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빚으로 지은 세상 — 부동산, 그림자금융, 그리고 2008년

배바·1일 전

디지털시대의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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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빚으로 지은 세상 — 부동산, 그림자금융, 그리고 2008년

어떤 가족의 30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외곽의 한 평범한 가족을 상상해 보자. 가장의 이름은 마이클이라 하자. 그는 1977년에 결혼해 그 후 30년 동안 그 도시에서 살아갔다.

1977년 마이클이 처음 집을 산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그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결혼하면서 작은 단독주택을 사기로 했다. 집값은 약 4만 달러였다. 마이클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약 8천 달러를 계약금으로 내고, 나머지 3만 2천 달러는 동네 은행에서 30년 만기 모기지로 빌렸다. 이자율은 약 8%였다.

이 거래에는 짚어둘 점이 있다. 그 은행은 마이클의 직장과 가족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은행장은 마이클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였다. 대출 심사도 까다로웠다. 마이클의 월급 명세서, 저축 기록, 그리고 “이 사람이 정말 책임감 있게 빚을 갚을 사람인가”에 대한 동네 평판까지 종합적으로 따져졌다. 대출이 승인된 후에도 그 은행은 30년 동안 마이클의 모기지를 자기 장부에 보유한 채 매달 원리금을 받았다. 즉 마이클의 빚은 끝까지 그 은행의 자산이었다.

이제 30년이 지난 2006년으로 가보자. 마이클의 아들 데이비드가 같은 도시에서 첫 집을 사려고 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보다 조금 더 좋은 회사에 다닌다. 집을 사려는 동네는 아버지가 살던 곳보다 한 단계 좋은 동네다. 집값은 약 25만 달러. 30년 만에 6배가 넘게 오른 셈이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계약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그가 알아본 모기지 상품에는 “최저 다운페이먼트” 옵션이 있었다. 25만 달러 거의 전액을 빚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자율은 처음 2년만 낮은 변동금리(약 4%)로 시작했다가 그 후 자동으로 상향 조정되는 구조였다. 데이비드는 “2년 후에는 집값이 더 올라 있을 테니, 그때 가서 다시 대출을 갈아타면 된다”는 모기지 브로커의 설명을 듣고 계약했다.

데이비드가 모기지에 서명한 그 종이는 그 후 매우 흥미로운 여행을 떠났다. 동네 은행 — 사실 동네 은행이라기보다 전국 모기지 회사의 지점이었다 — 은 그 모기지를 곧바로 다른 회사에 팔아넘겼다. 그 회사는 데이비드의 모기지를 다른 수백 건의 모기지와 함께 묶어 “모기지 담보 증권(MBS)”으로 만들었다. 그 증권은 다시 또 다른 회사로 팔려갔고, 그 회사는 여러 MBS를 한 번 더 묶어 “부채 담보 증권(CDO)”으로 만들었다. 그 CDO는 결국 노르웨이의 한 시청 연기금, 독일의 한 지방은행,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보험회사에 분산되어 팔렸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모기지가 그렇게 멀리까지 여행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그 사실이 2년 뒤 데이비드의 삶을, 그리고 노르웨이 시청 연기금의 운명을, 그리고 결국 전 세계 금융 시스템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이 짧은 두 세대 이야기 속에 1971년 이후 화폐사의 핵심이 들어 있다. 아버지의 시대와 아들의 시대 사이에 무엇이 바뀌었는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이 장의 주제다.

부동산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1971년 이후 신용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 신용의 가장 많은 부분이 어디로 흘러갔을까? 답은 분명하다. 부동산이다.

영국과 미국의 경제학자 오스카르 호르다, 모리츠 슐라릭, 앨런 테일러는 2016년에 “거대한 모기지화(The Great Mortgaging)”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17개 선진국의 1870년부터 2010년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900년 무렵 선진국 은행 대출 중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 정도였다. 즉 은행들은 다양한 종류의 대출을 했고, 부동산 대출은 그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 비중은 1970년대까지 약 35% 수준으로 완만하게 상승했다. 70년에 걸친 작은 변화였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로 이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를 거치며 40%, 1990년대에 50%, 그리고 2007년에는 약 60%에 이르렀다. 40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된 것이다. 즉 1970년 이후 선진국의 은행들은 점점 더 “부동산 대출 기관”이 되어갔다. 다른 종류의 대출(기업 운영자금, 무역금융 등)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부동산 대출이 채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부동산은 은행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담보다. 부동산은 사라지지 않는다(공장이나 자동차처럼 감가상각이 빠르지 않다). 가치 평가가 비교적 쉽다. 그리고 위치가 분명해서 강제 매각이 가능하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은 197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장기적 상승 추세를 보였다. 은행 입장에서 부동산 대출은 “안전하면서도 수익성 있는 사업”이었다.

