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2 키에르케고르

Clay Ryu's sound lab·2022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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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ical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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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KGwo04-eaQ
https://youtu.be/jJZ5U21xkk0 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키에르케고르

진리

보편적 진리에서 개인적 진리로
철학은 객관적인, 보편적인 진리(칸트, 헤겔)로 우리의 삶에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가?
키에르케고르는 여기에서 실존 주의가 그러하듯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나의 진리(그때그때 필요한 진리)에 대해 탐구하고자 했다.

인간과 개인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사회적 존재 일반
개인은 '인간'이라는 개념에 속할 수 있는 낱낱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획일화되어 있는 개인을 구원해보자.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언제나 개인이다.

대지진

독실한 기독교 환경 속에서 살았던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아버지가 신을 저주했었다는 사실,
자신의 어머니가 혼전임신을 했다는 사실, 아버지가 교회법을 어기고 재혼한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지은 죄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은 33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7남매 중 5명이 그러했다고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의 우울함과 더불어 자기 자신이 저주받았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키에르케고르의 예민한 성격으로 지금 당장 숨막혀 죽겠는 불안과 절망에 대해서 다루게 된다.

본질(essentia)과 실존(exixtentia)

existo 튀어나오다에서 유래한 실존
1, 2차 세계 대전은 전통적 인간(합리, 이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
인간의 부조리(추악과 타락)는 현대 철학과 현대 예술 탄생의 배경이 된다.

실존의 세가지

심미적 실존

아름답고 쾌락적인 새로운 것을 찾아 다니는 단계, 만족에는 끝이 없다.

윤리적 실존

자신이 윤리적이 되려고 할 수록 자신이 윤리적이 되질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종교적 실존

기독교에 헌신, 형식적인 의식에만 치중하고 기복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덴마크의 교회와 싸우기로 한다.

죽음에 이르는 병

파혼 이후에 1846년 이후에 익명으로 다작하며 출판을 한다.
"인간은 유한한 실존을 누리면서 무한한 자기 확장을 원하나 좌절에 부딪힌다. 이때 인간은 좌절한다."
실존하는 개인은 절망이라는 정신의 병을 품고 산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은 우리가 영원의 드라마를 꿈꿀 수는 있어도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공간, 시간의 확장을 꿈꾼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늘 대립하며 혼란할 수 밖에 없다. 바라지 않을 수 없지만 이룰 수 없다는 모순은 절망을 불러온다.
절망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죄이다.
따라서 절망에 맞서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키에르케고르는 신 안에 자기를 근거 짓고 그 안에서 존재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앙으로도 절망은 계속된다. 하지만 절망을 짊어지고 견딜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가지게 된다."

무지의 절망

스스로가 모순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무언가를 미적으로 느끼는 것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절망

취약의 절망

자신이 절망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를 부정하며 부자가 되려하고, 외모를 가꾸는 장식으로 스스로를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절망

반항의 절망

절망에 빠저 있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삶의 의미', '살아갈 가치'를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이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절망

신앙

절망의 반대는 희망이 아니고 신앙이다.

신 앞에 홀로 선 인간

세속적 기독교

키에르케고르는 얼핏 보면 신 안에서 자신을 규정지으려고 하는 나이브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거대 담론에 휩쓸린 세속적 기독교를 매우 날카롭게 비판한다. 거시 논리보다는 개인의 실존적 고뇌를 깊게 들여다 보는 것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 개인을 구원하지 못하는 교회가 어떻게 더 큰 것을 다루겠냐며 각자의 원시성에 눈을 뜨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것을 추구할 것을 촉구한다.(성서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갈 것)

주관적 진리

내가 믿기 때문에 그것은 참이다. 주관적 진리는 나의 믿음과 결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생기는 불확실성을 믿을지 안믿을지를 선택하는 것은 나의 자유이다.

아브라함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는 계시를 받은 아브라함이 느꼈을 공포와 전율을 생각해보자.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지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신이 존재한다는 진리는 목숨을 건 결단을 통해서 얻게 된다.

한명의 외톨이가 신과 대면,
존재가 자신의 절망과 올바르게 맞서기 위해 신의 무한성을 의식하고자 결단을 하는 것.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모색한다.

자유


자유가 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릴 수 있고 결단을 내릴 수 있기에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찾아오는 것이므로 이것은 축복이 될 수도 있다.

거대 담론 우주의 진리를 찾던 철학사에 개인의 이야기를 펼쳐본다. 실존주의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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