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정리하기

Chang·2023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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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사실 이 글은 완전히 개인적인 글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어떤 블로그에 작성하는게 맞는지 고민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 Chang의 블로그에 게재할 속성의 글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제가 제품을 고민하는 과정과 차를 고르는 과정도 꽤나 유사해서 그냥 날 것 그대로 저라는 사람의 사고 과정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

차 고민의 시작

자동차에 투영하는 욕망

자동차는 여러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죠. 예를 들어서, 제 아내에게는 A라는 출발 지점에서 B라는 도착 지점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때 이용하는 교통 수단입니다. 그러면서 운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 아내는 자동차보다는 자전거 같은 personal mobility를 더 선호합니다. 물론 버스, 지하철, 택시 같은 대중교통도 거리낌 없이 이용하죠. 반대로 제게 자동차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온전히 저 혼자 있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좋아하는 기계, 고객의 니즈를 잘 충족시키는 제품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욕망1. 어린 시절 갖지 못한 가장 비싼 장난감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자동차라는 것을 대학생 시절에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자동차가 기계 장비에서 전자 장비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당시 출시되던 차량들은 꽤 많은 동작을 기계 장치들로 제어하다보니 고장이 조금 더 빈번하더라도 기계를 설계하고 제어하는 공부를 하던 사람에게는 더 매력적이었죠.

당시에 가장 좋아했던 차는, BMW Z4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3였어요. 디3는 아직도 하나 가지고 싶긴하네요. :)

하지만 당시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ㅎㅎ 등록금 내고 생활비 내고 이러기 바빴죠. 그냥 한번씩 전시장 들러서 이야..하면서 구경만 하고 오는거죠. 결국 이 때의 경험과 해결되지 않은 욕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몇가지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 중에서 남아 있는 것은 20대 Chang이 사고 싶었던 차를 다시 사려고 하는 것이죠. 대신 그 때 좋아했던 차들은 이제 너무 낡았지만, 그 헤리티지를 계승한 차량 정도는 괜찮겠네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나름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차량에게 눈길이 갔죠.

욕망2. 가족의 이동 수단

사실 제가 차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4년 정도 잘 타고 다니는 차가 있고, 여전히 잘 타고 다니고 있어요. 2019년에 급히 산 차량인데, 의외로 큰 만족감을 주면서 4년 정도 탔어요.

저는 해치백 차량을 좋아하는데, 스포츠백 형식이더라도 해치백에 가깝고요. 초기형 전기차다보니 가격이 엄청 싸진 않아도 연료비를 감안하면 합리적인 가격이었어요. 제가 지금 65,000km 정도를 4년간 탔고, 제 차와 연비 12km 정도 되는 차량과의 1km당 비용 차이가 대충 120원 정도되니, 780만원 정도는 세이브를 했네요. 서울-분당 출퇴근을 하기에 적절한 승차감과 유지비, 작은 차체 덕분에 복잡한 서울 골목길도 잘 다닐 수 있었고요. 물론 캠핑 생활에는 불편함이 컸죠. :)

차의 노후화, 아내와 저의 나이 듦, 우리 가족의 생활 변화 등을 거치면서 과거에는 100점 만점에 91점 정도로 느끼던 차량의 문제 해결력이 78~83점 정도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차량의 필요가 점점 생겼죠.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고요.

첫째, 200km 이상의 장거리 운전 피로도가 지금의 절반 수준을 만드는 승차감이 필요합니다. 지금 차량으로는 체력적으로 200km 수준의 운전이 최대 한계더라고요. 아내는 저보다 더 힘들어하고요. 세종으로 이사오면서 지방으로 종종 놀러다니는데...그런 것을 고려하면 승차감이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졌어요. 그리고 강아지가 생기면서 2열 승차감이나 공간감이 은근하게 중요해졌어요. 아내랑 강아지가 2열을 이용하거든요. 아기가 생기면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2열 승차감이 더 중요해졌어요.

둘째, 평균 정도 수준의 캠핑 짐을 수납할 수 있는 적재 용량이 필요합니다. 저는 캠핑을 좋아하고, 특히 가을에 숲 속에서 하는 캠핑을 좋아합니다. 짐이 엄청 많지는 않아도, 적지도 않아요. 승용 캠퍼로도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 같은데..2열이 봉쇄됨을 감안한다면 트렁크 공간의 적재 용량이 제법 커야 하긴 합니다.

