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 3. 경험들

PlanB·2022년 11월 9일
61
post-thumbnail

경험들

눈에 띄는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호기심이 생기는 이력서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실패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 정말 맞습니다. 성공 여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활동에서 얻어낸 lessons learned(교훈)도 중요합니다.

침체기를 이겨내 본 경험

저는 커리어 초반에 동기부여가 가득 되어 있었습니다. 업무 처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매번 느끼고, 성장한다는 것이 체감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드는 작성한 지 2~3주만 되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문제를 감지하는 능력이 측정 가능할 정도로 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업무가 익숙해지며 침체기가 왔습니다. ‘내가 요령으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때부터는 작은 것에 성취감을 느끼지 못 했습니다. 그렇다고 ‘큰 일’을 맡아서 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동시에 회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활동하는 boundary가 줄어드니 혼란스러웠습니다. 도메인을 나눠 집중하라는 의미였지만, 역할과 책임이 줄어들어 별로 중요한 인원이 아니게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능력이 아닌 운으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고, 보이는 것만큼 유능하지 않으며, 이것을 누군가 간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자신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설정하다 실패해 자존감이 내려가곤 했습니다.

2년차 슬럼프, 가면 증후군같은 말이 있습니다. 극복하기 쉽다면 슬럼프라는 말이 없겠지만, 슬럼프를 극복해본 데이터를 통해 침체기를 조금씩 더 짧게 겪어보려는 사람이 좋습니다. ‘나 슬럼프야. 힘 빠져있는 게 당연한 거야’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과 크게 비교됩니다.

-

원래는 불편한 환경에 놓여보고자 이직을 해볼까도 싶었지만, 내가 바뀌지 않으면 어차피 반복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Motivation을 회사에서 주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기부여가 많이 되는 비즈니스도 있긴 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데일리샷을 만든다거나, 미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캐치테이블을 만드는 등 덕업일치가 되면 당연히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침체기를 조금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사례집에 불과하기 때문에, Asana의 가면 증후군을 자신감으로 바꾸기, Lemonbase의 Developer Imposter Syndrome과 같은 글이 더 도움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인지를 시도했습니다. 원래 성장이라는 것은 정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번아웃이라고 느껴질 때는 꾸역꾸역 코딩을 할 게 아니라, 차라리 취미 활동에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가면 증후군을 겪고 있다는 것을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비슷한 상태에 놓여 있는 동료들을 찾고,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둘째로는 학습을 했습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정말 무엇인지 정리하고, 그들 중에 진짜 중요한 것을 찾아 학습하고자 했습니다. 정리해 보니 Spring, 디자인 패턴, 시스템 디자인과 같은 하드스킬에 대한 지식이 얕아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제 성격에 맞는 공부법대로 차근차근 학습해가고 있습니다.

셋째로는 위임을 받아 몰입 채널에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높아진 업무 처리 능력에 비해 일의 난이도는 그렇게 높아지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문제 상황에 대해서만 전달받고 해결 방법을 직접 제시한다거나, 아예 문제 정의부터 자체적으로 해 보고자 했습니다. 일의 패턴이 달라지고, 쉽게 되는 일이 없어져서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 쉬우면 능력을 제한하거나 결과물의 수준을 높게 잡고, 어려우면 지원을 요청하는 식으로 몰입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 보면 어떨까 하며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은 겪어본 사람만 아는 것 같습니다.

넷째로는 그동안의 성공을 되돌아봤습니다. 불안함은 생각에서 오는데, 정말로 내가 불안해할 게 맞는지 증거를 찾고자 했습니다. 온갖 어려운 일들을 해결한 기록, 그리고 거기에 내 능력이 발휘된 부분을 찾아보는 일을 거쳤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자존감을 채워주는 앨범이 하나 있습니다. 글이 바이럴을 탔거나,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제가 언급됐거나, 집필이나 강의 제안, 감사인사가 담긴 댓글과 이메일 등을 캡처해 모아두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외부 활동을 통해 동기부여를 주입받고자 했습니다. 스스로의 위치를 최대한 수치적으로 파악하는 일을 거쳤습니다. 동종업계의 사람(저의 경우 마케터)을 만나게 되면 내가 개발자로서 그들에게 정말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커피챗이나 오피스 투어를 요청하고,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초면인 사람들과 친해지며 프로젝트를 하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

물론 계속해서 이겨내고 성장하는 것도 적지 않게 피곤합니다. 편하게 일하길 원하며 일부러 정체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가치관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인기 있는 글을 써본 경험

제가 글을 좋아하니 동질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이 꽤 들어가는 일이라, 몰입하지 않으면 완성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이번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시리즈를 쓰며 측정해 봤는데, 한 달동안 90시간 정도가 들어갔습니다.

일을 벌여놓고 완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투자하는 것만도 높게 평가할 만 합니다. 그런데 심지어 인기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인기가 순전 운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도 필요하고, 글이 술술 읽히게 만드는 흡입력도 필요합니다. 비슷한 주제로 작성된 그동안의 수많은 글보다 우수해야 합니다. 심지어 블로그 플랫폼이나 썸네일을 고르고, 업로드 날짜와 시각을 정하는 것, 과거의 글에서 얻어 둔 신뢰까지도 인기를 좌우합니다.

