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바닷물이 짜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Bard·2026년 8월 14일

여긴 물살이 너무 세, 여긴 텃세가 너무 세
저 바위에 부딪혀 머리가 터질까?
아님 먹혀 버릴까? 나를 씹어 버릴까? 그럼 죽어 버릴까?
이 큰물에 노는 물고기들이 잡아 먹을까 두려워
나는 점점 바다 밑바닥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지
그래서 지금껏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껏 내 얼굴도 이젠 잊어 버렸다
나를 감싸는 어둠은 너무 차갑고 짙은 어둠이라 한줄기 빛도 없었지
그래서 지금껏 나는 꿈이 없었다
맞아 그래 지금껏 나아갈 길도 찾은 적이 없었다

제주로 내려온 뒤 서너달이 지났을 때에도 아직 나는 적응을 못했던 것 같다.
30분 정도 빨간 버스를 타면 만날 수 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먹던 멸치회무침, 도모야, 양에 비해 좀 비쌌던 삼우바베큐.
일과가 끝나도 부르면 언제든 만날 수 있던 지금은 현대모비스로 가버린 친구들.
이 모든 걸 제주에서 다시 재건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일과 집 정도로 생활이 좁아졌고, 유일한 외부 활동이었던 주 1회 가던 오케스트라도 점점 마음에 안들어졌다. 세컨 바이올린은 나와 파트장을 제외하곤 아무도 오지 않기 시작했고, 일단 곡부터 연습할 생각이 잘 안들었다.

삶이 참 작아졌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모든 게 다 하기 싫어졌던 것 같다. 아마 이렇게 생활을 좀 더 지속했다면 우울증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이건 사는 게 아닌데 나는 죽은 게 아닌데
이 바닥에 처박혀 남 눈치만 보다가
홀로 외로우니까 뭔가 불안하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이건 살아있단 느낌이 없어
내 가슴 속이 뜨겁듯 여긴 점점 화끈거려
뱃가죽 밑이 울렁거리고 바닥이 찢어지고 땅을 토해내
갈라진 틈 사이로 붉은 물고기가 내게 뛰어와
뭐가 없던 나의 인생도 끝이구나 여기까지가
뜨거운 물고기 떼, 뜨거운 목소리로
이 바닥에서 도망쳐 죽어있던 니 삶을 찾아가라

그렇게 제주에 대해 불평하던 나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질문을 바꿨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누군가 잠깐 나를 즐겁게 해줄 수는 있었지만, 내 일상 자체를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었다.

나 이렇게 계속 회사 갔다 집에 갔다 하면서 살려고 내려온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졌다. 오케스트라 하나를 당근에서 찾았다. 이름은 제주 in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였는데 알고보니 이게 제주교원오케스트라더라. 심지어 그토록 고대하던 퍼스트 바이올린으로 들어갔다.

좀 ㅈ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래야 좀 연습할 맛 나지. 그리고 몇 년간 계속 배우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드럼 학원도 등록했다.

내가 원래 좋아하던 걸 다시 내 일주일 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어둠을 지나 한 줄기의 빛이 보이네
어둠속에 감추고 살던 내 실체가 궁금했지만
저 빛은 너무 눈부셔 
내가 살던 심해를 지나 빛이 나를 비추어 주네
수면 위에 비추어지는 내 몰골이 궁금했지만
내 눈은 멀어 버렸지

물론 오케스트라 하나 더 들어가고 드럼을 시작했다고 해서 갑자기 제주 생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여전히 제주고,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고, 여전히 힘든 점도 있었다.

처음 제주에 내려올 때는, 제주에 왔으면 이렇게 살아야지. 뭐 이런 기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걸 따지는 것보다 그냥, 퇴근하고 악기를 들고 어디론가 가고, 연습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드럼을 치러 간다. 토요일도 아주 꽉 찼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확인하지 않는다. 내 몰골을 확인하려고 수면까지 올라왔지만, 행복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여긴 물살이 너무 세, 여긴 파도가 너무 세
해변에 휩쓸려 머리가 터질까
누가 먹어버릴까?
나를 씹는다해도 뵈는게 없으니
그 두려움 따윈 사라져버렸지
나를 쬐이는 햇빛과 다른 뜨거운 눈빛들은 분간이 안돼
난 장님이니까
그래서 지금도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또 살아 나가야 할 빛이 생겼다.

물고기는 바닷물이 짜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제주가 변한 건 아니다. 여전히 제주라서 친구를 만나려면 왕복 15만원을 써야하고, 어떤 외로움은 앞으로도 생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쫌 변했다.

남들이 보기엔 내가 제주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외로워 보이는지 각자의 눈빛이 있을텐데, 요즘은 그걸 별로 구별하지 않는다. 이거에 신경 쓰느라 몇 달을 낭비한거냐 아오

이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오케스트라 두 개 하면 좀 바쁘고 드럼까지 배우면 평일이 꽉 차지만, 그렇게 살아보니까 재밌더라.

한 가지 큰 숙제가 남았는데, 예전처럼 거창한 꿈을 위해 노력할 마음은 아직 잘 안드는 것 같다.
드럼과 오케스트라가 야망을 되찾아주지는 못했다. 우선 살아나갈 힘을 얻었으니 이 숙제는 천천히 해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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