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의 지도

장보윤·2023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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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또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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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된 사진들의 저작권은 모두 저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목적지 없는 고속도로

“장래희망” 은 사람들이 빠르면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하는 주제이지만, 참으로 어려운 주제입니다. 당장 내일 먹을 점심메뉴도 정하기 힘든데 성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어린 시절의 우리는 정말 대단합니다. “의사”, “교사”, “대통령”, “가수” 등 참으로 다양한 직업들을 나열하며 막연하게나마 20년, 30년 뒤의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냅니다. 그리고 실제로 5살 때의 꿈을 그대로 이루어내는 사람들도 간혹 있으며, 막연하게 정의 내린 20년 뒤의 스스로의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방향을 틀고 구체화되며 사람들의 목적지가 됩니다.

저의 생활기록부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방향이 꽤 많이 바뀌는 장래희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화가”, 중학교 때는 “기자”, 고등학교 때는 “부검의”에서 “국과수 연구원”으로 기록되며, “국과수 연구원”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약대 편입까지 고민하며 화학과에 진학합니다. 하지만 20년은 고사하고 5년 전의 저조차 코딩을 하고 있는 현재의 저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친구들도 그렇고 부모님조차 저를 보며, “뭔가를 계속 하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공백기가 별로 없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목표를 계속 바꿔가면서 “무언가”를 계속 해 온 저의 인생“목적지 없는 고속도로” 로 정의하면서 제 삶의 지도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다들 화공 복전하는데 혼자 컴공하는 “또라이”

제가 졸업한 대학교는 1학년 때는 대계열제로 지내다가 2학년에 들어갈 때 전공을 정했습니다. 전공을 정하기 전 3.8 정도로 준수했던 저는 화학과에 전공진입을 하자마자 농부가 되어 수많은 C앗을 거두었습니다. 노력을 안 했냐고 묻는다면, 살짝 알코올이라는 친구와 친해지긴 했지만 부끄럽게도 수많은 커피를 마시며 밤을 샌 결과였습니다. 공부를 아무리 해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적성의 벽을 화학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막막해진 학점을 보며, 과연 화학을 공부해서 원래의 목표였던 국과수 연구원은 고사하고 제 평생 밥벌이를 찾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자연과학 분야인 만큼 화학과 하나만 전공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화학과 학생들은 비슷한 공대 전공인 화학공학과를 복수전공합니다. 하지만 저는 화학이라는 분야 자체에 회의감을 느꼈고, 복수전공을 할 거면 분야를 완전히 틀어버려야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눈앞에 동생의 전공이었던 “컴퓨터공학과”가 눈에 들어왔고, 모르면 동생한테 물어보겠다는 대책 없는 마인드로 컴퓨터공학과 복수 전공을 신청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컴공 복전을 시작한 계기였고, 이 당시 실제로 친구한테 “화학과에서 컴공 복전하는 또라이도 있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생각 없이 눌렀던 복수전공 신청서는 뜻밖에 인생 최고의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처음 듣기 시작한 자료구조 과목에서 C언어를 당연히 안다는 전제 하에 수업이 진행되었고, 코딩의 "코" 자도 몰랐던 저는 급하게 일주일 만에 C언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시작했음에도 화학과에서 구경조차 못한 A, B 학점들을 보았습니다. 엄청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화학과에서 느꼈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적성의 벽은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제 인생에서 주기율표를 버리고 소스코드를 남기기로 결심합니다.

이 때부터 목표가 완전히 정해졌냐고 묻는다면 애매합니다. 막연하게 분야를 통신으로 정하겠다는 생각으로 SDN (Software Defined Network) 연구실에 들어갔는데, 한창 떠오르던 AI에 꽂히신 교수님께서 저를 인공지능대학원에 집어넣으셨습니다. 대학원 노예는 감히 교수님께 반발할 수 없었고, 딱히 반발할 생각도 없었던 저는 대학원에서 네트워크 분야 지식보다 인공지능 지식을 쌓아갔습니다. 근데 또 오히려 적성에 나름 잘 맞았습니다. 연구 자체도 SDN보다는 딥러닝에 집중해서 진행했고, 커리어를 살리려다 보니 결국 돌아돌아 자연어 처리를 하는 머신러닝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네트워크에서 NLP를 하게 된 이유는...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오히려 목표를 이루지 않고 타의에 의해 돌아서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나름 요약했음에도 글이 길어질 만큼 참으로 고민도 많이 하고 뭔가를 많이 하면서 공백기 없이 살아왔습니다. 어느 정도로 공백기가 없었냐고 묻는다면 흔히 하는 휴학 한 번을 하지 않았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면 비어 있는 시기가 단 한 학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화학과에서 컴공으로, 네트워크에서 AI에서 NLP로 방향성은 계속 틀어졌고, 꾸준히 정해 왔던 목표는 저에게 무의미 그 자체였습니다. 이것이 저의 "커리어"에서의 회전구간 많은 고속도로에 대한 설명입니다.

부제 : 취미사진가

앞서 저의 삶을 “목적지 없는 고속도로”라고 정의내렸습니다. 하지만 저의 고속도로는 사실 하나가 더 있으며, 계속 설명해 온 “커리어”라는 고속도로가 좌회전 우회전을 반복할 때 의외로 “취미”라는 또 다른 고속도로는 생긴 이래로 계속 직진하고 있습니다.

보통 3학년을 "사망년"이라고 말할 만큼 저 역시 번아웃을 심하게 겪었습니다. 쉬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교환학생을 신청하고 생전 처음 가보는 유럽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유럽여행도 할 텐데 카메라 하나는 장만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미러리스 카메라도 같이 들고 갔습니다. 여기서 뜻밖에 너무 재밌는 취미를 발견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머릿속이 비워지는 기분이 좋았고, 제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찍은 결과물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 수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저의 취미는 사진으로 고정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인스타그램에 들어오면 2018년도부터 기록된 풍경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boyunj0226)

준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촬영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진 작가냐는 질문도 가끔 받지만, 아직은 사진을 "취미"로 선을 긋습니다.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간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제 삶에서 의의로 취미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보니 항상 저를 소개할 때 "취미사진가" 라는 타이틀을 붙이게 됩니다. 이것이 제 스스로를 설명할 때 커리어와 취미라는 두 개의 고속도로를 함께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목표가 뭔데?

MBTI가 유행할 때 저 역시 과몰입해서 검사를 몇 차례 했었습니다. 나름 일을 할 때 계획을 정리하고 하는 편인데, 전혀 계획적이지 않은 극단적인 P 성향이라고 나옵니다. 생각해 보니, 계획을 정리하기는 하는데 계획을 지킨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 인생 역시 정리하고 보니 그랬습니다. 목표를 정하는 족족 지켜지지 않았고,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제 스스로에 불만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만족했습니다.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25년 만에 결국 목표를 잃었습니다. 인생은 목표대로 흘러가지 않았으니까요. 목표가 있다면 이번 주말에 선물받은 치킨 쿠폰을 써야겠다는 생각 정도인 것 같아요. 목표를 정의내려봤자 항상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목표 정하기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하지만 굳이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지금처럼 바쁘게 살고 싶습니다. 정체되지 않은 채로 계속 무엇인가를 하다 보면 언젠가 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을 때 대처가 가능했으니까요. 꾸준히 커리어를 탄탄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게 목표라면 목표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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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러닝 엔지니어, 취미사진가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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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3일

제얘긴줄,,,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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