단순히 동질감 때문은 아닌 것이, 글과 친한 사람은 최소한의 지면으로 최대한의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비교적 깔끔한 메시지를 작성하고(캡처에 화살표 모양을 그리는 노력까지 하면서), 문서화도 가독성이나 미학적인 관점에서 많이 신경쓰는 편입니다. 비대면 업무가 늘어나며 구두보다 텍스트로 대화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글과 친한 사람들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요즘인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를 이끌어본 경험

모두 아시겠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학교 팀 프로젝트의 괴담이 수없이 오르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Individual contributor와 리더의 입장은 꽤나 다릅니다. 사람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의사결정을 맡아 누군가의 의견을 reject하는 것은 리더가 아니고서는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경우에 따라 일정도 관리하고,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포장해서 모두에게 유의미한 경험이자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책임을 져본 경험,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을 맡아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좋습니다. 당연히 강한 책임감을 갖추고 있기도 하겠지만, 매니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지를 빠르게 캐치한다는 점이 큰 역량이라고 봅니다. 선진 교육에서 leadership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 경험

개발자들끼리만 일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또한 개발자 사이에도 하고 있는 일에 따라 지식의 종류와 수준이 다릅니다. 웹 개발자와 게임 개발자 간의 지식과 관심사는 아예 종류가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설명하다 보면 ‘아 이것도 설명해줘야 하는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교육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지식 수준을 헤아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 지를 빠르게 판단합니다.

기획자나 디자이너를 빠르게 이해, 납득시키는 개발자가 있습니다. 본인이 알고 있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주는 능력이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문자열과 숫자 타입을 비교하며 ‘일이삼사와 천이백삼십사의 차이’라고 이야기한다거나, 0과 null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두루마리 휴지 짤을 동원한다거나 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동료를 성장시키는 데에도 효과적인 방법을 빨리 찾습니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고민할 시간을 준다거나, 항상 단계별로 힌트를 가지고 있어서 점진적으로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식입니다.

저는 <비전공자를 위한 이해할 수 있는 IT 지식> 같은 책을 읽는 것이, 적어도 내가 설명을 너무 어렵게 해줬기 때문이 되지는 않게 하고자 합니다.

아픔과 고민, 해결의 과정을 겪어본 사람

성공만 해온 사람도 매력 있습니다. 그 자신감은 능력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능력이 똑같아도 성공을 많이 겪어본 사람이 더 잘 해냅니다. ‘내가 해내지 못 할 이유는 없다’같은 마인드를 가진 동료는 같이 달려갈 맛이 납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문제 없이 순조롭게 완수하는 것은 꽤나 어렵습니다. 방해와 위험 요소는 난이도에 무관하게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능력 수준으로는 장애물을 마주칠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프로젝트 이력에 대해 얘기할 때, 과정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회사에서도 프로젝트는 보통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문제를 마주치거나 실패를 경험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정심을 갖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장애가 생겼을 때엔 혼란스러워 하기보다 빠르게 복구할 방법을 고민하고, 일정이 촉박할 때엔 일을 잘 완수하기 위한 요령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압박감 속에서도 침착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것의 기반이 되는 건, 자신의 능력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본 경험입니다. 쉬운 일만 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이런 경험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위해 챌린지해 기꺼이 어려움을 마주치고, 최소한의 도움으로 이겨내는 경험을 겪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고민과 호기심이 들어간 결과물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ActionScript라는 언어로 플래시게임을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카이브되어 있는 광군의 우주탐사라는 게임입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 마인크래프트 서버를 운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멀티플레이 상황이었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은 유저가 문을 열지 못 하도록 하는 플러그인을 썼었습니다. 어느 날 게임의 버전을 올렸더니, 이 잠금 플러그인이 제대로 작동을 안 했습니다. 새 버전의 업데이트 내용 중에는, 사용한 나무의 종류에 따라 문의 종류가 달라지도록 컨텐츠가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새 버전에서 추가된 문들에 대해서는 플러그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서버 버전을 다시 다운그레이드해 켜 두고, 잘 동작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콘솔에 에러가 예쁘게 뜨길래 jar 파일을 뒤져봤고, Java 코드를 열심히 뜯어가며 일주일 내내 고쳤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것보다 훨씬 일찍(하루만에) 플러그인 업데이트가 되긴 했지만요. 업데이트가 그렇게 빨리 올라올 줄이야.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게임 만드는 게 재밌고, 마인크래프트 서버를 운영하는 게 재밌어서 그랬던 것이죠. 호기심과 고민에 의해 코딩을 했던 저는, 자기만의 재밌는 결과물이 있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요약

  1. Imposter Syndrome을 이겨내본 경험은 소중하다.

  2. 인기 있는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우며, 글과 친한 사람은 협업에 큰 강점을 갖는다.

  3. 프로젝트를 이끌어 보며 매니저를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된다.

  4. 교육 경험을 살려 효과적인 설명을 하다 보면 존경을 얻을 수 있다.

  5. 어려움을 이겨내 본 경험은 침착함결단력을 만들어낸다.

  6. 개발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좋다.

profile
백엔드를 주로 다룹니다. 최고가 될 수 없는 주제로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1개의 댓글

comment-user-thumbnail
2024년 4월 5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답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