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7 묵상

만사·2020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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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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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1:1-13, 새번역]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여러분이 나를 모든 면으로 기억하며, 또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대로 전통을 지키고 있으니, 나는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3 그런데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신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4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5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를 밀어 버린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6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아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면,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7 그러나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니,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그 머리에 권위의 표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11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지 않습니다.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여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11장 2절부터 시작된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1절 말씀이 10장을 정리해주고 11장까지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울 사도가 말씀한 것을 정리하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고 하면 될 것을 왜 나를 본 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한 것일까.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큰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한 것도 바울 사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던 성도들의 이유 중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다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께서 직접 사도로 세우셨다는 사실과 그 사도됨, 그리스도의 일꾼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를 본 받으란 것은 무조건적 모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전 곳곳에서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난 이렇게 선택했습니다.”라고는 하지만 “너희도 이렇게 해야해”라고 강제적으로 말 한적은 단 한번도 없다. 하지만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라고 할 때는 타협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꼭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2절 부터 오늘 본문 말씀이 시작된다. 먼저 고린도교회에 칭찬으로 시작하는데,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대로 전통을 지키고 있으니” 이 말씀에서 말하는 전통은 쉽게 생각하는 나라의 문화나 역사, 사람의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교훈을 사도된 바울이 전하여 주었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한 이유는 3절 말씀부터도 사람의 교훈으로 권면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울 사도의 뜻이 전해진다. 원래 어려운 말을 해야할 때, 먼저 밥을 먹으라는 말이 있듯이, 칭찬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쉽지 않은 말씀을 전하려는 것은 분명하다.

3 그런데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신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4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5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를 밀어 버린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6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아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면,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7 그러나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니,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그 머리에 권위의 표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11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지 않습니다.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여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본문을 텍스트 그대로 이해하자면, 좀 납득하기 힘든 본문이겠다. 바울 사도가 괜히 칭찬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비단 그 칭찬이 기분만 좋게 해주려는 것이 아닌 사람의 교훈이 아닌 하나님의 교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본문은 남자와 여자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아니며 성별에 따른 지위나 신분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 결혼에 대한 문제를 말하며 남편이든 아내든 의무를 다 하라고 말씀했다.7장의 중요한 본질은, 결혼을 해서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 보다 배우자를 더 기쁘게 하려 한다면 그것이 본질적으로 잘못 됐다고 말씀하며,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나의 정성과 열심으로 인하여 하나님만이 기쁘고 내 옆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삶을 살아라고 말씀한다. 나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깊게 해석을 하려고 하긴 했다. 하지만 분명 그때의 문화와 지금의 문화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한구절 한구절 구체적으로 해석하며 왜 이런 말씀을 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건 7장이나 11장이나 본질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11절 부터 시작되는 말씀이 그 본질을 뒷바침하고 있다.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지 않으며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생각과 자세는 내 성별이 무엇이냐를 떠나 주님 안에서 주님이 부르신 그리스도인이라는 본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값없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주님을 따르며 정성을 드리는 나와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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