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눈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니냐, 그렇게 피곤하게 생각할 것 있냐는 것입니다. ’너는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냐‘ 라고 하면,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가치관과 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팀이 모여 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재의 밀도가 높고 align이 맞춰진 팀을 꾸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팀워크를 낼 수 있어야 시너지가 나고, 그래야만 높은 챌린지를 이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저보다 우수하고, 조직의 평균을 높여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평생직장 따윈 없다. 최고가 되어 떠나라!
요즘 유명한 ‘네카라쿠배당토’의 ‘배’에 해당하는, 배달의민족이 가진 슬로건입니다.
이 슬로건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망해서 갑자기 취업시장에 나가게 된다면, 나는 상품가치 있고 경쟁력 있는 사람일까?’
둘러보니 뭔가 허들이 높아 보였습니다.
Kotlin, Spring같은 것은 조직마다 기술스택이 다르니 그렇다 쳐도, Ceph, Harbor같은 기술은 아예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이에 더불어 ‘잘 쓴다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면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였습니다. 다음은 토스의 이야기입니다.
3년 이하의 경력을 가진 팀원은 39%이며, 전직장이 비금융권인 팀원은 93%예요.
와, 3년 이하라니. ‘경력이 낮아도 도전해봐요’ 하며 지원하게 만드려는 심산이겠지만, 저는 5년차가 되는 동안 저런 기술들을 그리 깊게 다뤄본 적이 없었다는 게 참 아쉬웠습니다. 회사에서 주는 일 괜찮게 한다고, ‘나 정도면 실력 괜찮지’ 라고 생각했던 게 부끄럽습니다. 물론 키워드가 중요한 것이 아닌 건 알고 있지만, 역량을 다듬는 데에 신경을 별로 안 쓰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게 다 생소했던 초기를 지나, 시스템과 코드에 익숙해져서 속히 ‘작업 치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업무 환경이 지루하거나 반복적인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조직도 Zookeeper, Grafana, Kafka를 쓰고, 필요에 따라 시스템이 계속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동료들 중 누구는 Rust에 관심을 갖고 멋진 작업을, 누구는 Spring 도입을, 옆 프론트엔드 팀은 Preact와 Stitches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언제보다 격변하는 시기에, 소극적으로 있다가 기회를 놓친 것도 같습니다. 요령으로 일하다 늙어버린 실력 없는 거품경력자가 될까 무서웠습니다.
요즘은 생소하고 불편한 환경에 놓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처음 쓰는 Spring을 써 보고, Terraform과 Airflow를 나서서 다뤄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직 부족하고,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 겪었던, 피곤함을 잊게 만드는 강한 성장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최고가 되어 떠나라’는 건 조금 빈말일 것입니다. 최고가 되어서도 떠나지 않으면 더 좋겠죠. 본질은, 모두가 최고를 향해 달려가는 조직이 되자는 뜻일 겁니다. 항상 성장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좋습니다. 취업시장이 무서워 회사에 붙어있는 사람보다,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것만 같은 사람과 함께하는 게 더 좋습니다. 자부심이 들기도 하고, 경쟁할 맛도 나니까요.
빠르게 성장하는 동료가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팀의 평균 수준을 상회하는 동료가 들어올 때마다, ‘저 사람이 금방 나를 대체할 수 있겠다’ 같은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신입에 가까운 경력을 가진 동료에게 그런 마음을 느꼈습니다.
동료와 과도하게 경쟁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 수준이 아니라, 퍼포먼스를 내지 못 하게 상대방을 압박하는 태도는 전혀 프로답지 못합니다. 동료에게 과하게 높은 챌린지를 주문하거나, 아이디어를 실행한 공을 독차지하려 욕심부리거나, 조력자의 도움을 감사하게 여기지 않고 혼자 빛나려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과는 절대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료들과 성과를 비교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번 분기에 저 사람보단 내가 잘 했고, 누구보단 못 했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높은 성과를 낸 동료는 박수치고 응원해줄 사람이지 질투할 것이 아니고, 낮은 성과를 낸 동료는 같이 이겨낼 사람이지 잘난척 할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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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경쟁심리 없는 사람이라도, 남들보다 뒤처져있는 걸 편하게 느낄 사람은 없습니다. 잘 하는 사람이 주변에 널려 있으면 자존감이 많이 내려갑니다. 저도 이렇게 ‘뒤에서 1등’ 같은 기분을 많이 느껴왔습니다.
