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학생 시절의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었다. 한창 판타지 소설에 빠져서 밥 먹고 수업 듣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책을 들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직접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의 나는 "이야기"가 가진 무언가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작가분이 전달해주는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고 그 세계만이 갖고 있는 향기와 풍경과 같은 것들 말이다. 오로지 단 하나뿐인 것.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그 약간의 차이가 큰 차이가 되어 전혀 다른 색을 띄는 그런 것.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향적이고 조용했던 성격을 갖고 있었기에 직접 글은 써봤어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줄 엄두도 내지 못했었던 기억이 난다.
직접 소설을 써볼 요량으로 공책 몇 권을 순수하게 직접 손글씨로 채웠었는데(부끄럽게도 컴퓨터를 사용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 크게 부담과 막힘이 덜한 것 같기도 하다. 단지 머리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정리하는데에 시간이 조금 걸릴뿐. 그 기질은 어디 가지 않고 남아서 나를 졸졸 따라다녔고 이후에 우연히 친구의 MP3를 통해 접한 에픽하이의 fan? fly?
, 아웃사이더의 남자답게
, MC스나이퍼의 better than yesterday
와 같은 힙합과 결합되어 래퍼를 꿈꾸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의 영향을 참 많이 받을 수 밖에 없고,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여전히 뭔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가사를 쓴다거나 시를 쓰기도 하는 날 보면서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두가 길었는데, 결과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글을 좋아한다.
글을 쓰는 것도, 글을 읽는 것도.
하지만 이것만이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올해 초에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전공은 재료공학으로, 사실 흥미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대학을 가야한다기에, 어찌저찌 편하게 하향지원으로 들어갔는데... 사실 공부를 하러 다니기보단 연극을 하러 다녔다는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물론 학점은 벼락치기로 적당히 유지했다. 신기하게도 늘 그럭저럭 썩 괜찮은 점수를 받았고 학점도 과장 조금 보태서 반올림(?)하면 4점대로 했던 행동들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기만자).😂
아마.. 교수님의 귀염둥이쯤 되지 않았을까?
하여튼, 연극을 하는 동안 정말 즐거웠다. 즐거움을 넘어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 당시엔 힘듦을 즐기는 변태(?)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해냈었으니까. 또, 그 결과가 주는 성취감이란.. 뭐라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주 대단한 것이었다. 내 인생에 아주 크게 자리잡고 있는걸보면 분명하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정말 즐겁고 행복했지만 작품을 끝내고 찾아오는 공허함, 허무함들은 그 순간들을 기억하고자 찍었던 사진, 동영상들을 봐도 쉬이 채워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심히 달려서 꿈을 이루고 나면 그 다음은?"과 같은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졸업할 시점에 근접하면서부터 계속 방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즐겁고 행복했지만 채울 수 없는 그 공허함 때문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더불어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때문에.
그러다 우연히 비전공자도 얼마든지 개발자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비전공자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열려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머지 않아 국비지원 교육과정을 등록하면서 서울에 상경하였다. 불과 2주도 안지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고 굉장히 빠르게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물론 그 이전에 방황했던 시간까지 포함하면 짧은 시간은 아니다).
개발자로서의 도전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즐겁다.(
관심분야 한정...)- 사람들에게 무언가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ex. 음악이 주는 감동, 개발자로서 제공하는 편리한 서비스)
- 컴퓨터를 좋아한다!(
게임 깨나 해봤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어릴때부터 늘 "왜?"라는 물음을 달고 살았던 나에게 이 정도면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았다. 무슨 말만하면 "왜?"라고 해대는 통에 "그냥 묻는 말에 대답해주면 안되니?"라고 혼난던적도 있었으니... 게다가 상상을 실체로 만든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국비지원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에게 좌절해 산산조각났지만)
개발자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지금, 개발자로서의 기록들을 여기에 남기려고 한다. 이미 학원은 수료한 상태이고 밤낮없이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도 마쳤기에 나름 진지한 태도로(?) 임하여 내 삶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그게 어떠한 형태이건 말이다. 이 여정을 시작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건, "회고"라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단순히 뒤풀이나 쫑파티때 종종 나오곤 하는 그동안 고생했고 힘들었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기억을 되감아 간신히 떠올리는듯한 회고(?)를 들어본 것이 전부였었는데, 글로써 회고록을 남긴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하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매일마다 하루에 어떤 일을 했는지 메모장에 간략하게나마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날의 감상은 쓰여있지 않아서 감정은 알 수 없겠지만, 나중에 펼쳐본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형식은 자유롭게, 무엇이든 간에 하고 싶은 말을 주르륵 써보려고 한다. 사실 독자가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꼭 누군가 봐주길 바라고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미래의 나"라는 독자에겐 아주 큰 유산이 될 것이라는 건 확신한다. 마치 3년 전, 5년 전에 미래의 나에게 썼던 편지처럼.
기억보단 기록을
언젠가 인상 깊게 보았던 이동욱님 블로그의 대문에 쓰여진 구절과 함께 마무리 해야겠다. 화이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