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 만들던 경제학과가 2700명이 쓰는 챗봇을 만들기까지

Damon·2022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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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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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나는 25살에 회사를 설립했다.

왜, 어떻게 회사를 세우게 되었는지 말하려면 대학생 때로 돌아가야한다.
아 아직 졸업을 안하긴 했다.

본 전공은 경제학이고 복수전공은 융합소프트웨어학(이하 융소)이다.
융소는 다양한 것들에 관심과 욕심이 많았던 나의 욕구를 채워줬다.

테트리스로 시작된 맨땅에 헤딩

2019년 1학기,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라는 수업을 들었고 이 수업은 내 인생 진로의 중요한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수업 내용은 깃헙에 있는 오픈소스를 골라서 업그레이드 시키는 프로젝트형 수업이었다.
매 주 수업마다, 우리팀이 지난 1주일 동안 무얼 했고 다음 1주일 동안은 무엇을 할 것이다를 검사받아야 했다.
그리고 다음주가 되면 저번 주에 제출했던 계획가 비교해서 무엇을 했는지, 또 무엇을 못했는지 검사받는다.
(맨땅에 헤딩 정신을 키워주신 김ㄷㅎ 교수님 감사합니다.)

코딩의 ㅋ도, 깃헙이 뭔지도 몰랐다. 그래도 나 포함 3명이 함께 팀이 되었고, 우리 팀은 테트리스를 만들게되었다. (경제학과, 화학과, 수학과 Cross!)

처음 1달은 정말로, 아무것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하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찌됐든 학점은 받아야하니.. 남은 3달 동안 팀원들과 치고받고, 우당탕탕 뭔가 만들어내긴했다.
수능 이후에 처음으로 무언가에 '몰입'했던 경험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몰입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만들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던 것 같다.

기존 테트리스에서 색깔도 바꾸고, 난이도도 높이고, 기능도 하나씩 추가해가는게 정말 재밌었다.
다른 수업 들을 때도, 걸어가면서도, 자려고 누웠을 때도 '테트리에서 뭘 더 추가할까?'만 생각했다.

당시 만든 결과물. 중앙 상단에 Millions는 우리 팀명

그래도 기존 소스코드에서 꽤 많은 부분을 업데이트했고, 발표도 나름 잘한 덕분인지 A+ 성적을 받으며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TMI: 첨부 사진의 중앙상단에 보이듯이 우리 팀명은 Millions다. 당시에 나는 100만원을 주는 교내 장학생에 선발이 되었는데, 매주 수요일에 참여해야하는 공식 행사 시간이 테트리스 수업시간과 겹쳤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고, 나는 장학금을 포기했다. 앞으로 수백만원을 더 벌자고 Millions로 지었다는 뒷이야기..)

챗봇으로 이어진 맨땅에 헤딩

학기가 끝나갈 무렵에, 스마트폰으로 우리학교 홈페이지를 봐도 pc 버전으로만 보였고 이 상황에서 확대축소하면서 정보를 찾는게 너무 불편했다.

2년 넘게 지난 아직도 pc버전...;;

당시에 나는 테트리스 수업 덕분에, 근본없는 자신감이 한껏 올라있었다.

그리고, 카카오톡으로 우리 학교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카카오톡 챗봇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갑자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꼭 해야겠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나랑 이거 만들래?

당시 테트리스 팀원이었던 친구 한 명과, 그 친구가 아는 후배 1명(Tom)을 포함해 3명이서 챗봇 팀을 이루게 되었다.
(Tom과는 그 때 알게되어서, 지금도 같은 팀원으로 웹소설 리뷰,커뮤니티앱 '엣세이'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후에 디자이너 역할을 할 후배 1명이 더해져 총 4명이서 팀이 되었다.

우선순위 정하기

처음부터 챗봇에 모든 학사정보를 넣을 수는 없으니,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들부터 우선순위를 정했다.
그렇게 정해진 것들이 <학식메뉴, 학과사무실 전화번호, 공지사항> 였던 것 같다. 아마도?

우선은 학과 사무실 전화번호.

당시 동국대 홈페이지에서는 각 학과별 홈페이지를 일일이 들어가야만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고, 전화번호를 모으는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에 교내 근로를 하던 나는 사무실에 있는 전화번호부를 몰래 찍기도 하고(죄송합니다), 학생상담센터에 가서 전화번호부좀 달라고 조르기도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전화번호를 다 모았고, 엑셀에 정리한 다음 모든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번호가 맞는지 확인했다.
"여보세요? 거기 000학과 사무실 맞나요?"
1. "아 네 맞아요." -> "아 네~ 감사합니다."
2. "아, 전화번호 바꼈어요." -> "아 그럼 거기는 어디고, 000학과 전화번호는 뭐에요?"

