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개의 키보드를 가지고 있고, 최근 2년간 10개의 키보드를 썼다. 지금 사용중인 Lily58을 빼고는 모두 나에게 잘못걸려서 실험당했다... 나는 왜 2년간 키보드를 10개나 썼을까? 풀배열, 텐키리스(FC660C, FC750R), MS 인체공학 키보드, 애플 매직키보드, 맥북 내장 키보드, RAZER 한손 키보드, 세미 스플릿, 커스텀 스플릿까지 다양하게도 바꿨다. 키보드를 하루 종일 쓰진 않는 일반인의 기준말고, 개발자의 기준으로 키보드들의 종류별 장단점을 분석해보자.
이름 : 실험 1호
특징 : 집에 굴러다니던 키보드
판매가격 : 10,000원 (대략?)
장점 : 가용한 모든 키가 있어서 직관적으로 사용하기엔 제일 쉽다.
단점 : 키가 너무 많아서 비효율적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래를 보면 알 수 있다.
보통 왼손은 asdf 오른손은 jkl; 에 올려둔다.
풀배열의 오른쪽에 마우스가 있다.
그럼 그 사이에 큰 공간이 빈다.
오른손이 위치하는 jhk;과 마우스 사이에 너무 큰 공간이 있어서
리듬과 집중력을 해친다!!
몸을 어디에 두든 손목에 무리가 간다.
키보드에 파지한 양 손의 중심점을 모니터 정가운데에 두면
마우스를 잡기 위해 오른손이 넓은 범위를 움직여야한다.
마우스까지 잡은 걸 모니터 가운데 두는 기준으로 하면
타이핑 할 때 오른손을 심하게 꺾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도 문제다.
이름 : 레오폴드 FC750R PD 스웨디시 화이트 영문 (갈축)
특징 : 윈도우용 키보드로 나쁘지 않았다. 묵직해서 타건감이 좋았다.
판매가격 : 12만원 (아마?)
구매가격 : 8만원 (당근마켓)
장점 : 마우스까지 거리가 짧아짐.
단점 : 손목 꺾임!!!!
원래는 이렇게 이쁜 친구다..
이건 다음 화에서 설명하겠다. 마우스까지 거리만 줄이면 난 문제가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당시에 큰 맘 먹고 키보드에 10만원 정도 쓸 결심을 하고 레오폴드를 중고로 사왔다.
(레오폴드가 아닌 매직 키보드로 시연 영상을 찍었지만, 문제의 본질은 같기 때문에 이거로 대체합니다~!)
슬슬 손목이 아팠다. 정확히는 왼손목을 왼쪽으로 비틀어서 ctrl, shift, window, tab 등의 키를 눌러야 했기 때문이다.
손과 손목의 위치보다 키보드의 위치가 낮아야 인체공학적 설계에 가깝다. 그리고 손을 펴서 F1, F2등의 키를 누를 때 그 키들의 높이는 asdf들의 높이보다 반드시 낮아야한다. 그래야 손가락을 펼치면서 손등의 근육을 최소한으로 수축하게 된다. 사진은 F1, F2키들의 높이가 가장 높게 되어있는데 정 반대로 만들 자신이 없다면 적어도 플랫하게 만들어야 한다. (잘 설명된 글이 있어서 링크로 대체합니다.)
이름 : 마이크로소프트 어고노믹 키보드
특징 : 인체공학 키보드 중 유명하면서 후기도 많은 제품
판매가격 : 10만원
구매가격 : 4만원 (당근마켓)
장점 : 없음
단점 : 적어도 내 팔과 손엔 하나~도 안맞는 인체비공학적 키보드.
이 블로그에 혹해서, 당근에서 4만원에 가져와서 써봤다. 근데 진짜 너~무 별로여서 다음 날 바로 팔았다. 저 의사님이 말씀하신게 틀린건 없다. 손을 자연스레 벌려주고, 손을 책상에서 45도 각도로 틀어주어 피로감을 줄여준다. 이론적으론 그렇게 된다. 근데 개인의 타이핑 방법과 인체 구조는 모두 다르기에, 모두에게 같은 사이즈와 각도로만 제공되는 저 키보드는 적어도 내겐 전~혀 인체공학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키감이 구리다. 차라리 맨 처음 썼던 만원짜리 풀배열키보드가 나았다. 코딩하다 안될 때 키감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이건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었다. 극비추.