가계 입장에서도 부동산은 매력적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니, 집을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한 자산 증식 방법이 되었다. 그리고 은행들이 점점 더 적극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제공하니, 가계의 차입 능력도 점점 커졌다. 1970년대까지 미국 가계 부채는 GDP의 50% 미만이었다. 그러나 2007년에는 약 100%에 이르렀다. 30년 만에 가계 부채가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영국, 호주, 캐나다, 스페인, 그리고 한국까지 — 거의 모든 선진국과 일부 신흥국에서 1970년대 이후 가계 부채와 부동산 가격이 함께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한국의 경우 이 현상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어 2020년대에 이르러 가계 부채가 GDP를 넘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자기 강화의 마법, 그리고 함정

부동산과 신용의 결합은 한 가지 특이한 동학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자기 강화적 피드백”이라고 부른다. 무슨 뜻인지 풀어 보자.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첫째,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의 “담보 가치”가 늘어난다. 같은 1억 원짜리 집이 1억 5천만 원이 되면, 은행은 더 큰 대출을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사람들은 부동산이 좋은 투자라고 느끼게 된다. “지금 사지 않으면 더 비싸진다”는 심리가 퍼진다. 더 많은 사람이 부동산을 사려 한다.

셋째, 그렇게 부동산 수요가 늘어나면 부동산 가격은 더 오른다.

넷째, 다시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가 — 담보 가치는 더 늘어나고, 대출은 더 커지며, 새로운 매수가 더 일어나고, 가격은 더 오른다.

이 순환은 마치 영구운동기관처럼 보인다. 모든 단계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가격 상승이 다시 다음 단계를 추동한다. 부동산 시장에 있는 모든 사람 — 매수자, 매도자, 은행, 정부 — 이 모두 이 흐름에서 이익을 본다. 그래서 누구도 이 순환을 멈추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자기 강화 순환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그것은 정확히 같은 메커니즘으로 거꾸로 돌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가격이 어떤 이유로든 더 이상 오르지 않거나, 약간 내려가기 시작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첫째, 담보 가치가 줄어든다. 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줄이고, 위험해 보이는 차주들에게는 대출 갱신을 거절한다.

둘째, 사람들은 부동산이 더 이상 “확실한 투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매수 심리가 식는다.

셋째, 부동산 수요가 줄어들면서 가격은 더 내려간다.

넷째, 다시 첫 번째 단계로 — 담보 가치는 더 줄어들고, 대출은 더 위축되며, 매수는 더 줄어들고, 가격은 더 내려간다.

이번에는 모든 단계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 거꾸로의 순환이 본격적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그것을 “부동산 시장 붕괴” 또는 “신용 위기”라고 부른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런 거꾸로의 순환을 한번 시작시키는 데에는 큰 충격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약간의 변화 — 금리의 소폭 인상, 일부 지역의 매수 부진, 어느 큰 차주의 부도 — 가 거대한 시스템 전체를 거꾸로 돌리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2007년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자기 강화의 흐름이 호황과 붕괴를 반복하는 패턴은 우리 시대에 처음 나타난 것이 결코 아니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1978년에 발표한 『광기, 패닉, 붕괴』라는 영향력 있는 저작에서,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광풍부터 1980년대 일본 부동산 거품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역사에 걸친 수많은 금융위기들을 비교 분석했다.

그의 결론은 인상적이다.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우연한 일탈이 아니라 그 본질적 패턴이다. 시대와 장소가 달라도, 거품의 대상이 튤립이든 철도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그 진행 패턴은 놀라울 만큼 동일하다. 호황기에 신용이 확장되며 광기가 형성되고, 그 광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작은 충격이 패닉을 촉발하며, 결국 붕괴로 귀결된다.

