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글을 다시 쓴다.
회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글을 쓰는게 참 쉽고 즐겁게 느껴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쓰는게 어려워진 것 같다. 그 이유를 지금 떠오르는대로 대충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웬만하면 좋은 습관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이번에는 회사에서 꽤 긴 시간동안 방학을 줘서 좀 여유가 생겨 2021년을 회고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 회고글을 시작으로 다시 틈 날때마다 글을 쓰려고 노력해봐야겠다.
8월에 이직을 했다. 이직을 결심했던 이유는 당연히 복합적이지만, 그 중 회고해보고 싶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Mission을 정의하는 것은 회사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의사결정이다. 회사가 전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사 결정은 구성원들의 업무 내용과 업무 방식, 업무 분위기 등 모든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Mission이 구성원들 간에 확실하게 align되어 있지 않다면, 혹은 mission이라는게 제대로 정립된 적조차 없다면 과연 그 회사는 시장에 임팩트를 전달할 수 있을까?
Mission과 Vision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회사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를 명확하게 인지했을 때부터 비로소 스타트업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맞는지, 혹은 이 일을 왜 하는지 의문이 들 때 Mission과 Vision을 통해 답을 알려줄 수 있는 회사를 원하게 되었다.
개발자들이 개발을 통해 제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좀 더 단순하게 말하면 개발자가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고, 어쩌면 당연하다. 엔지니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편을 해소해주기 위해 일한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럼 고객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가? 혹은 어떤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의 고객으로 만들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성공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제품의 기능을 개발할 때 항상 고객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고객의 소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수렴하기 위해 고민하는 회사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번과 비슷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업무와 관련된 모든 정보들을 최대한 개방적으로 공유하는게 좋겠다고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가진 Mission이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우리의 제품에 어떤 기능을 넣기로 결정했다면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제품 개발 일정은 어떤 과정을 통해 산출되었는지 등등 일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이러한 의사 결정의 과정을 최대한 투명하게 공유하면 할수록 실무자들은 계속해서 의욕적인 상태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고,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해야 하는지 더 잘 아는 상태에서 업무를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구성원 모두가 밀도있는 퍼포먼스를 내서 폭발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곳이다. 기계적으로 양적인 기여만을 해도 된다면 구성원 모두가 모든 정보를 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폭발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눈에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질적인 기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 양질의 기여를 하기 위해서 실무자는 회사의 상황을 더 자세하게 인지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 이렇게 크게 3가지 정도의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아보게 되었고, 매우 신중하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금 회사로 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옳은 선택을 했는지는 시간이 더 많이 흘러봐야 알겠지만, 입사 후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는 전반적으로 만족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정립하게 된 철학이 있다. 개발자는 기술자이기 이전에 비즈니스맨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전까지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니어 개발자들은 기술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숭고한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진입장벽이 높고 더 깊은 전문성을 요하는 기술일 수록 그런 경향은 강해지는 것 같은데, 앞서 언급했듯이 제품을 제조하는 업의 본질은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기술은 "어떻게 하면 고객의 문제를 더 많이 더 자주 해결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철학은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라는 말과도 어느정도 맞닿아 있다. 특정 기술에 함몰된 일부 개발자들은 기술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는 위험한 행위를 저지르곤 한다. "좋은 기술" 혹은 "나쁜 기술"이란건 없다. 특정 상황에 대해 적절한 기술과 적절하지 않은 기술이 있을 뿐이다. "어떤 기술은 좋은 기술이다" 혹은 "어떤 기술은 안 좋은 기술이다"라고 단정짓는 순간, 비즈니스와 align되어야 하는 기술적 의사결정의 퀄리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로 합류하게 된 회사는 핀테크 회사이다. 기존의 오래된 레거시를 청산하고, 내외부적으로 완전한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내 개인적인 성장이 거의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내가 왜 일을 하는지 깊게 고민하고, 어느정도 철학을 정립하게 되면서 지금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것도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 같다. 지금까진 나의 성장을 목표로 달렸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만드는 제품을 성공시키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을 더 주된 목표로 달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규모가 별로 크지 않은 회사여서 인지도가 그리 높지도 않고, 이 회사로 합류하기로 한 나의 결정을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커버린 회사에 들어가기보다는 내가 직접 회사를 성장시켜보고 싶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이 업계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유니콘(~데카콘) 기업으로 만들 것이다.
올 한해는 재테크와 관련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 본격적으로 철학과 원칙을 정립한 시기였던 것 같다.
주식에 관해 내가 정립한 투자 원칙을 몇 가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잘 아는 섹터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기업의 주가는 기업의 이익에 비례한다고 가정한다.
질적 분석만큼 양적 분석도 분명 중요하다.
장기 투자라고 해서 매도를 하면 안되는 것이 아니다.