이 사진은 애플 계열 키보드 레이아웃이지만, 윈도우 계열이든 애플 계열이든 키보드의 바깥쪽에 기능키들을 배치했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는 레이아웃이란건 공통적이다.
키보드의 새끼손가락 구역을 잘 보자. 새끼손가락 구역을 치는 법은 두개다. 새끼손가락으로 치거나, 다른 손가락을 이용하거나, 손날을 이용하거나이다. 다른 손가락을 쓰면 손 전체가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동작이 커진다. 손날을 이용하면 편하긴 한데 부정확하다. 그리고 제일 구석에 있는 컨트롤키를 제외하곤 손날은 무용지물이다. 결국 새끼손가락으로 치는 것이 제일 편리함에 가깝지만 장기적으로 통증을 유발하기 딱좋다.
장기적으로 어떤 통증을 어떻게 가져오길래 얘는 키보드에 이리 집착하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리처드 스톨만은 오픈소스계의 구루로 불리며 역사책에 남을 인물인데 이 분이 젊었을 때 단축키 천국인 Emacs를 신명나게 사용한 나머지 지금 rsi 증후군으로 엄청 고생중이시다. 이게 지독한 병인 이유는 치료가 안되기 때문이다. 내 몸도 하나의 장비이자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아 손목 아픈데 쉬었다 할까?'라는 생각도 차라리 없애버리는게 낫다. 통증의 근원을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추후 10년 20년은 일주일에 몇 번씩 '아 아프다'라는 생각을 해야하는데 이는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하나도 안된다. 그리고 단축키 매니아인 나는 새끼손가락을 주축으로한 단축키 사용법이 너무 불편했다. asdf보다 기능키들을 더 많이 누르는 입장에서 기존의 방식은 확실히 비효율적이다.
거지같은 키보드 키배열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키보드의 디자인이 이런 이유는 먼 옛날 '타자기'시절까지 올라간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기계적으로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듯이, 타자기는 키를 누르면 활자가 종이에 기계적으로 찍힌다. 고속으로 치면 활자간에 엉키는 경우가 많아 고장이 많았고, 고장을 줄이기 위해 타자수들이 치기 어렵게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 스페이스바에서 F1키까지 계단식으로 올라가며 치게 만들어서 손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각종 기능키들도 일부러 바깥라인으로 빼냈다. 이 디자인이 현대의 키보드와 다를게 없다고 보이면 제대로 본 것이다. 바뀐 게 없다.
유수의 대기업들도 이 구조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게, '여러분들 기존의 키보드 레이아웃은 완전히 바보같은 짓이었습니다. 저희의 신제품을 보십시오!'라며 기존의 배열에서 벗어난 제품을 소개한다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외면할 것이다. 나같은 사람이나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만 일반 사용자들은 컨트롤 씨 브이를 제외하곤 Pgup, Pgdn, Home, End 키들을 평생 한 번도 안 눌러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정독하고 있는 당신도 괴짜적 기질을 어지간히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일부러 느리게 치게 디자인된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키보드를 능률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기존 키보드 레이아웃을 완전히 잊고 인체공학적이면서 빠른 작업을 도모할 수 있는 새로운 레이아웃'을 개발해야만 한다.
내 손에게 최적화된 각도를 제공할 수 있는 키보드의 충분조건은 '왼손과 오른손이 타이핑하는 객체는 반드시 서로 독립이어야 한다'이다. 풀배열이고 텐키리스고 어고노믹이고 간에 관계없이, 직사각형 모양이면서 왼손 오른손이 같은 보드를 공유한다면 아무튼 다 제외 대상이었다. 그럼 난 무슨 키보드를 써야하나... 하,, 고민을 깊게 했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e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 니체 <선악의 저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