킨들버거의 통찰이 이 책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2008년 위기는 “특별히 잘못된 시기”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신용화폐 체제가 가진 본질적 동학의 또 한 번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동학이 1971년 이후 외부 닻이 사라지면서 한층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가 이런 패턴에 특히 취약한 환경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디지털 화폐 시대의 화폐 시스템을 설계할 때, 우리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라는 가정에서 출발할 수 없다. 오히려 “같은 패턴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그 패턴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두 번째 화폐 시스템 — 그림자의 부상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화폐 시스템에는 부동산 외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전통적 은행 시스템 “외부”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새로운 종류의 금융 활동이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경제학자는 이를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이라고 불렀다.

“그림자”라는 표현이 다소 음모론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림자금융은 비밀스러운 어둠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전통적 은행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은행과 비슷한 일을 하는 다양한 금융 기관과 도구들”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머니마켓펀드(MMF), 투자은행의 환매조건부채권(repo) 거래, 자산담보부증권(ABS), 헤지펀드 등이 모두 그림자금융에 속한다.

그림자금융이 어떻게 “은행과 비슷한 일”을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머니마켓펀드(MMF)이다. 1971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MMF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투자자는 MMF에 돈을 “투자”한다. MMF는 그 돈을 모아 만기가 짧고 안전한 채권 — 미국 단기 국채, 우량 회사의 단기 채권 등 — 에 투자한다. 그 채권에서 나오는 이자가 투자자에게 분배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펀드처럼 보인다. 그러나 MMF에는 한 가지 특별한 장치가 있다. MMF의 가치를 항상 “1주당 1달러”로 유지한다는 약속이다. 즉 투자자는 언제든 자기 돈을 1달러에 1달러로 회수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는다. 게다가 MMF는 수표 발행도 가능하게 했다. 결국 MMF는 “이자가 붙는 은행 예금 계좌”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 가계와 기업에게 매우 매력적이었다. 일반 은행 예금보다 이자가 높았고, 그러면서도 “1달러는 1달러”라는 안정성도 보장되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가계와 기업의 현금성 자금은 은행 예금에서 점점 MMF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2007년에 이르러 미국 MMF 시장 규모는 약 3.8조 달러에 달해, 미국 은행 시스템 예금의 상당 부분에 필적했다.

여기서 결정적인 사실을 짚어야 한다. MMF는 사실상 “화폐”로 기능했지만, 그것은 “공식 화폐 시스템 밖에 있는 화폐”였다. 일반 은행 예금에는 예금 보험이 있고, 위기 시 중앙은행이 직접 대출해 줄 수 있다. 그러나 MMF에는 그런 안전장치가 없었다. MMF의 “1달러는 1달러”라는 약속은 오로지 발행 회사의 신용에만 의존했다.

이쯤 되면 익숙한 패턴이 보이지 않는가?

3장에서 우리가 살펴본 19세기 미국 자유은행 시대를 떠올려 보자. 그때도 다양한 민간 발행 화폐가 “화폐”로 기능했지만,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의미의 공적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단일성 결여와 반복되는 패닉이었다.

2008년 가을, 21세기 그림자금융이 21세기 자유은행 시대의 패닉을 그대로 재현하게 된다.

2008년 9월의 어두운 일주일

2008년 9월 첫째 주, 미국 주요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브라더스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이 시장에 퍼졌다. 리먼은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투자은행이었고, 158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 금융 회사였다. 그러나 리먼은 부동산 관련 증권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었고, 그 증권들의 가치가 무너지면서 리먼 자체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었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은 리먼을 구제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했다. 그 직전에 베어스턴스라는 다른 투자은행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연준은 적극 개입해 JP모건 체이스가 베어스턴스를 인수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리먼의 경우, 재무장관 헨리 폴슨과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이번에는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연속된 구제금융에 대한 의회와 국민의 반발) 그리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위험한 행동을 한 회사를 매번 구제하면 다른 회사들도 위험한 행동을 할 것이다”).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리먼브라더스는 파산 신청을 했다. 같은 주에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AIG도 사실상 파산 상태에 처했고, 이번에는 연준이 850억 달러를 지원해 구제했다.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긴급 인수되었다. 단 한 주 사이에 미국 금융 시스템의 골격이 통째로 흔들렸다.

