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3 묵상

만사·2020년 4월 24일
0

말씀 묵상

목록 보기
21/97
post-thumbnail

17 각 사람은, 주님께서 나누어주신 분수 그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처지 그대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내가 모든 교회에서 명하는 지시입니다.
18 할례를 받은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굳이 그 할례 받은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할례를 받지 아니한 처지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굳이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19 할례를 받은 것이나 안 받은 것이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처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십시오.
21 노예일 때에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이용하십시오.
22 주님 안에서 노예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주님께 속한 자유인입니다.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23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24 형제자매 여러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처지에 그대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고전7:17-24, 새번역)

어제 본문 7절 말씀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에서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한다.” 라고 말씀했고 오늘 본문 17절에서 “주님께서 나누어주신 분수 그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처지 그대로 살아가십시오.” 라고 말씀한다. 이 두 의미는 거의 같은 의미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초반부터 하나님께서 부르신 처지 즉, 주신 믿음의 분량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며 십자가의 도를 가라고 말씀하였고, 그 갈을 걸었던 사람이기에 거의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라는 말은 작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인데, 두 문장의 차이라기 보다는 7절에서의 말은 성도 -> 바울, 성도들이 바울처럼 되기를 원한다고 했고, 6절 말씀에서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명령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과 성도들이 받는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에 나와 같은 믿음의 분량을 가져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사실 7절의 의미도 텍스트 그대로 “나를 닮아라” 의 의미보다는 오늘 본문 17절에서 말하는 하나님 -> 성도,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분량 그대로 행하라는 말이다. 17절에서는 “이것이 내가 모든 교회에서 명하는 지시입니다.” 명령이라고 말씀한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분량대로 살아라! 는 것이다.

이쯤 되면, 바울의 말씀은 결혼? 독신? 의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독신이든 가정이든 모두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십자가의 도를 가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이후 다른 예시로 또 같은 말씀을 한다.

18 할례를 받은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굳이 그 할례 받은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할례를 받지 아니한 처지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굳이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19 할례를 받은 것이나 안 받은 것이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처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십시오.
21 노예일 때에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이용하십시오.

율법에 따르면, 할례는 거룩한 의식이었다. 하나님과 친해지려면 거룩해야 했다. 하지만 18절에는 할례? 무할례? 보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더더더더더더더 중요하다고 말씀한다. 19-20절 “할례를 받은 것이나 안 받은 것이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처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십시오.”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처지” 여기서 처지란 어떤 처지를 말할까? 그 이후 말씀을 좀 더 묵상한다.

21 노예일 때에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이용하십시오.
22 주님 안에서 노예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주님께 속한 자유인입니다.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23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24 형제자매 여러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처지에 그대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처지란 “지금 내가 선 자리”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아내게 하시는 환경이다. 본문에서는 노예로 부르심을 받은 처지에 관하여 말씀한다. 바울 사도는 그 처지에게 “전혀 마음 쓰지 마십시오!” 말씀한다. 그 이후 하나님의 지혜가 더 하였다. “그러나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용하라.” 이것은 눈에 보이는 실제 상황이지만, 더 중요한 가치는 22절이다. 주님 안에서의 노예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주님께 속산 자유인이다. 즉, 그리스도의 노예이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이라는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르심을 받은 그 처지 그대로 살아가되, 절대 그 상황, 환경, 사람의 노예가 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노예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라고 말씀한다.
고린도전서 초반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그리스도의 노예, 일꾼)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이 말씀이 너무나 당연하게 다가온다. 돈, 성공, 명예 등을 쫓는 사람들과는 달리 오직 십자가의 도를 갈 뿐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자체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다. 마지막으로 바울 사도가 바유로 들었던 “독신, 결혼”,”할례, 무할례”,”노예,자유인”을 이어 말씀에 빗대어 마지막으로 예시를 들고 이 말씀을 마음판에 박으려고 한다.

1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에 싸여 나타날 것입니다.
(골3:1-4, 새번역)

“땅의 것, 위에 있는 것” 나는 매일 기도할 때, “세상 부귀영화 모두 누리는 것 보다, 부패하고 연약한 내가 선 이 자리이지만 예수님 옆에 있는게 나으니 오늘도 나와 함께 해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한다. 여전히 땅의 것에 유혹과 욕심이 들끓는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도 좁은 길, 예수님 밖에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걷기에 견뎌내고 버텨내며 승리하는 나와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며 묵상을 끝냅니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