셋째, 무시 당하지 않을 수준의 뽀대가 필요합니다. 이건 저보다는 아내의 경험에 기인한 것인데요. 저는 선팅도 엄청 옅게 하고 다니고, 180cm에 110kg의 거구다보니 제게 위협 운전을 하거나 욕을 하는 분들을 거의 보지 못 했어요. 욕을 하려고 가보니 거구의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있으니 좀 그렇겠죠. 반대로 아내는 결혼 전에 준중형 세단을 타고 다녔는데 험한 상황을 겪었나봐요. 이게 차량만으로 해결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차량 자체가 어느 정도의 위엄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정리했어요.

잘 만든 제품으로서의 자동차

이건 약간 직업병 같은 것이긴한데 저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충족시키는 제품을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제가 고객일 때, 더 그러합니다. 굉장히 니치한 니즈를 제대로 해결하는 제품이거나, 아니면 본인이 타깃하고 있는 세그먼트에서 1등을 하는 그런 자동차를 굉장히 애정합니다. 물론 제가 만들거나 사용하는 제품군이 명품 레벨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프리미엄급의 자동차까지만 바라보긴 합니다. 차량 브랜드로 치면 BMW 정도가 베스트가 아닐까 싶고, 차량 중에서는 포르쉐 911 정도가 제일 돈을 많이 쓰는 정도일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갖고 싶은 제품으로서의 자동차는 BMW X5입니다.

차 고민의 정점: 뭘 구매 할거야?

일단 한 대를 골라봤는데..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심플했어요. 볼보 V90 크로스컨트리입니다.

이번에는 얼마나 더 마이너한 차량을 살거냐는 와이프의 얘기가 있었어요. 참고로 제가 지금 타고 다니는 차량도 판매량 부진으로 단종되었는데요..V90도 한국에는 연간 200~300대 정도 팔리니까 엄청 적게 팔리죠. 제네시스 중에서 제일 안 팔리는 모델이 G70인데...이게 한 달에 300대는 넘게 팔아요.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그랜저가 매달 8,000대 정도 팝니다. 엄청 마이너한 셈이죠.

스테이션 웨건을 계속해서 만들고 팔고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 그 웨건이 단순한 웨건이 아니라 크로스컨트리라서 다양한 니즈를 동시에 충족하고 있고, 안전이야 말할 필요 없고, 장거리에 적합한 승차감 등등 해서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니치한 니즈를 잘 해결한다는 점에서도 좋았고요.

그래서 시승도 2번이나 해보고, 새차도 상담 받고, 중고차도 이리저리 열심히 알아봤어요. 중고 매물 확인도 4번 정도 했고요. 아내도 직접 시승을 해봤고요. 2열에 타보기도, 운전을 직접 해보기도 했죠.

이 차로 사기로 결정하고 났더니, 그 다음은 새차냐 중고차냐였어요. 지금 타는 차는 그냥 바로 새거로 샀고, 어지간해서는 비싼 물건은 새걸로 사는 편이라서 뭐가 맞는지 고민했는데..지불해야 하는 비용 차이가 너무 컸어요. 새차는 세금 포함하면 대략 8,350만원이고..그냥 보증 종료 전인 괜찮은 중고차는 세금 포함해도 비싸면 7,000만원이고 더 저렴한 매물은 5,800만원 정도면 되더라고요. (이 돈이라도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문제는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잘 안 뜬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접근할 매물은 21년식 정도인데..2021년 한 해동안 이 차가 전국에 200대도 안 팔렸거든요...매물 자체가 가뭄에 콩 나듯이 나는거죠. 제가 차를 고민하고 탐색한게 거의 1년 가까이 되어가다보니...제 생활 자체가 조금씩 차 때문에 메말라가는 느낌도 있어서 이 고통을 빨리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일단 여기에서도 3가지 문제를 겪고 있는거죠. 1) 괜찮은 중고 매물 자체가 너무 드물어서 이 구매 여정을 즐기지 못하고 고통스럽다면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2) 새차는 그 비용이 너무 올라가고 새 차도 빨리 받을 수는 없죠. 3) 무엇보다 내가 해결하려는 나의 욕망 대비 지불하는 비용은 적정한가의 문제도 있습니다.