그러나 그 주의 가장 무서운 사건은 리먼이나 AIG가 아니었다. 그것은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Reserve Primary Fund)라는 한 머니마켓펀드에서 일어났다.

리저브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MMF 중 하나였다. 1971년에 설립되어 38년의 역사를 자랑했다. 그런데 이 펀드는 리먼브라더스가 발행한 단기 채권을 약 7억 8,500만 달러어치 보유하고 있었다. 리먼이 파산하면서 이 채권은 사실상 무가치해졌다. 펀드의 자산 가치가 약속한 “1주당 1달러”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9월 16일, 리저브는 자기 펀드의 가치를 1주당 97센트로 평가절하했다. 미국 MMF 역사상 두 번째로 일어난 “버크 브레이킹(buck breaking)” 사건이었다(첫 번째는 1994년에 작은 규모로 발생했다).

이 사건이 왜 그토록 충격적이었는가? 그것은 미국 가계와 기업에게 한 가지 사실을 갑작스럽게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MMF에 넣어둔 돈은 사실 1달러 = 1달러가 아닐 수도 있다.” 이 깨달음이 퍼지면서, 미국 전역의 MMF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단 며칠 사이에 MMF 시장에서 약 3,500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뱅크런”이었다. 19세기 자유은행 시대에 시민들이 은행 앞에 줄을 서서 정화 태환을 요구했다면, 2008년 9월 미국 시민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MMF에서 돈을 빼냈다. 그러나 본질은 같았다. 자신의 돈이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모두가 동시에 빠져나가려 했고, 그 자체가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위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2008년 9월의 그 며칠 동안, 미국 금융 시장에서는 주목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시장 참여자들은 한꺼번에 자신의 자산을 “더 안전한 형태”로 옮기기 시작했다.

위험해 보이는 회사채에서 안전해 보이는 회사채로. 회사채에서 머니마켓펀드로. 머니마켓펀드에서 은행 예금으로. 그리고 은행 예금에서 — 가장 안전한 것으로 — 미국 단기 국채와 현금으로. 이 거대한 자금 이동을 경제학자는 “안전자산으로의 도주(flight to quality)”라고 부른다.

이 도주의 행렬에는 분명한 위계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위계의 하위에서 상위로. 결국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안전한 자산”은 미국 단기 국채와 미 연준이 발행한 본원통화였다. 그것이 “가장 위”였다.

이 광경은 화폐론의 한 핵심 통찰을 현실적으로 보여주었다. 화폐 시스템에는 본질적으로 “위계”가 있다. 평상시에는 다양한 형태의 “돈”이 마치 동등한 것처럼 보인다. 은행 예금, 머니마켓펀드, 채권, 모두 다 “가치”를 표상하고 거래에 사용된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이 평면적 모습은 한순간에 입체적 위계로 바뀐다. 모든 사람이 “덜 안전한 화폐”에서 “더 안전한 화폐”로 이동하려 한다. 그 위계의 정점에는 결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있다.

미국 학자 페리 메를링은 이 통찰을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화폐의 위계는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지만, 위기가 닥치면 명확히 모습을 드러낸다.” 2008년 9월의 그 며칠이 바로 그 위계가 가장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무엇이든 하겠다” — 연준의 새로운 책임

리먼 파산 이후 미국 연준이 한 일은 미국 화폐사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먼저 연준은 정책금리를 사실상 0%까지 끌어내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준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라는 새로운 도구를 도입했다. 연준이 직접 시장에서 미국 국채와 모기지 담보 증권을 대량으로 매입함으로써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연준은 다음으로 “마지막 대부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마지막 매수자”가 되기 시작했다. 머니마켓펀드 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직접 그 시장의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장치(AMLF)을 만들었다. 자산담보부증권 시장도 마찬가지로 지원했다. 신용카드 채권,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등 거의 모든 형태의 자산담보부증권을 연준이 매입할 수 있는 장치(TALF)가 설치되었다.

