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시기가 얼추 마무리된 시점에 처음으로 년단위 회고를 해본다.
졸업증에 찍힌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정글을 했는데, 사실 가기 전에도, 가서도 이게 맞는건가? 부트캠프 재수강한다고 뭐가 되나? 싶은 확신이 없는 상태였지만 끝나고 보니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바랐던 대로 컴공 기본기가 탄탄해졌다. 이전에는 공부해봤자 <면접에 자주 나오는 질문 리스트>이런거 검색해서 대충 수박 겉핥기로 외우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금방 까먹고 꼬리질문은 답변 못하기 일쑤였다. 정글에 안가고 혼자 공부했으면 그 정도 깊이로 운영체제와 자료구조를 파지는 못했을 거다. 어지간히 미친 사람 아니고서야 누가 혼자 운영체제를 만들어보나ㅋㅋㅋ
물론 정글 하면서가 최전성기였고 이제 조금씩 다시 까먹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충 키워드 정도는 기억나고 좀만 찾아보면 바로 이해되는 정도는 된다. 그리고 예상 가는 꼬리질문의 깊이가 차원이 다르다. 운영체제뿐만 아니라 자료구조나 코딩테스트도, 웬만한건 제대로 정리해서 머릿속에 넣어놨기 때문에 조금만 복기하면 금방 되살아난다. 최고의 수확!
두번째로는, 정글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몰입의 경험을 진짜 했고, 그 정도의 몰입을 다른곳에서 경험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특히 나처럼 혼자 있으면 무한대로 늘어지는 타입에게는 기숙 생활이라는게 찰떡이었다! 항상 다른 사람 눈치보여야 공부가 잘 돼서 카페가서 공부하는 나에게, 모두의 눈치가 보이는 고등학교같은 생활공간은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다. 거기다 침대를 벗어나는게 인생의 최대 고비인 사람인데 침대와 분리되어 샤워실까지 있는 환경!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오 ~ 오전 4시의 미친 16시간 사이클을 돌릴 줄은 나도 몰랐다ㅎㅎ 딱히 힘들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재밌고 행복했다.
이렇게 근심걱정 없을 수 있었던 것은 운영진의 딴 생각 말고 우리만 믿고 따라와라 도 꽤나 크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우울감을 주는 가장 큰 원인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스스로 결정해야하는 수많은 선택지인데, 내가 선택할건 하나도 없고 그냥 머리 비우고 공부만 하면 된다니! 이것이야 말로 온전히 공부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믿고 따라가서 해결된 건 없지만, 그 때 고민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기 때문에 효율적인 방법론이었다고 생각한다.
7월에 정글을 졸업하고 8월에 본가로 올라와서 본격적인 취준을 시작했다.
나름 정글 협력사 채용에서 선방쳤고, 크래프톤과 보이저엑스는 최종 면접까지, 채널톡은 유일하게 혼자 과제 전형까지 진행했지만 결국 떨어졌다. 사실 기대를 안했다고 하긴 힘들다. 정글에서 모집하면서 꼬드기는 "수료생 협력사 취업률 90%"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혹시 나는? 취준 없이 한방에 가는 운 좋은 상황? 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어림도 없지.
협력사 탈락 후 본격적인 공채 지원을 시작했다. 이전에 썼던 자소서에 정글에서 만들어온 에피까지 붙이니 이제 자소서는 항목에 맞는 에피 고르고 글자수만 맞추면 되는 30분 컷 단순노동이 되었다. 작은 기업이나 수시채용은 공채 모두 떨어지고 해봐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대기업 공채 위주로 넣었고 현재까지 50개 정도 넣었다. 한창 바쁠 때는 코테랑 과제테스트가 엄청나게 겹쳐서 하루에 시험을 4개 친 적도 있었다. 다들 알아서 눈치싸움 좀 해주면 안되겠니.. 과제테스트 할 때마다 느끼는건데 과제테스트를 통과할 실력은 전혀 안되는 것 같다. 시간 날 때 과제테스트 문제를 더 풀든 강의를 듣든 해야겠다.