대안이 되는 차량들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다른 대안들을 또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5,000에서 6,000 사이의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면 대안이 될 수 있는 차량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승차감과 가성비를 따진다면 그랜저

이렇게 가면, 그랜저만큼 좋은 차량이 없습니다. 찐으로요. 중고로 사서 중고로 되판다고 하면 이만한 가성비가 없고요. 새 차를 사서 되판다고 하더라도 이만한 가성비가 없습니다. 국산차 중에서 가장 감가가 적어요. 승차감이나, 운영하면서 들어가는 각종 비용 등등도 감당 가능하고요. 현대차가 대중차 메이커로서는 퀄리티도 좋아져서, 폭스바겐이나 토요타 같인 해외 메이커를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다른 국산 차량 메이커 중에는 고민할 대안이 그나마 K8 아니면 제네시스 G80인데..K8을 할바엔 그랜저가 확실히 낫고...G80은 또 비용이 한단계 더 커져서 가성비 접근이 안 되긴 하더라고요. 그랜저는 신형 그랜저부터는 나름의 헤리티지 계승도 되고 있고요.

캠핑도 적당히, 승차감도 적당히, GV70 중고

볼보 계약을 고민하기 전에, 찐으로 계약을 넣었던 차가 있는데요. 제네시스 GV70입니다. 옵션을 많이 넣는 성향상 옵션을 꽤 집어넣었더니 차 가격이 세금 포함하면 대충 6000을 너끈히 넘는 상황이었어요. 이 차를 산다고 해도 그렇게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생각이 들어서 계약을 취소했습니다. 당시에 차량 출고까지 6개월 정도 대기해야 한 것도 있고요. 지금은 1.5개월 정도로 많이 줄었네요. :)

이 차를 계약했을 때에는 분당에 살았는데, 근처 제네시스 수지 전시장에서 시승도 두 번이나 했습니다. 2.5T 엔진으로 한 번, 그리고 3.5T 엔진으로 한 번 그렇게요. 타보니까 확실히 3.5T 엔진에 모든 배치를 최적화 시켜놨다는 생각은 들었는데요. 중고 가격은 2.5나 3.5나 비슷한 느낌이라 그냥 3.5T를 중고로 살까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왕 사는 것 시뻘건 색을 한 번 타볼까 싶어요.

이 차량의 비용도 예산 안으로는 들어오니까요. 옵션을 풍성하게 넣고, 메인터넌스 고민도 적고, 마지막 내연기관차가 될 수도 있으니 탄소 중립이고 나발이고를 외치면서 고배기량 뿜뿜 할 수도 있죠. 이 세그먼트에서 이만한 성능과 만족감을 주면서, 이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는 차는 거의 없어요. 해봤자 BMW X3 정도일텐데, 저는 3시리즈와 X5는 좋아해도 X3는 별로여서 패스를 이미 해버렸죠.

그 외에도..

캠핑을 많이 할 것이라면 현대의 플래그십 SUV인 펠리세이드의 가성비 트림 르블랑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 예산은 적은 금액이 절대 아닌거죠. 반대로 캠핑을 적게 하고, 볼보를 굳이 타보고 싶다면 볼보의 S90도 후보에 들어갈 수 있고요.(볼보 XC60은 여러모로 좀 애매해서 걸렀어요.)

결국 중요한 것

결국 자동차는 제가 어떻게 1~2년 정도를 살아볼 것인지를 잘 정해야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니즈라는 것은 생활에서 나오고, 그렇기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가장 근원적인 문제 접근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자동차를 아주 실용적인 니즈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생활로부터 시작되는 필요, 욕망으로부터 발현되는 추가 지불, 내 욕망을 해결하는 것에 얼마만큼의 비용을 태워볼 것인지를 정리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지난 1년의 시간을 통해서 깨닫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런 과정을 스트레스로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같이 고민할 수 있었어요. 요즘은 차에 이런 긴 시간을 쓴다는 것이 즐겁기도 하면서 스트레스이기도 해서요.

여러 생각을 정리해보니 이런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1) 타임박싱: 차량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비싸지고, 이 고민이 길어지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지금 욕망에 지불하기로 한 비용을 결정했다면,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는게 비용 관점에서는 이득이다. 그러니까 결정 기한을 정하고, 그 기한 내로는 마무리를 짓자.
2) 욕망 비용: 필요에 의한 차량은 그랜저나 펠리세이드면 충분하다고 결론이 나왔어요. 그렇다면 내가 내 욕망에 돈을 더 태워볼 것인가가 관건이고, 태운다면 얼마까지 더 태울 것인지가 관건이죠.
3) 대안 정리: 결국 욕망 비용에 얼마를 태울지, 그리고 타임 박싱을 얼마나 할지를 정하더라도 결국은 가장 원하는 것이 안 이뤄질 수도 있을텐데요. 그 경우 어떻게 의사결정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야겠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대충 정리가 되더라고요. :) 결국은 욕망과 예산, 시간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하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들여다볼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나중에 차량을 구매하면 한 번 더 글을 적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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