아래 사진에 있는 학과 사무실 이외에도 교내 모든 부서(봉사센터, 상담센터, 교무처 등)에 전화해보고 번호를 수록했다.

다음은 학식메뉴와 공지사항.

당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인데, 학식메뉴와 공지사항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기 위해서는 무려 "크롤링"과 "서버 운영"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아무도 저 두가지를 직접 해본 사람이 없었다..

또다시 맨땅에 헤딩을 수 백번하면서 어찌어찌 또 만들었다.
테트리스 수업에서 맨땅의 헤딩을 하도 많이해서 머리가 꽤 단단해졌더라.

그렇게 2달간의 개발기간을 거쳐서 2019년 8월에 '동국대알리미'의 베타테스트를 출시했다.

(챗봇 구경하러 오세요~! 클릭!)

출시하고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중앙도서관 열람실 좌석개수, 학사일정, 교내증명서 발급, 편의시설 운영정보 등 다양한 정보들을 추가해갔다.

나는 이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사방팔방 애썼다. (돈 버는 것도 아닌데 정말 열심히했다.)

당시에 우리가 홍보했던 방법들은 이렇다.

  • 팀원들이 속한 모든 단톡방에서 소개하기. 오랫동안 말없던 단톡방의 적막함과 어색함 속에서 홍보하는 기분은 참...허허
  • 모든 학과의 학과장, 단과대장, 총학생회장을 아름아름 찾아서 각 학과의 단톡방에 우리 챗봇 소개해달라고 조르기. 모든 단과대장과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이 회의를 하는 자리에 가서 5분 피칭을 하기도 했다.
  • 큰 포스터 만들어서 교내 게시판 곧곧에 붙이기. 학교측에서 매주 일요일에 교내 게시판에 있는 모든 포스터를 제거한다. 그럼 월요일 새벽에 가서 또 붙인다.
  • 화장실 대변기에 앉으면 보이는 높이에 전단지 붙이기.
  • 알고 지내던 교직원 선생님께 찾아가서 동국대 홈페이지 메인배너에 소개해달라고 조르기. 실제로 인터뷰 기사가 홈피 메인에 뜨기도 했다.
  • 학생처 사무실에 무작정 찾아가서 우리 서비스 알리기. 당시 학생처 팀장 교직원분이 우리 서비스를 좋게 봐주셨고 20학번 신입생 안내 책자의 한 페이지에 소개됐다.

벽보 게시판에 붙힌 포스터

손바닥만한 사이즈로 만들어서 대변기 문에 붙혔다. 우리학교 화장실에는 휴지통 없이 녹는휴지를 사용했다.

그렇게 어느덧 이용자가 1000명이 넘어섰고, 이를 기반으로 교내의 각종 대회와 프로젝트에 나가서 상과 상금도 타고 그랬다고 한다.
(대회 나가려고 서류를 엄청나게 썼던 기억이..)

상금 중에 챗봇 발전을 위한 공금을 조금 남겨뒀고, 나머지는 엔빵해서 나눠가졌다.
많지는 않았어도, 팀원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안겨줄 수 있어 정말 기뻤다.

그 공금으로 각종 설문조사와 이벤트를 하면서 학생들이 필요로하는 정보들을 계속해서 추가해나갔다.

그 결과..!

이후에, 챗봇 이용자가 2000명이 넘어설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이용해주었다. 현재는 정말 감사하게도 27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사용해주고 있다.

테트리스 수업과 챗봇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에 정말 큰 재미와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별 다른 생각 없이, 그냥 일단 해보자라는 마인드였다.
그리고, 내가 머릿속에 상상한 아이디어들이 진짜 현실에서 만들어지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내가 만든 서비스를 사용한다는 게 신기하다 못해 정말 흥분되는 일이었다. 내가 직접 미래를 정하고 만들어가는 기분이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몰입'을 하다보니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창업의 길로 가고있던게 아니었나? 싶다.

4학년이 되고 나서는, 학교의 범주에서 벗어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쓰는,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챗봇보다 더 큰 걸 만들어내고 싶다. 더 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던 와중에 당시에 태국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UN 인턴이 코로나로 인해서 국내 원격 근무로 변경됐다. (하.. 방까지 다 알아봤는데..)

이왕 한국에 있기로한거... 뭔가 만들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거리던 상태를 참을 수가 없었나보다.

나는 주변사람 4명을 모아서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로 결심한다.

(틈틈히 다음 이야기도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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