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1 붓다

Clay Ryu's sound lab·2022년 11월 6일
0

Philosophical Idea

목록 보기
5/8

https://youtu.be/fakCDA_-8gE 해당 링크의 강의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리를 하며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이 생각이 났습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의 첫 문장은 여전히 제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 같습니다. 이제와서 돌아보면 저 또한 스스로를 무언가로 규정하는 편안함에 항상 기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어떤 훌륭한 생각의 구조 조차도 번번히 세상을 마주하며 무너지고 말았는데요. 이런 좌절 속에서 어느 순간 이런 무너짐과 재구축 또한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러니까 악보가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삶의 한 방식이 되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말처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면 어느 곳에도 기댈 곳이 없다는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바로 나라는 실체를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나는 계속해서 내 삶을 마주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하고 저 또한 그 과정을 함께하며.

불교철학


불교 철학에서 가장 흔히 실수하는 부분은 이 철학이 오래되었고, 종교적으로 다양한 분파로 이어져왔기 때문에 붓다가 설파한 내용은 다양하게 변형이 되었다는 것이다.

Dukkha


그 중에서도 Dukkha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환경, 또는 상태(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설정된 존재의 한계 상황)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를 고통으로 번역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그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는 비관, 염세주의로 오해하게 된다.

중도

브라만교는 붓다가 살았던 기원전 6세기경에 형식주의로 변질이 되었다. 이에 따라 브라만교의 내부에서는 우파니샤드 외부에서는 자이나교와 불교가 등장하게 된다.



결국 아트만은 없고 아나트만이 있으며 연기(모든 겻은 상호 관계 속에 있으며 독립적 실체는 없다.)야 말로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연기와 무아


연기는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독립적인 실체로 규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하려는듯 하다. 인간은 존속하는 존재가 아니라 과정으로 간주된다.(폴커 초즈)
붓다에게 인간은 오온(색수상행식)과 다양한 요소들(밥,온도,물)등으로 관련지어져 있는 존재로 이것을 나의 의식의 상태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등한 우연적인 현상들로 이루어진 것으로까지 이어나갈 수 있는듯 하다.
나의 의식은 나의 일부 일뿐.


attribute와 substance의 관계에대한 고대철학부터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온 생각은 틀렸다. 그 시도는 좋았지만 발을 실체까지 뻗어가야한다고 한다.

사성제와 팔정도



정정은 팔정도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관조와 명상이다.

108번뇌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비롯되는 다양한 심리 상태
그래서 더 큰 시야로 보기위한 명상을 해야한다. 하지만 나는 명상이 오히려 더 집착하게 되어 어려웠다. 명상은 가끔 호들갑을 떨게 되어 너무 어렵다. 차라리 혼자 여행을 하면서 아무 생각 않는게 더 좋은 것 같다.


열반

지금 나라는 존재의 실상에 집중하자.


자타불이

나와 남은 둘이 아니다라는 윤리관도 제시한다. 연기에서 비롯된듯 하다.

profile
chords & code // harmony with structure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