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0 묵상

만사·2020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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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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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분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소송할 일이 있을 경우에,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 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2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겠거늘, 여러분이 아주 작은 사건 하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겠습니까?
3 우리가 천사들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한데, 하물며 이 세상 일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4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일과 관련해서 송사가 있을 경우에,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히겠습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도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여 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신도가 신도와 맞서 소송을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 한다는 말입니까?
7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8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자신이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9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10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11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고전6:1-11, 새번역)

오늘 본문의 소주제는 <성도들 간의 소송> 이다. 오늘 본문에 키워드는 소송, 재판, 심판에 관한 말씀인데, 사실 많이 조심스럽다. 이 당시 문화에 대하여도 세세하게 알지 못하고, 또 이 시대의 소송, 재판에 대하여도 잘 알지 못한다. 성급한 일반화를 불러올 수 있는 나의 묵상, 해석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어서 묵상하는 내내 ‘주님... 그래도 소송, 재판에 관한 법 보다는 성경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아오니 최대한 말씀안에서 오늘 본문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기도를 하고 묵상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을 그리스도인의 쫓아야 할 것에 대하여 성경은 어찌 말하고 있는지에 최대한 묵상하며 말씀을 묵상하기를 원한다.

1 여러분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소송할 일이 있을 경우에,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 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송할 일이 있을 경우” 라는 말을 묵상하며 문득 스친 생각은 어떤 경우일까? 보다는 어떻게 해결하려는 마음일까? 였다. 소송할 일의 경우야 엄청나게 많겠고, 정말 억울한 마음에 소송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법을 악용하여 소송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송의 결과로 “해결”되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재판에서 이긴다면 억울한 누명이 벗겨질 것이고 더 나아가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생겨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바울 사도가 호소하는 것은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 한다” 는 것이다. 여기서 불의한 자란 성도의 반대말인데 의를 거부하는 사람. 즉, 예수님의 말씀을 모르거나 지키지 않는 사람. 에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상황이 생겼을까? 두가지 정도의 이유가 떠오른다. 첫번째는 피해자가 에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아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서 소송을 맡긴 경우. 두번째는 성도들에게 소송을 맡기고 싶었으나 맡길 만한 사람이 없는 경우.

4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일과 관련해서 송사가 있을 경우에,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히겠습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도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여 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신도가 신도와 맞서 소송을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 한다는 말입니까?

두가지 경우가 다 해당되는 것을 본문을 해석하면 알 수 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언급한 송사는 “교회일”이다. 고린도전서 1장 초반에 바울 사도가 본인의 경험을 말씀하며 했던 말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를 때에 열심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 “시기와 분쟁”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고 말씀했다. 아마 고린도교회 안에서 발생한 교회일은 예수님을 잘 모르고 한 일이라 분쟁으로 번져 송사까지 가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지식적으로는 굉장히 뛰어나게 알았지만, 십자가애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가 한 마음으로 바라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7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8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자신이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9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10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7절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실패를 뜻한다고 말씀한 이유는 지식적으로”만” 뛰어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한 공동체에 대한 호소이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고전3:9, 우리말성경)

공동체는 하나님의 동역자, 밭, 건물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닦으신 기초 위에 건실하게 세워져야 할 공동체에서 소송이 일어난다는건 전혀 바르게 세워져 가는 건물이 아니다. 소송 뿐만 아니라, 9-10 절에서 말하는 것 그 이상의 것들로 인하여 건물을 잘 세워가지 못함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교회를 교회되게 세워가지 못하게 만드는 많은 이유 중 소송을 찍어서 말한 이유는 뭘까? 묵상을 해보았다. 정확한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 재판은 분명한 승자와 패자가 나온다는 점과, 누군가를 죽음에서 살려내기도, 삶에서 죽음으로 완전히 바꾸어 낼 만큼 큰 이슈라는 것이다. 살면서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가기에 정말 힘들겠지만 우리 얘수님을 바라보며 감수해내는 실력을 키우기를 원한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12:2-5)

바울 사도가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도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여 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 즉, 하나님의 나라, 건물, 밭, 동역자,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 이 말씀 하나면 그리스도인이 이 억울하고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큰 능력이 된다. 또한 창조주를 거역한 피조물, 죄인들의 거역한 일을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한다. 피조물 대 피조물도 아닌 창조주를 거역한 죄인들의 일을 참으신 주님. 바울 사도의 꾸지람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며 주님의 은혜만이 남기를 기도한다.

아무리 큰 소송이나 재판도 생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자랑을 남기지 못한다. 이기는 것이 진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진짜 이기는건 하나님의 기쁜 교회를 십가를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함께 동행하는 것 뿐이다.

11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늘 우리를 씻겨주시고 의롭다 하심을 전심으로 믿으며 견뎌내는 나와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며 묵상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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