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에서 개발자로

ask·2021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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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전공자다.
나는 컴퓨터공학과는 연결고리조차 없는 경영학과와 외국어학과를 복수전공한 뼛속까지 문과였다.
그러나 모 개발 학원에서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만들며 여러 일들을 겪었고, 그 내용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내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합격했다. 그래서 입사하기 전 방치해놨던 velog에 회고록이란 걸 써보려 한다.

😒 비전공자가 어떻게 개발을 배워? 전공자도 힘들어하는 거 아니냐 그거?

🤔 전공 살려서 취업하기도 힘든데 코딩? 그거 맞냐?

비전공자인 내가 코딩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 요약이다.
수천만 원 들여서 대학 졸업했더니 무슨 바람이 들어서 코딩을 하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사무직으로 취업하는 것을 노렸지만 이 형태로 취업했을 경우, 정년 이후의 삶을 보장받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면 사무직을 정규직으로 뽑거나 공채 형태로 지원자를 받는 대기업들도 있었지만, 4차 산업혁명이 어쩌고 하는 시대에 사무직이 하는 일들 대부분은 프로그램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영업직은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서 애초에 제외 대상이었다.

  2.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취업을 노리는 것도 있었지만, 현 상태에서 국내에서도 어려운 취업이 일본으로 타겟을 바꾼다고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은 일본취업을 검색해 본 결과 맞다고 판단했다.

이런 이유와 코딩코딩하는 세상을 보고 지금이라도 개발을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처음엔 무작정 유튜브에서 개발이 뭔지 알려주고 용어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영상부터 시작해, 영어나 인도어로 뭘 만드는 법을 찍은 영상들을 봤다.
당연히 모든 영상들의 내용은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렸다.
그래서 무작정 따라 쳐보기라도 했다. 입문이 쉬운 파이썬보다 난이도 있는 자바라는 언어를 선택했고 자바 개념과 예제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며 그냥 해 봤다.
자바를 선택한 이유는 개발이 절대 쉽지는 않을테니 어려운 언어로 시도해보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 따라 쳐보기로 한 이유는 이렇게라도 해서 내가 개발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내가 짰음에도 이게 왜 작동하는지 몰랐고, 이 부분에서 이 처리가 왜 일어나는지 몰랐다. 잘 돌아가지만 결국 남이 짠 코드였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뭔가 흥미가 생겼다. System.out.println()을 보고 시스템이 뭔지와 out이 있으면 in도 있는 건가, println에서 ln은 뭘 말하는건가 싶었다. 검색해도 모르는 말들이 튀어나왔고 결국 당시에 이해하는 건 실패했지만, 내가 흥미를 느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개발 학원들을 리스트업해서 후기를 꼼꼼히 비교해봤다.
국비는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았다. 공짜가 좋은 건 아니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판단이지만, 후기들이 처참했다.
너무 좋은 내용만 있는 글은 광고글이라 생각하고 보지 않았다.
커리큘럼도 최대한 긁어모아서 공통되는 부분들을 따로 골라내 각 부분들의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비교한 다음, 처음 써보는 엑셀의 함수까지 활용해 정리했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학원 원장들의 말과 학원의 시스템들도 확인했다.
그 결과 한 학원을 골랐고, 여기서 개발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 예상대로 모든 공부는 순탄하지 않았다. if와 for, while은 토익 시험 지문에서나 보던 것들인데 왜 이렇게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쓰레드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고 코딩도 되지 않아서 오랫동안 나를 골치아프게 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 동료들은 나보다 먼저 수료하거나 하는데, 난 나아진 게 없다는 사실이 날 비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독해지기로 했다. 어차피 난 비전공자고, 덜렁대는 것도 있을 뿐더러 머리도 좋은 편이라곤 생각 안 했고, 만약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남들과 비교하는 것에 집중하길 관뒀다. 오직 내가 어제보다 나아졌냐 아니냐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만의 구글링 방법을 정립해가며 구글과 싸웠다. 자는 걸 포기한 날도 수없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난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되었고,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지원한 회사들에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요즘엔 개발자가 없다고 한다. 난 이 말을 그냥 개발자가 부족한 게 아니라 '잘 하는' 개발자가 부족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과장되지 않게 내가 했던 것은 딴에는 전문가스러워 보일 수 있게 말했다.
모르는 건 솔직하게 모른다고, 그러나 빠르게 공부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다며 자신있는 태도로 면접을 봤다.