역시나 예전에 비해 서류는 훨씬 수월하게 통과했고, 코테도 카카오급의 난이도가 아니면 하루이틀 복기하는 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게 더 문제였다. 서류도 통과 코테도 통과하니 면접을 몇 번 봤는데, 면접까지 보고 떨어지니 더 상실감이 컸다. 항상 기대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기대가 안될 수는 없었고 주변에서 하나둘씩 취뽀 소식이 들려오니 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정글 동기들 중 가장 오래 취준하고 있는 사람인데 아직도 나만 안붙었다. 분명히 이력서 멘토링도 좋대고, 면접 멘토링은 최고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맨날 떨어진다. 좀만 더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면 좋은 곳 될거라는데, 2년을 했는데 여기서 더? 언제까지? 윤석열마냥 9년을 하라는 거야? 내가 생각했던 취준 기간 마지노선이 2년이었기 때문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탈락 소식 들을때마다 조급해졌고, 절망적이었다.
정글 하면서 내가 작년 하반기에 왜그렇게 우울해했지? 이렇게 빡세게 살아도 행복한데! 라고 생각했던건 기억의 미화때문이었다. 취준생은 우울한게 맞다. 살면서 거절당하고 실패한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없는데, 수십번씩 거절당한다. 좋은 말로 돌려서 님이 잘못한게 아니라 우리랑 안맞는거예요, 라는 메일을 보내지만 어찌됐던 나의 부족이다. 변명거리가 없다. 대학 입시 때 운 좋게 수시로 생각보다 좋은 대학을 갔던 것이 더 큰 부작용으로 다가온 것 같다. 그때도 별거 안했는데 그냥 되던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정통으로 깨부숴졌다. 이래서 운 좋은 성공은 오히려 미래의 성취에 방해된다고 하는거구나. 이쯤 되면 나의 부족을 인정하고 눈을 낮춰야하는데 그것도 안된다. 이미 성공한 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성공만 해온 내가? 꼴랑 거기에?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
그래도 티가 꽤나 났는지, 최근에 유행한 정신병원 드라마의 영향인지 부모님이 오히려 날 달래줬다. 덕분에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난 찐 취준은 1년차인걸? 졸업도 올해 2월에 했고, 제대로 된 취준도 작년 하반기와 올해 하반기밖에 안했으니 진짜 1년밖에 안됐는걸? 거기다 난 재수도 휴학도 안하고 스트레이트로 졸업한 스물다섯인걸? 취준 시장에서 가장 어린 편에 속해! 라는 행복회로를 조금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불과 한달 전에 "여대생은 무조건 거른다"는 뉴스(ㅋㅋ... 이게 정녕 21세기가 맞는가? 이래놓고 이미 충분히 성평등하다고?)가 나오면서 그래.. 내 탓만 있는건 아니야 면접관 운빨인걸 이라는 생각히 오히려 자기혐오를 감속해줬다.
결과적으로는 1년 더 해보자! 그래도 안되면 ㅈ소든 낙하산이든 들어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굳어졌다. 물론 지금 현대오토에버 최종 결과 기다리면서 피말리는 중이긴 하지만..ㅋㅋ 전혀 기대도 안했던 기업인데 서류-코테-1차-2차 면접까지 보고 나니 기대를 안할 수가 없다. 마음에 안 드는 직무여도 일단 붙고 다니면서 고민하면 되니까. 근데 일주일째 결과가 안나오고 있어서 진짜 피말린다. 내일은 나오겠지?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일기처럼 정리하고 나니 마음은 후련하다. 원래 하반기에 지원했던 기업들 정리해서 작성하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져서 딱히 적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시간 되면 나중에 추가하던가?
그리고 적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 지원하진 않았구나 싶었다. 물론 서류 열어보지도 않아서 아예 리스트에 올라가지도 않는 기업들도 있긴 하지만. 내년 상반기 공채시즌 전까지 수시 50개 채워서 하반기 100개 달성하는걸 목표로 삼으며, 2023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