재능의 차이를 빠르게 인정하고, 자신의 capacity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다 보면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과도하게 열심히 할 것도 없고, ‘매일 1%씩 나아진다’ 같은 말처럼 습관화된 의식적 연습이 성장을 불러왔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이렇게 한 문단 정도로 요약할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요.
우수한 사람이라면, 혼자 고고하게 잘나려고 하기보다 모두가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팀워크를 위해, 그리고 서로가 자존심 싸움이 아닌 성장을 위한 진짜 경쟁을 할 수 있게 말입니다.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급이 나뉩니다. 어느 집단에서는 최고였던 사람도, 더 높은 수준의 집단에서는 평균에도 못 미칠 수 있습니다. 실력과 무관하게, 이런 종류의 부담감과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다가오곤 합니다. 내 자신에게든, 주변에게든 높은 기준을 요구받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한숨만 쉬다 끝나지 않고, 이런 감정을 동기부여에 이용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공부해서 도움 돼야지’ 라고 생각하고 계시다면, 이미 좋은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웬만한 철인이 아니고서야 열등감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책만이 아니라 주변의 평가까지 수용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꽤 받습니다.
열등감은 반복되는 감정입니다. 지금 이겨내도 더 높은 수준의 조직에서는 다시 부족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마음가짐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마음 속의 줄세우기를 멈추니 많이 나아졌습니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자신을 평가할 게 아니라, 성장하기만 하자는 태도를 가지면서 안정적인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회사는 누군가가 금방 우수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Quantum Jump 없이도 차근차근 성장만 하면 된다고 봅니다. 프로그래머의 커리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다이어리라는 이야기가 담긴, 바다 건너 40년차 개발자의 글이 생각나네요.
‘기술에 silver bullet은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기술 도입에는 다양한 항목을 고려해야 합니다. 팀의 선호도와 숙련도, 워크로드, 비용, 채용 등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차저차 해서 무언가 결정되고 나면, followership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밑천 드러날까 걱정되거나, 등의 이유로 생소한 기술을 배척하는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개인이 잘난 것보다, 팀이 나아가는 데에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followership을 가진 사람은 얼마 안 지나서 다시 우수한 사람이 되곤 합니다. 우수함은 반복됩니다.
‘아무도 내게 말하지 않았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으며 핑계로 들립니다. 자신의 실력과 부여된 리소스를 합해 최상의 결과물을 내는 것이 프로의 모습입니다. 최소와 최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프로정신(professionalism)이라는 단어로 통하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일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보다 되게 만들 방법을 찾는 것
자체적으로 QA를 진행해 결과물의 confidence를 높이는 것
작업 전보다 후에 시스템을 더 깔끔하게 만들어 두는 것 (보이 스카웃 규칙)
회사 밖에서도 능력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적게 주니까 적게 일한다” 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을 가끔 마주칩니다. 공감합니다. 적당히 일하고자 하는 것도 좋은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사람도 조직에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만약 보상에 대한 불평이나 낮은 퍼포먼스의 핑계로서 하는 말이라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능력을 증명해 급여를 원하는 수준까지 협상하거나, 조직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이직하거나 카운터오퍼를 하면 되는 일입니다. 정작 실력이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능력 걸고 경쟁하기엔 자신이 없어 괜한 핑계를 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무슨 무보수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적당히만 해도 협업에 지장은 없습니다. 항상 프로정신을 발휘하는 것도 천직이 아니라면 피곤한 일입니다. 대신 책임감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 큰 어른이 일 내팽개치고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은 정말 답답합니다.
회사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하나 싶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어려운데 이해했다 하고, 어렵다고 말하지 못 하는 것, 나쁜 소식을 전달하지 않고 숨기는 것 모두 거짓말입니다. 자신의 상태를 숨김 없이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은 협업에 정말 중요합니다.
소프트웨어도 그렇듯, 모든 수정과 교정은 나중에 일어날 수록 비용이 높습니다. 설명해준 지 한 달이 지나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하면, 답변자 입장에서도 당시의 내용을 꾸역꾸역 찾아내 머리에 로드시켜야 합니다. 서로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개발자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자. 익숙함에 기대 일하다 보면 성장이 멈추게 된다.
다 같이 잘 하려고 하자. 혼자 잘난 것보다 팀을 성장시키는 것이 결국 나에게도 좋다.
누군가와 비교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잘 성장하는 것만 생각하자.
followership을 갖자. 빠르게 학습해서 다시 우수한 축에 낄 수 있도록 하자.
프로정신을 갖자. 능력을 초과하는 결과물을 내놓길 원하지는 않는다. Capacity 안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자.
거짓말 하지 말자.
내용이 너무 좋네요 ㅎㅎ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