싶다.
글또 10기에는 정말 많은 것들을 했다. 큐레이션에도 선정되어 봤고, 패스 없이 글을 꾸준히 제출했고 추가 제출도 해보았다. 거기에 더해 포인트도 상당히 많이 쌓았고, 이런저런 활동에도 참가했으며 커피챗도 많이 해봤다. 글또 10기를 처음 시작할 때 목표로 했던 것들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이제 글또라는 작은 사회가 종말을 기다리고 있다. 9기부터 참가하였지만 제대로 활동한 것 10기뿐이라 사실상 활동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 기간 동안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했기 때문에 정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글또의 끝이 아쉽게 다가오는 것 같다.
하지만 글또가 끝나더라도 내 커리어는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은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글또가 끝난 후에도 꾸준히 이직 준비, 논문 스터디, 조지아텍 입학 준비 등 해야할 일들이 많다. 사실 아직 글또가 끝나지 않은 지금도 상당히 바쁘게 살고 있다. 잠도 줄이고 일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책상 앞에 앉아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지칠때도 있다. 특히 예전에 주말에 출근해서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새벽까지 스터디 준비를 하고 4시간 만에 출근을 했었을 때는 정말 이렇게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전처리 과정에 충실할 수록 성능 좋은 모델을 얻을 수 있듯이, 지금 이렇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두면 훨씬 더 좋은 미래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원망하는 것과 달리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내가 해온 수많은 선택들의 결과가 모여 지금의 내 삶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수많은 선택들이 내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은 것도, 부스트캠프에서 공부를 한것도, 글또에 참가한 것도 모두 내 선택이었고 이런 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자연어처리에서 대표적인 모델 중 RNN이라는 모델이 있다. RNN에서는 이전에 본인이 냈던 답들이 이후에 내놓을 답에 영향을 준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선택이 미래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선택을 할 당시에는 본인의 답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시도라도 해볼 것이다. 시도조차 안 한다면 후회할 것이 분명하니까.
오랜만에 삶의 지도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글 실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엉망진창인 것 같다. 스파게티 코드 마냥 앞뒤가 안 맞는 내용, 주제를 알 수 없는 글 등 좋은 글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삶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거대한 스파게티 코드로 이루어진 것 같다. 삶에서는 앞뒤가 안 맞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때문에 내 글은 지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삶이라는 것에는 가까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중에 내가 좀 더 성숙해지고 또 다른 것들을 경험해 본 뒤에는 정말 제대로 삶의 지도를 만들어 보고 싶다. 앞을 모르고 헤매던 어렸던 내가 지나온 길들이 또 다른 길을 찾아갈 나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제대로 한번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