또 주식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얻게 된 하나의 장점은, 많은 기업들을 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 혹은 나중에 창업을 한다면 어떤 회사를 차리고 싶은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식이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라면,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것은 기업에 내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투자를 함에 있어, 어느 기업에 투자할 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별로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나의 주식 활동과 회사 업무가 서로에게 양성 피드백을 제공해 더욱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길 기대해본다.
이번 해에(어쩌면 나의 인생 전체에) 가장 큰 생각의 혁신을 일으킨 것은 바로 비트코인(및 블록체인)이었다.. 올해 하반기 중 대부분의 시간은 업무를 할 때 빼고는 비트코인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비트코인에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주식과 비슷한 비율을 이룰 때까지는 계속해서 비트코인을 매수할 생각이다. 비트코인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설명하려면 지금까지 쓴 글의 3배 정도는 더 써야할 것 같아서 생략하고, 이 글에서는 단지 비트코인이 나에게 가져다준 변화 정도만 기록해보려 한다.
비트코인을 이해하려면 화폐 시스템을 아우르는 거시 경제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금본위/은본위제를 거쳐 브레튼 우즈 체제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설립되었는지,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왜 역설적으로 항상 무역 적자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등등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화폐 역학에 대해 공부했다.
2021년 이전까지 나는 코인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개발자임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에조차 문외한인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 때문인데, 지금까지 나는 내가 현재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만 몰입하고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다. 한 마디로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쏟느라 다른 것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성격인데, 이런 내 성격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때도 많았지만 오히려 새로운 기회들을 놓치게 만들기도 했었다.
한편으론 이제껏 인생은 정형화된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형화된 문제를 잘 푸는 사람들이 언제나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인생을 비정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비트코인을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앞으로는 너무 한 쪽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삶을 그려보려고 한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들어낸 비트코인 아키텍쳐에 기술적/철학적으로 몇차례 감동하고 난 후, 블록체인은 가장 큰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달러 기반의 기축통화 시스템이 완전히 막을 내리고 암호화폐 본위제가 정말로 찾아온다면 국가의 모습과 산업의 구조는 상상하기 버거울 정도로 완전히 재편될 것이다. 기존의 관성을 따르는 일반적인 창업은 더 이상 자리도 없는 빽빽한 숲에 나무를 심는 행위라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신뢰 산업은 영양분이 너무나도 많은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잡고 방향을 이끄는 사람이 된다면 아주 멋질 것이다.
헬스는 뭐.. 꾸준히 하고 있다. 하나 바뀐 점이 있다면 세트간 쉬는 시간을 이전에 비해 많이 줄였다는 것인데, 원래는 쉬는 시간을 2분~3분 정도로 잡았었는데 지금은 웬만하면 1분, 고중량 프리웨이트를 할 때는 1분 30초 정도로 조정했다. 원래 쉬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던 이유는 수행능력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함이었는데, 지금은 겉으로 드러나는 수행 능력보다는 매 세트마다 내 몸에 얼마나 자극을 잘 주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쉬는 시간을 줄이니 운동 강도가 매우 높아지고 아주 빠르게 운동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보통 한번 운동을 할 때 24세트를 하는데, 빠르면 45분 정도만에 운동이 끝나는 편이다.
운동 빈도는 주당 4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3회를 가면 몸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고 4회를 가면 아주 서서히 근성장이 되는 느낌이다. 주당 5~6회를 가면 몸이 훨씬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은 헬스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은 시기이다. 현재는 이렇게 취미 정도로 헬스를 즐기는 것에 만족하고 있고, 나중에 바디프로필을 찍게 되면 주당 빈도수를 더 높여볼 예정이다.
경력이 쌓임에 따라 시급이 오르고 동시에 제태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돈과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아깝지 않게 쓸 수 있을까를 무의식 중에 항상 신경쓰게 된 것 같다. 이는 어떤 활동을 해도 내 시급만큼의 가치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었는데, 독서를 할 때만큼은 언제나 돈과 시간을 가치있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단돈 2~3만원에 이렇게 농축된 글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분 좋은 것 같다.
아래는 올해 읽었던 책 리스트이다.
아직까지 나는 실용주의자라서 인문학이나 철학 서적들은 별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다. 내년에도 아마 업무/창업/재테크와 관련된 책들을 주로 읽을 것 같은데 여유가 된다면 인문학과 관련된 책들도 찾아서 읽어보아야겠다.
많은 방면으로 유의미하게 성장한 한 해였던 것 같다. 내가 보낸 2021년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확신의 한 해였던 것 같다. 업무/재테크/비트코인 등은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도 아주 중요한 것들이다. 한 해동안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철학을 정립했다. 그리고 이는 곧 확신이 되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이정표 역할을 해줄 것이다.
글 잘 봤습니다~!!