연준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분명했다. 그림자금융 시스템이 너무도 커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너지면 미국 금융 시스템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연준은 처음에는 “우리는 은행만 책임진다”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그림자금융 전체에 대한 “마지막 안전장치”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이 변화의 의미는 깊다. 2008년 이전까지 중앙은행의 역할은 비교적 명확했다. 정상적인 은행들에 대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것. 그 너머의 영역 — 그림자금융, 자본시장 — 은 “민간의 책임 영역”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2008년 위기는 이 구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그림자금융이 워낙 커져서 그것의 안정성이 곧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연준은 새로운 역할을 떠맡았다. 페리 메를링은 이를 “마지막 딜러(Dealer of Last Resort)”라고 명명했다. 중앙은행이 단지 “마지막 대부자”를 넘어, 시장 자체에 들어가 자산을 매입하고 시장 전체를 떠받치는 새로운 역할을 한다는 의미였다. 19세기 영국의 월터 배젓이 “마지막 대부자” 원칙을 정립했다면, 21세기에는 새로운 원칙이 필요했다. 그것이 “마지막 딜러” 원칙이었다.

누가 그 비용을 치렀는가

2008~2009년 위기 대응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약 7천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을 시행했다. 연준의 자산은 2007년 약 9천억 달러에서 2014년 약 4.5조 달러로 다섯 배로 증가했다. 정부 채무도 큰 폭으로 늘었다.

이 모든 비용은 결국 누가 치렀는가? 어느 측면에서 보면 “정부”가, 즉 모든 납세자가 분담했다. 그러나 더 미묘한 차원에서 보면 다른 답이 있다.

위기 직후 미국에서는 한 가지 강한 인식이 퍼졌다.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되었다”는 인식이었다. 위기 직전 수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금융 회사들과 그 임원들은 천문학적 수익과 보너스를 누렸다. 그러나 위기가 터지자 그 손실은 정부 — 즉 모든 시민 — 가 나누어 졌다. 그리고 위기의 진짜 피해자는 워싱턴이나 뉴욕의 은행가들이 아니라, 클리블랜드 외곽의 마이클의 아들 데이비드 같은 사람들이었다. 데이비드의 모기지 금리는 약속대로 2년 후 자동 상향 조정되었고, 동시에 그가 살던 집의 가치는 30% 가까이 떨어졌다. 그는 결국 집을 잃었다. 그가 잃은 집의 모기지가 어떻게 노르웨이까지 여행해서 그 시점에 다시 돌아왔는지, 그는 끝내 알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99%” 운동이 일어났다. 평범한 시민의 99%가 위기의 비용을 부담했지만, 그 위기를 일으킨 1%의 금융 엘리트는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운동의 분노는 광범위했고 깊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화폐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인식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 분노는 곧 뜻밖의 결과를 낳게 된다. 2008년 가을, 위기의 한복판에서, 한 익명의 인물이 인터넷 게시판에 9면짜리 짧은 문서를 올렸다. 그 문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순수한 peer-to-peer 전자 현금 시스템은,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에게 직접 온라인 결제를 보낼 수 있게 하며, 그 결제가 금융 기관을 거치지 않게 한다.”

그 익명의 인물은 자신을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불렀다. 그가 제안한 새로운 종류의 돈은 “비트코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이 장에서 본 것을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1971년 외부 닻이 끊긴 화폐 시스템은 “신용의 폭발”로 진화했고, 그 신용의 대부분이 부동산과 결합되며 자기 강화적 순환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전통적 은행 바깥에서 그림자금융이라는 “두 번째 화폐 시스템”이 빠르게 자라났다. 이 두 흐름이 맞물려 2008년의 거대한 위기로 터졌다. 그리고 그 위기는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던 화폐의 위계를 드러냈고, 동시에 “우리 시대의 화폐 시스템 자체가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광범위한 사회적 분노를 남겼다.

위계의 노출과 사회적 분노. 이 두 가지가 맞물릴 때 사람들은 “기존 시스템과 전혀 다른 새로운 화폐”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 그것을 가능하게 할 기술 — 분산원장과 암호화 — 이 충분히 무르익어 있었다. 2008년 10월 31일, 리먼 파산 6주 뒤에 인터넷에 올라온 9면짜리 백서가 바로 그 상상의 산물이었다. 다음 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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