당연히 면접 결과는 참담했다. 내 자신감은 객기에, 포트폴리오는 그저 그런 포트폴리오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난 개발 공부를 '독하게' 했다. 이 경험은 내가 면접에서 어떤 말을 들어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산이 됐다.
오히려 난 내게 안 좋은 소릴 하는 회사를 사람 보는 눈이 없는 회사라고 평가했다.
이것은 내가 개발 공부를 정말로 이제껏 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아니, 그보다 근본적으로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데 난 회사를 평가하면 안 되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가족들이 반대해도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성공할 수 있다. 너가 포기하는 순간 너는 진짜 실패한 것이다

멘탈케어용으로 봤던 어떤 유튜브 영상에서 나온 말이다. 원문과 조금 다르지만, 대충 저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말과 내 생각을 바탕으로 난 계속 면접에 도전했고, 면접 본 회사 근처의 카페에서 방금 전의 면접 대답들에 셀프 피드백하며 내 면접 답변을 보완해나갔다. 난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합격했다.
당당히 합격했다.
전화로 합격 통보를 들었을 때 난 지하철에 있었는데, 통화가 끝난 후 배에서 온 몸으로 퍼지는 희열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으로 보여도 상관없었다. 난 그 때 세상 모든 걸 가진 기분이었다. 민폐야 됐겠지만, 그렇다고 참기에는 너무도 큰 기쁨이었다.
가족에게 알리니 가족 모두 날 축하해줬고, 다른 친구들과 형누나들도 모두 축하해줬다.
그리고 나는 확인했다. 나는 틀리지 않았었다는 것을. 내가 개발을 배우기 전부터 합격 이전까지 했던 생각들이 모두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인생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혹시 내 글을 보고 개발 학원을 다니려거나, 개발을 공부할 생각이 있는 비전공자라면 이걸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내가 개발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만들었고, 합격 전까지 계속 보완하고 명심하려 노력한 체크리스트다.

  • 내 모든 시간을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가?
  •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저버려도 상관없을 만큼 개발을 진지하게 배울 생각이 있는가?
  • 다른 사람들과 날 비교하지 않고 오직 내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는가?
  • 면접에서 어떤 말을 듣더라도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 평생을 개발 관련 공부를 하며 지낼 자신이 있는가?
  • 몇 날 며칠 동안 잠을 줄여서라도 원하는 걸 이뤄낼 자신이 있는가? 이 짓의 결과는 삽질일 수도, 나중에 보면 보잘 것 없다고 생각될 만큼 하찮을 수도 있다.
  • 독학의 결과는 쓰레기일 수도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걸 좋은 경험했다고 포장할 수 있는 합리화가 가능한가?
  • 영어와 싸울 자신이 있는가? 온갖 번역기를 돌려서라도 중요해 보이는 문장을 반드시 해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는가?
  • 정말 중요한 마지막 질문이다. 개발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비전공자로서 느낀 것은, 개발 공부는 엿같이 힘든 것이라는 점이다.
난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흥미를 느낀 부분이 있어 개발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고, 결국 개발자가 되었다.

이제 2주 후부터 나는 개발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많이 힘들겠지만, 난 해낼 수 있다. 그럴 능력도 충분히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지금부터, 또는 내일부터, 다음 주부터 개발 공부를 시작할 비전공자 분들에게 심심한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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