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2 묵상

만사·2020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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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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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22 묵상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고전7:1-16)

오늘 본문 1절을 묵상하면 그 당시 그리스 문화가 고린도교회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금욕”이 유행했던 시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문제를 문제삼고 있다.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골2:23, 새번역)

이 당시 고린도교회에도 발생했던 “꾸며낸 경건과 겸손”, 나름대로 몸을 지키려는 지혜를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씀한 것이 오늘 본문에 고린도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이 말씀을 오늘 날의 나와 교회에 다른 의미로 적용하고 싶다. 오늘날 목회자부터 성도들 까지 교회애 꾸며낸 경건과 겸손이 많음을 볼 수 있다. 교회 봉사에 많은 시간을 쏟고, 금식, 성경 통독, 암송 등이 어떻게 보면 꾸며낸 경건으로 본인의 영에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욕으로 자신의 경건을 증명하고, 교회 봉사, 금식으로 자신의 경건을 증명하는건 좋으되,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7절에서 바울 사도가 말씀하는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이 말을 꼭 잘 받아야 한다. 2-6 절에 결혼에 대한 말씀이 나오고 7절에 나와 같기를 원한다는 말은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교회 봉사, 금식을 하든 하지 않든 중요한건 자기 자신의 경건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걸어 하나님의 영광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라는 말씀이다. 아마 고린도교회 나름대로의 지식과 지혜로 고안해낸 방법이겠다만(고린도전서 1장에서 부터 계속 말해 온 중요한 가치인 십자가의 도를 놓치고 있었다.) 중요한건 하나님이 값없이 내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나의 믿음을 증명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는 삶이어야 한다.

이후 말씀은, 결혼 이후의 생활에 대한 말씀인데, 중요한 가치는 혼자 살든, 함께 살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삶을 본문에서 두가지 정도로 정리를 해본다. 첫번째, 위 말씀을 묵상하기 전에 생각할 것은, 바울 사도의 말씀은 권면이지 강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 살더라도 바울 사도와 같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낼 수도 있고, 육체로 자신의 경건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정욕으로 인하여 십자가의 도를 걷는 것에 걸림돌이 된다면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결혼의 이유인 사랑에 대한 마음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았다. 이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 믿는 자의 삶이지, 혼자이냐 함께이냐의 차원이 아니다. 독신, 가정이라는 것은 예수님 믿는 자 안에 구체화된 실체일 뿐이다. 예수님 믿는 삶에 초점을 맞추길 원한다. 그 후 결혼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드러내는 영광을 삶을 살아 내야하는지 말씀한다.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지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두번째 관점은, 남편은 아내의 것이 아니고, 아내도 남편의 것이 아니라, 내 남편, 내 아내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라는 마음늘 늘 깨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여, 금욕주의도 아닌 쾌락주의도 아닌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순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15절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면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 쪽에서 헤어지려고 하면, 헤어져도 됩니다. 믿는 형제나 자매가 이런 일에 얽매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평화롭게 살게 하셨습니다. (고전7:15, 새번역)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삶에는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사람간의 감정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강권하심을 누리기를 원한다. 바울 사도가 자주 하는 문장 패턴이 있는데, 예를 들어, “피조물(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을 가르켜) 간에도 ~ 가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 하시면 어떻겠느냐?” 식의 문장패턴들 자주 사용한다. 나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나님이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죽고 못사는데 하나님안에서 하는 사랑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고린도전서 두장에 걸쳐 음행 <-> 금욕주의 에 대하여 말씀한다.두 모습이 교회에 공존하였다. 시대의 문화, 지혜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하지만 두 죄애 대한 바울 사도의 호소는 같다. “영을 지키려고 몸은 내버려두어 음행을 저지르든, 몸을 아예 사용하지 않든 나를 위한 경건과 겸손은 헛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는 십자가의 도를 걷는 자가 되어라.”
금욕이든 음행이든 어떤 평화도 줄 수 없다. 유혹이 오고 힘든 순간에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묵상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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